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송사....항공사 마일리지, 왜 계속 문제되나?

2020-07-20 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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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마일리지 10년 소멸시효 논란, 항공사 손들어줘

10여년전 카드사의 마일리지 혜택 축소 때부터 논란...

최근 법원은 소비자단체가 항공사를 상대로 낸 '마일리지 유효기간' 약관 무효소송에서 항공사의 손을 들어줬다. 

17일 서울남부지법 민사3단독(이상현 부장판사)은 “항공 마일리지와 관련해 원고들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에 낸 청구를 모두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항공사의 마일리지를 일종의 채권으로 보고, 민법상 채권의 일반 소멸시효가 10년이라는 점을 감안한 판결로 풀이된다.

앞서 시민단체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지난해 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유효기간 만료로 소멸한 항공사 마일리지를 반환해 달라는 내용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마일리지가 적립된 지 10년이 지나면 자동 소멸하도록 2008년에 마일리지 약관을 개정했는데, 이것은 개인의 재산권 침해라는 것이다.

재판 이후, 원고 측인 소비자주권의 법률대리인 조지윤 변호사(법무법인 평우)는 “추후 판결문을 확인하고 항소 등 대응방식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항공사 마일리지를 두고 여러 건의 소송이 제기된 바 있다. 하지만 대부분 카드나 인터넷 등 사용금액에 따라 부여되는 마일리지 비율을 축소하려다 벌어진 소송이었던 반면, 이번에는 마일리지의 유효기간(소멸시효)을 놓고 벌인 소비자가 항공사를 직접 당사자로 소송을 낸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항공사 마일리지 문제··· 왜, 언제부터?
항공 마일리지에 대한 논란은 오래전부터 지속돼 왔다. 2002년 대한항공과 아시아나는 마일리지 공제비율을 올리거나 좌석등급을 제한하는 등 혜택을 축소했다. 항공권을 살 때 1마일당 환산되는 금액의 비율을 항공사 쪽에 유리하게 변경했고, 동시에 마일리지로 좌석표를 구매할 때에는 이코노미석만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식이었다.

무엇보다 이 축소계획을 소급적용한 것이 문제였다. 

당연히 소비자 측의 반발은 거세졌고, 집단소송 움직임도 나왔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서 소급적용은 불가하다며 약관을 시정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불리하게 바뀐 약관 전부가 아니라 소급적용만 문제 삼은 것으로, 공정위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했다. 하지만 항공사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항공사들이 반발하자 공정위는 검찰고발이라는 초강수를 뒀고 결국 항공사들이 유예기간을 두는 것으로 한 발 물러서면서 사태가 마무리됐다. 항공사들이 물러서는 방식이긴 했지만 양보한 것은 소급적용 하나뿐이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손실이 발생했다고 보긴 어려웠다. 

2004년에는 대한항공이 신용카드사에 판매하는 제휴 마일리지 단가를 인상해 문제가 됐다. 소비자가 신용카드를 통해 마일리지를 적립하면 카드사는 1마일리지당 얼마의 금액을 주고 항공사에서 마일리지를 구매하는데, 항공사와 카드사 사이의 거래금액을 두고 분쟁이 생긴 것이다.

대한항공이 시발이었지만 곧바로 아시아나도 뒤따랐다. 항공사들도 할 말은 있었다. 당시 마일리지 단가 인상은 국제적 추세였다는 것이다. 

이후 카드사는 항공사의 제휴 마일리지 혜택을 축소하게 되는데, 그것이 소비자들의 반발을 사게 됐고 급기야 소송으로 이어진다. 당초 카드를 신청할 때 합의한 약관을 변경하려면 소비자들의 동의를 얻거나 적절한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일방적으로 축소가 강행됐다는 점이 문제였다.

2006년 12월 법원은 신용카드사의 혜택 축소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고, 2013년 대법원에서 소비자의 승소로 소송이 마무리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손실은 카드사 쪽에 집중됐다. 

하지만 이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했다. 카드 사용액 증가에 따라 마일리지 부여가 늘어났는데, 이것이 항공사의 경영압박 요인이 되고 만 것이다. 사용하지 않은 마일리지는 항공사 입장에서는 부채가 되는데, 미사용 마일리지가 늘어날수록 장부상 수치가 나빠지기 때문이다. 결국 항공사는 2008년에는 약관을 개정해 소멸기간을 정했다.

이는 당연하게 소비자들의 반발을 불렀다. 항공사가 일방적으로 소비자들의 재산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끊이지 않는 분쟁··· 이유는?
이처럼 분쟁이 끊이지 않은 것은 마일리지를 두고 항공사와 소비자들 사이에 분명한 시각차가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선 항공 마일리지가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기 때문에 재산권(채권)인 반면, 항공사는 일종의 '무료 서비스'나 '사은품' 정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소비자는 '돈'으로 보지만, 항공사는 '소비자에게 베푸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일단 소비자 측에 유리한 해석이 조금 더 우세하다. 무료 서비스라고 해도 일단 지급하겠다고 약속을 했다면 그 역시 채권-채무관계가 형성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여기에 소비자 단체 쪽에서는 보다 적극적인 주장을 제기한다.

