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정몽진 KCC 회장을 일컫는 별명이었다. 재계 안팎에서는 현대가(家) 2세 중 유독 주식으로 쏠쏠한 이득을 취하는 그를 두고 ‘투자의 귀재’라고 평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새 정 회장이 집중투자했던 삼성물산 지분 손실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삼성물산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승계 문제를 둘러싼 의혹의 정점에 있는 회사라, 정 회장은 최근 검찰 조사를 받는 수난도 겪었다.
여기다 지난해 미국의 실리콘 기업 ‘모멘티브 퍼포먼스 머티리얼스(이하 모멘티브)’를 인수하면서 재무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신용등급도 추락했다. 이로 인해 올초 분사한 KCC글라스와의 계열분리 작업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08년 만도 인수를 위해 꾸려진 한라건설컨소시엄에 2670억원을 투자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후 2011년 만도의 지분을 전량 처분하면서 6370억원을 벌었다. 같은해 현대차 지분 일부를 매각해 2397억원을 벌었고, 2012년에는 현대중공업 주식을 팔아 6972억원의 수익을 냈다.
특히 2017년 5월 현대중공업이 4개사로 분할 상장하면서 KCC는 큰 이익을 얻는다. 분할 전 평가액은 8791억원이었으나 분할 후 지분가치는 25% 급증해 1조1031억원으로 불어났다. 이후 현재까지 현대중공업 4개사의 주식은 지속 상승해 이익은 더 불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악재는 KCC가 2012년 7740억원을 투입해 삼성카드가 보유하던 삼성에버랜드(현 삼성물산) 지분 17%를 매입하면서 시작된다.
2014년 삼성에버랜드는 제일모직(현 삼성물산)과 합병해 상장했고, KCC는 일부 지분을 매각해 약 1241억원의 차익을 거뒀고 제일모직 지분도 10.19% 보유하게 된다.
그러다 KCC는 삼성물산이 합병을 반대하는 ‘엘리엇(미국계 헤지펀드)’이란 복병을 만나자, 삼성물산 편에 서서 ‘백기사’ 역할을 자처한다. 2015년 당시 제일모직이 구(舊)삼성물산과 합병할 때 구삼성물산 자사주 전량(5.76%)을 6743억원에 추가 매입한 것. 이로써 정 회장은 이재용 부회장 측의 우호 지분을 늘려줬고 현재도 KCC는 삼성물산 지분 8.97%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백기사 역할로 인해 정 회장은 검찰 소환 조사를 받는 고초를 겪게 된다.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는 지난 5월 15일 정 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KCC가 당시 삼성물산 주식을 사들인 경위를 캐물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검찰 조사를 차치하더라도, 삼성물산 주식은 KCC에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올해 1분기에만 KCC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의 평가손실이 3214억원으로 분석됐다.
KCC의 지난해 연결기준 실적도 초라하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1336억원으로 전년대비 33.5% 쪼그라들었다. 특히 지난해 인수한 모멘티브의 지분법 평가손실(2591억원)이 반영되면서 당기순손실액은 2299억원으로 전년대비 895% 급증했다. 향후 모멘티브의 실적 전망도 부정적이다. S&P는 지난해 모멘티브의 EBITDA가 2018년보다 20~30% 감소했고 올해도 실적 부진을 예상했다. 모멘티브 실적은 KCC의 재무제표에 반영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국내 3대 신용평가기관은 지난 5월 KCC의 신용등급을 AA에서 AA-로 일제히 하향 조정했다.
KCC그룹의 재무 안정성이 나빠지면서, 그간 조용히 추진한던 계열 분리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KCC그룹은 올해 1월 KCC글라스를 인적분할했다. 향후 장남인 정 회장이 KCC를 맡고 둘째 정몽익 KCC 수석부회장이 KCC글라스를 책임지는 구도로 계열분리 가능성이 높다. 셋째 정몽열 KCC건설 사장은 오래전부터 KCC건설을 독자 경영해왔고 30%의 KCC 지분을 보유 중이라 큰 변동이 없을 전망이다.
황덕규 나이스신용평가 실장은 “KCC는 모멘티브 인수 영향으로 재무 부담이 큰 폭으로 확대되고 재무안정성이 저하됐다”면서 “향후 재무 부담 완화 여부가 회사의 신용등급 회복 여부에 있어 중요한 요인”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