항미원조는 미국에 대항하고 북한을 돕는다는 뜻으로 6·25 전쟁의 중국식 표현이다. 중국 정부는 1950년 중국군이 10월 19일 압록강을 넘어 첫 승리를 거둔 10월 25일을 항미원조 기념일로 삼았다. 올해는 항미원조 70주년이 되는 해로 중국은 대대적으로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미·중 갈등 속 반미 정서가 비등하면서 미국과 일전을 불사할 수도 있다는 분위기까지 감지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도 최근 항미원조 기념행사에서 6·25전쟁을 미국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거둔 위대한 승리로 표현했다.
하지만 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 존재한다. 쑨춘룽(孫春龍)이 대표적이다. 중국 유명 시사잡지 료망동방주간(遼望東方周刊) 기자 출신으로 2011년 돌연 기자를 그만두고 '노병회가(老兵回家, 노병이 집으로 돌아가다)'라는 공익활동단체를 세워 한국전쟁 참전 노병과 그 후손을 돕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쑨춘룽은 이 글에서 "증오심을 내려놓지 못하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증오의 교육은 국가 재앙의 근원으로, 내면이 악으로 가득차면 세계 문명과 멀어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진정한 승리자는 넓은 아량과 고견을 가져야 한다"며 "한국전쟁 70주년 기념행사에 미국과 한국을 초청해야만 비로소 진정으로 승리한 것"임을 강조했다.
특히 그는 "이제는 반미 정서를 앞세운 항미원조가 아닌 '한국전쟁(중국식 표현 朝鮮戰爭)'으로 바꿔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과거사로 인한 증오심과 편가르기보다는 전쟁의 고통을 함께 겪은 중국, 북한, 미국, 한국 등 국제사회가 함께 6·25 전쟁을 기념해야 함을 강조했다. 2차 세계대전 노르망디 상륙작전 기념식에 승전국 뿐만 아니라 패전국인 독일도 참석해 함께 희생자를 기리고 평화를 소망하듯 말이다.
사실 쑨춘룽이 수년간 직접 취재한 결과 한국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이 겪은 고통은 참담했다. 중국 정부가 공식 집계한 6·25 전쟁 열사는 19만7653만명이지만, 사실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중국군이 희생됐다. 그들의 후손들은 아직도 열사로 인정받지 못한 채 비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일부 중국군 유해는 아직도 38선 인근에 묻혀 송환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구글 지도를 통해서만 부친의 유해를 확인할 수 밖에 없는 후손들도 있다. 그들에게 한국은 더할나위 없이 고마운 나라다. 과거사 증오를 내려놓고 중국군 유해 송환을 먼저 제안했기 때문이다.
전쟁으로 이산가족의 비극도 겪었다. 6·25 전쟁에 참전한 중국군인 중 북한 여자와 결혼해 자녀를 낳은 이들도 상당 수다. 하지만 중국군은 당시 북한의 남아선호 정책에 따라 아내와 아들은 북한에 놓고 딸만 데리고 중국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중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수십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북한에 두고 온 가족의 생사는 확인할 길이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