소비자주권의 조지윤 변호사는 “소비자가 유상의 대가를 치르고 마일리지를 얻은 점 등을 고려하면 마일리지는 명백한 재산권”이라고 말했다. 한 대형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는 회계사도 “마일리지는 (항공사 측)회계상 부채가 맞다”고 말했다.

항공 마일리지 제휴로 인해 항공사들이 얻는 추가수익이 상당한 규모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연히 부담해야 할 책임이라는 지적도 있다.  금융감독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 8월까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국내 19개 전업·겸업 카드사에 마일리지를 판매해 얻은 수익은 모두 1조8079억원에 달했다.

항공사들도 내부적으로 마일리지를 재산권으로 보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앞서 2016년 아시아나항공은 미래에 발생할 마일리지 판매대금을 담보로 700억원을 대출받았다. 재산권으로 보지 않는다면 마일리지 판매대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다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소비자단체들은 “국제회계기준에서 소멸된 마일리지는 이윤으로 계산된다”며 “(이를 역으로 추론하면)마일리지는 회계처리상 부채이며 소비자들은 채권자”라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속속 발표되는 마일리지 개편안, 효과는 글쎄···?

2019년 1월 1일, 항공 마일리지가 처음으로 소멸된 후 항공사들은 최소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 규모의 이익을 얻었을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들의 반발도 계속됐다. 

공정위는 현금과 마일리지를 함께 써서 항공권을 구입하게 하는 복합결제 등 마일리지 사용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처음에는 복합결제에 반발했던 대한항공 측은 지난해 12월 '마일리지 복합결제'를 시범 도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스카이패스 제도 개편안을 발표했다.

유류할증료와 세금을 제외한 항공 운임의 20% 이내의 금액을 마일리지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서 불리한 점이 적지 않아 새로운 논란을 불렀다. 마일리지의 현금 환산 가치는 시즌·수요·노선·예약상황 등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데, 이를 소비자들은 미리 알 수 없다는 점부터 문제가 됐다. 항공사들이 엿장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것.

이 밖에도 마일리지 적립방식을 변경하거나 이코노미와 비즈니스, 퍼스트클래스 적립비율의 편차를 크게 하는 방식으로 실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할 서비스 규모를 축소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소비자주권도 '복합 결제' 방안을 두고 '면피성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항공사 경영상의 편의와 이익 등 자의적 판단에 의해 마일리지 차감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마일리지 결제 비율은 소비자들 스스로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편 공정위는 대한항공의 개편안이 공정한지 다시 심사하기로 했다.

공정위는 지난 1월 29일 법무법인 태림이 소비자 1834명을 대리해 대한항공 마일리지 관련 약관의 불공정성 여부를 심사해 달라며 불공정 약관 심사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심사에 필요한 자료를 대한항공에 요청하는 등 심사를 이어가고 있다.

또한 정부가 직접 마일리지 적립·사용기준을 정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이 지난 국회에 발의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4일 당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송언석 자유한국당 의원(현 미래통합당 의원)은 '항공사업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연 단위로 발간해 제공하는 항공 교통 서비스 보고서에 항공사별 항공 마일리지 적립과 사용 현황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도록 하는 내용도 담겼다. 현재 항공사는 영업 기밀을 이유로 자사 항공 마일리지의 적립과 사용 현황에 대한 자료를 제대로 공개하고 있지 않다.

송 의원은 이 때문에 마일리지 운용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법안은 20대국회의 임기 종료로 자동 폐기됐다.
◆코로나19··· 마일리지 논란의 새변수?

올해는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마일리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고객이 늘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한 1~6월 마일리지 사용 등 항공 관련 피해 신고 사례는 1200건이 넘는다. 작년 동기에는 300건 정도였다.

이렇듯 소비자의 불만이 쌓이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올해 못 쓴 마일리지의 유효기간을 1년 연장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국토부, 공정위와의 협의를 거쳐 올해 말로 소멸하는 마일리지의 유효기간을 1년 늘려 내년 12월 31일 소멸하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지난 6월 18일 밝혔다.

이번 조치로 2022년 12월 말 출발하는 여정까지는 2010년에 적립한 마일리지로 예약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불만은 여전히 나온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전 여름휴가를 위해 항공권을 미리 구매해둔 김모씨는 “올해 안 쓰면 마일리지가 사라진다고 해서 항공권을 구매했는데 결국 취소했다”며 “또 내년에 사라지는 마일리지도 있을 텐데 이런 상황에서 내년에는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마일리지로 구매할 수 있는 표도 적고 규정도 복잡해서 쓰기가 어렵다”며 “사용기한이 없으면 좋겠고, 아니면 다른 곳에 쉽게 사용할 수 있는 것도 좋겠다”고 덧붙였다.

앞서 조지윤 변호사도 “외국 항공사들은 유효기간이 짧지만 사용처가 훨씬 다양하고 마일리지의 판매, 양도 등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어 국내와 다르다”고 차이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대한항공 관계자는 "앞으로도 고객이 쉽고 편리하게 마일리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와 제도를 개선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국토부와 공정위 측은 "코로나19 영향에 따른 마일리지 사용에 불편이 없도록 모니터링을 강화해 소비자 보호에 지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항공의 여객기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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