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장기 제로금리 시대를 예고했다. 물가상승률 평균치가 2% 수준에 수렴한다면 물가상승률이 2%를 '일정 기간 완만한 수준으로' 웃돌아도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고 밝히면서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27일(현지시간) 잭슨홀 회의 연설에서 이 같은 ‘평균물가목표제(Average Inflation Target)' 도입을 발표했다.
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도 성명을 내고 이를 공식화했다. 17명 정책위원이 전원 동의했다.
최근 수년 동안 미국 인플레가 2%에 미달하고 있음을 고려할 때 사실상 금리를 상당 기간 올리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게 지배적인 해석이다. 앞서 블룸버그는 전문가들이 연준의 평균물가목표제 도입을 예상하고 있다면서 최소 5년 이상 제로금리가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파월 의장은 또 이날 연설에서 "최대 고용이 물가 과열을 야기하지 않고도 다양한 소득 계층에 혜택을 안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실업률 하락이 물가 상승을 자극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탄탄한 고용시장의 긍정적 효과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뜨거운 고용시장이 우려할 만한 인플레로 이어지지 않는 한 고용시장을 식히기 위한 행동을 자제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연준의 이날 발표는 선제적 금리인상 전략을 폐기한다는 점에서 연준 통화정책의 대전환이라는 평가다. 지금까지는 물가 과열로 인한 부작용에 초점을 맞춰 선제적으로 금리인상을 단행했다면 이제는 저물가가 만성화하는 것을 막는 데 더 집중하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파월 의장은 이날 "지속적으로 너무 낮은 물가는 경제에 심각한 위험을 제기할 수 있다"며 "물가가 떨어지고 기대 인플레이션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니혼게이자이는 이날 연준의 발표를 '일본화'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평가했다. 일본은 기준금리를 마이너스까지 내리면서 온갖 통화부양책을 꺼냈지만 저물가와 저성장이 계속돼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 역시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경제가 10년 이상 확장하고 실업율이 50년래 최저로 떨어졌음에도 물가상승률이 예상만큼 오르지 않아 일본의 전철을 밟을까 걱정이 컸다.
결국 연준은 지난해 초부터 저금리가 뉴노멀로 자리잡은 경제의 구조변화에 맞서기 위한 정책 재검토에 들어갔다. 물가 안정에만 치우치다보니 경제 확장을 훼방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던 터다.
특히 올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기침체가 닥치면서 경기 부양 여지를 확대할 필요가 커졌다. 이미 연준은 코로나19 사태 직후 제로금리와 무제한 양적완화 같은 비상카드를 잇따라 꺼내 탄약이 소진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각에선 연준이 장기 저금리 기조를 확실시하면서 자산 버블을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다만 연준은 구체적인 수치 대신 '일정 기간'과 '완만한 수준'이라는 단서를 붙여 향후 인플레 초과 달성 시 개입할 수 있도록 대비했다. 로버트 캐플란 댈러스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로이터 인터뷰에서 1년 동안 물가상승률이 3%를 유지한다면 가만히 지켜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