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마지막 열흘은 우리 국민들에게 잔인한 시간이었다. 오랜 장마와 코로나 상황에 지쳐 있는데, 일부 교회의 광복절 광화문 집회 이후 코로나 신규 확진자가 200명을 넘고, 400명 선에 이르자 제2차 유행이 온 것이 아닌가라는 불안감이 태풍처럼 엄습했다. 6개월 동안 하루도 쉴 새 없이 달려온 질병관리본부도 당황했고, 정부는 국민들에게 집회 자제 호소를 거듭했다.
이런 상황에서 8월 초부터 시작된 의사협회의 정부 공공의료 확대 방안에 대한 비판이 8월 21일부터 전공의들의 파업으로 이어졌다. 많은 국민들은 “도대체 왜 저러나”라는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국민들은 코로나19의 방역과 치료현장에서 헌신하고 있는 영웅들이라는 이미지와 자신들의 이해에 집착하는 이익집단이라는 이미지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고, 정부는 왜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강경 일변도로 가는가라는 불만이 커져갔다.
8월 14일 의사협회는 정부가 추진 중인 의대 정원 확대, 공공 의대 설립, '지역의사제' 설립 등의 정책을 철회할 것을 주장하면서 파업을 하였다. 이미 8월 5일 의사협회의 방침에 따라 전공의와 의대 학생들의 휴업이 이루어졌고,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는 이를 지지하는 호소문을 발표했는데, 이들은 정부가 ‘편향된 통계’로 국민을 호도하고 있다고 비판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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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박한 상황에서 보건복지부와 의사협회는 수도권 코로나 상황이 안정될 때까지 ‘의대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신설 추진을 중단하고 이후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의한다’는 합의를 하였지만,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5일 밤 늦게 긴급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이를 거부하고 파업을 지속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대하여 보건복지부는 중환자와 응급환자 진료 공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26일 오전 8시, 수도권 주요 수련병원 전공의·전임의 358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8월 27일 시민단체들은 의사협회를 강력히 비판하고 “공공병원 확충과 공공의료인력 확대”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고, 또 문 대통령은 기독교 지도자와의 간담회에서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의료인이 의료 현장을 떠난다는 것은 전시 상황에서 군인들이 전장을 이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비판했다.
대전협 비상대책위원회는 28일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 및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29일 의학교육 및 수련병원 협의체와 간담회를 진행하여 지역 의료 불균형, 필수의료 붕괴, 공공의료 시스템 부재 및 전반적인 의학교육과 전공의 수련체계의 미비점에 대해 시급한 해결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하고 잠정 중재안을 도출했다. 이들은 29일 밤 늦게 전공의 대표자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잠정 중재안을 논의하였으나 파업 지속을 결정했다. 박지현 회장은 그 이유를 "전문가가 존중 받는 의료정책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이제는 그만’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두마리 토끼
정부가 사용하는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많은 병상 수에도 불구하고 인구 1000명당 의사 수는 33위에 머무르고 있다. 많은 의사들과 대형 병원들은 대부분 수도권에 밀집되어 있어 지방의료 취약지가 발생하고 특정 분야 의사 수가 현저하게 부족하다. 이 통계를 보면 의료 인력 확대가 필요한데, 의협에서는 한국의 인구 정체로 볼 때 머지않아 현재의 의료인력으로 충분한 상황이 도래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지방 의료 취약지 및 특정 분야 전문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의사들의 특정 분야 기피 때문이며, 의료 수가를 합리화해야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의료 수가를 올리게 되면 국민 개개인이 부담해야 할 건보료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정부는 공공의료 확충과 의료 수가 합리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논란이 커지면서 “당초에는 의사협회의 주장이 일방적이고 자기 이익만을 좇는 파업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의료 개혁을 위해 돌아갈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