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이 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한 주택 공급방안을 논의하기로 한 가운데, 정책의 축인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가 미묘한 기싸움 양상을 보여 눈길을 끈다. 두 부처는 결국 '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한 공급대책을 논의한다'는 내용으로 입장을 정리하면서 긴장 분위기는 일단락됐다.
이번 일은 박선호 국토부 차관의 발언에서 시작됐다. 박 차관은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그린벨트 해제는) 정부 차원에서 아직 검토하지 않고 있다"며 "서울시와도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한 협의는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차관이 장관과 뜻을 달리하기 힘들다는 점에서 김현미 장관의 의중이 반영된 발언일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 나왔다.
현재 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마련된 범정부 TF는 홍 부총리가 이끌고 있지만, 그린벨트 관리 및 활용 주관부처는 국토부인 만큼 부동산 정책 담당 부처 사이에 엇박자가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발언의 앞뒤를 살펴보면, TF란 틀을 통해 앞으로 그린벨트 해제를 포함한 공급대책을 논의하는 데엔 발언의 취지가 일치한다. 다만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그린벨트 해제가 공급대책 리스트의 최우선 순위는 아닌 것으로 해석된다. 여러 엇갈린 이해관계자들이 있는 만큼 논의를 하되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것이다.
홍 부총리는 방송에서 "1단계로 검토하는 초이스(선택지)가 대여섯 가지 있는데, 1단계에 있는 리스트 검토가 끝나고 필요하다면 그린벨트 문제에 대해 살펴볼 수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제시된 주택 공급 방안을 먼저 검토해 보고, 그래도 모자라면 서울 그린벨트 해제 방안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박 차관 역시 "3기 신도시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고 용적률 상향 문제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그린벨트 해제 문제는 급하게 우선순위로 처리할 문제는 아니다"고 말한 점에서 홍 부총리와 비슷한 의견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기재부 측은 "정부는 향후 '주택공급확대 TF'를 통해 주택 공급을 위한 모든 가능한 대안을 테이블에 놓고 논의해 나갈 계획"이라며 "현재는 그린벨트 해제 등에 관해 논의된 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린벨트 해제 방안은 그동안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필두로 여당 내에서 드라이브를 걸었다. 이런 상황에서 범정부 차원에서 논의가 시작된 이상 '해제' 쪽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획기적인 공급대책이 나오기 전에는 시장이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정부도 인식한 게 아니냐"고 했다.
일단, 이날 처음 열린 주택공급확대 실무기획단 회의에서는 기존 방안과 함께 도시 주변 그린벨트의 활용 가능성 등을 심도 깊게 논의할 예정이다.
회의에는 박선호 국토부 제1차관을 기획단장으로, 기획재정부 차관보, 서울시 주택건축본부장, 경기도 도시정책관 등이 참석하는 만큼 정부와 지자체 간 주택공급을 위한 신규 과제 등을 중점적으로 다룰 것으로 보인다.
다만,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와 관련해 여전히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정부와 서울시와의 협상이 어떻게 진척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이날 김현미 장관이 국방부를 방문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군시설 등의 이전을 통해 신규 택지가 확보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앞서 정부는 서울 내 군관사 등을 개발해 주택 용지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는데, 군 시설 이전 등을 통해 중급 이상 택지가 나올 수 있을지 주목된다.
현재 서울에 남은 군 시설은 내곡동 예비군훈련장, 은평뉴타운 인근 군부대 등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수도권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불안감을 해소하고 중장기적인 주택공급물량 확대를 위해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그간 운영해온 제도 틀을 벗어나 전향적인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도시규제 완화 등 제도 개선 사항을 조속히 구체화하고, 실무기획단 회의를 통해 기관간 의견을 신속히 조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