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처를 찾지 못한 부동자금이 금융자산시장에 쌓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돈을 풀고 있지만, 늘어난 유동성은 실물경제로 흘러들지 않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들 자금이 투자와 소비로 이어지지 못하고 자산가격을 자극하면서 '돈맥경화' 현상이 악화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22일 예금보험공사가 발표한 '2020년도 6월 말 예금보험 동향'에 따르면 지난 2분기 말 총 부보예금은 전분기 말보다 3.4% 증가한 2419조5000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율 1.7%보다 1.7% 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부보예금은 예금자의 보호대상 자금으로, 시중은행과 저축은행 예금, 금융투자사 투자자예탁금, 보험사 책임준비금, 종합금융회사(종금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을 말한다.
부보예금 증가는 요구불예금 등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금융시장에 몰렸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경우 불어난 요구불예금이 부보예금 증가를 이끌었다. 요구불예금이란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자금으로, 재산을 늘리기 위한 상품이라기보다는 수시로 필요한 생활 자금이나 회사 운영 자금 등을 금융 회사에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된다.
이 기간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은 전분기 대비 9.6% 늘어난 244조원을 기록했다. 그 결과 시중은행의 부보예금은 1477조2000억원으로 전분기 대비 4.5% 늘었다. 이는 2018년(0.9%)과 2019년(2.1%)의 전분기 말 대비 평균 증가율을 크게 상회했다.
저축은행 부보예금도 전분기 대비 6.4% 늘어난 66조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율 3.5%보다 두 배가량 증가폭이 커졌다. 저축은행은 시중은행과 상호금융권보다 높은 예·적금 금리를 제공한 영향이 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말 기준 저축은행의 1년 만기 신규 정기예금 금리는 1.97%로 시중은행(1.18%)과 새마을금고(1.78%), 신협(1.85%)보다 높았다.
시중의 부동자금도 빠르게 늘고 있다. 한국은행과 금융투자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 국내 단기 부동자금 규모는 1273조660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말 1089조원이던 단기 부동자금 규모는 반년 만에 180조원 이상 급증했다.
시중에 돈이 얼마나 잘 도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지표인 통화유통속도와 통화승수는 올해 들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한은에 따르면 같은 기간 통화유통속도는 0.62로, 역대 최저를 보였던 지난 3월(0.65) 수치를 또다시 경신했다. 이 기간 통화승수 역시 역대 최저인 14.85를 기록했다.
시중의 넘치는 자금이 전반적인 투자와 소비로 이어지는 선순환으로 연결되지 않으면서, 실물경제도 타격을 입고 있다. 자금이 흐르지 않으면서 가계와 기업의 대출 연체율은 상승하고 있다. 지난 7월 말 기준 신한·KB국민·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기업 대출은 전월 말 대비 0.02~0.03% 포인트 상승한 0.23∼0.36%를 보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와 저금리 기조 지속으로 가계·기업이 소비·투자를 주저하고 있다"며 "시장의 돈이 흐르지 않을 경우 실물경제와 자산가격 괴리가 확대돼 투자와 성장률이 회복되지 않는 '유동성 함정'이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