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의 공간은 압축된다. 그리고 압축된 공간만큼 전염병은 빠르게 번진다. 14세기 말을 이용해 몽골제국에서 유럽으로 이동이 가능해지면서 흑사병이 퍼졌고, 21세기는 비행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전 세계를 휩쓴 전염병 대유행은 그때마다 인간 생활 공간에도 영향을 미쳤다.
◆아파트 담장 대신 벤치와 공원을··· '소셜 믹스'의 시작
유 교수는 그동안 저서와 방송 등을 통해 공원의 중요성을 역설해 왔다. 사회적·경제적 수준이 다른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게 함으로써 주거 격차로 인한 사회 계층 간의 격차를 완화하는 '소셜 믹스(social mix)'의 방안 중 하나였다.
그가 소셜 믹스를 강조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지지 않으면 사회가 정체되고 발전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미국 뉴욕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인종과 민족이 한데 어우러진 덕분"이라며 "우리나라도 세계 누가 와도 서울에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천연자원이 나라의 급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사는지가 나라의 급을 정한다"고 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유 교수는 "우리나라도 뉴욕처럼 될 수 있는 조건은 충분히 갖고 있다"면서도 "문제는 그 공간의 질이 나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욕 브로드웨이 선상에는 벤치가 170개가 넘는 반면, 서울 강남에는 50개가 채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는 여전히 "30만㎡의 공원 하나보다는 접근성이 좋고 쓰임새 있는 3만㎡의 공원 10개를 만드는 것이 낫다"는 지론을 강조하고 있다. 사적공간을 줄일 수 없는 현 상황에서는 공적공간을 분포시키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집 구조의 변화··· 넷플릭스가 소파를 없애다
지금, 공원은 '소셜믹스'의 개념을 넘어 전염병을 피하는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유 교수는 조만간 집의 구조에도 변화가 생길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사적으로' 자연을 만날 수 있는 주거 테라스가 생겨야 한다"며 "테라스 공간의 건폐율을 완화시켜 준다거나, 집에 테라스를 조성할 수 있도록 기축 아파트에 대한 리모델링을 쉽게 해주는 방식으로 법적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코로나 시대에는 3000㎡의 공원을 999개로 쪼개고, 집집마다 3㎡의 마당 혹은 테라스를 주는 게 낫다"며 "굳이 공원을 이용하기 위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자족할 수 있는 공간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더 넓은 공간에 대한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현재 집에서 보내는 시간을 계산하면 코로나 이전의 155%라는 결과가 나온다. 집에서 1.5배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에게 필요한 공간도 1.5배 늘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당장 내부의 공간을 늘릴 수 없는 상황에서 이를 가장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가구를 없애는 것"이라며 "지금의 공간은 가족 구성원에게 너무 좁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소파는 4인 가구가 TV를 볼 때 필요한 공간이다. 그러나 지금은 각자의 침대에서 혼자 넷플릭스로 영상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소파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이다.
30㎥ 미만의 원룸, 반지하에 사는 20·30대에게 테라스나 여유공간은 먼 나라 이야기일 수 있다.
그는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인 사람이라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공원이 많은지 주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며 "가로등 앞이나 옥상 정원처럼 테라스를 대신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찾는 눈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 수업의 보편화=학교 역할의 붕괴
코로나19의 확산 이후, 유 교수는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사건으로 '온라인 수업'을 꼽았다. 학교의 역할 중 하나였던 '지식 전달'의 개념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선생님의 역할이 크게 바뀔 것"이라며 "학생을 잘 가르치는 일타강사 한명이 온라인 강의를 한다면 집이 아닌 곳에서 수업을 듣거나 하루에 모아서 일주일 분량의 수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반에 30여명의 학생이 모두 앉아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수업을 들은 후 소그룹 과외나 1:1 쌍방향 교육으로 학교의 역할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전교생' 혹은 '전교 1등'이라는 단어도 사라질 수 있다.
유 교수는 부모의 재택근무 환경이 빠르게 정착되면 아이와 함께 도시에서 3일, 시골에서 4일 생활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당장은 부유한 사람에 한정된 라이프 스타일이겠지만, 조금만 보편적으로 퍼진다면 앞으로 중산층의 기본생활이 될 수 있다"며 "학교를 조금 더 해체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대책의 해답, 고가 아파트에 있다?
유 교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언택트(Untact·비대면) 경제가 본격화하면 자연스럽게 상업시설의 비중이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일반적으로 도시는 주거공간이 50%, 상업시설이 30% 정도를 차지하지만, 앞으로 5~15%의 상업지구가 빠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미 상업지역의 유휴·방치 부동산은 심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정부에서도 3기 신도시의 상가 비중을 줄일 계획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이 공간은 어떻게 활용하는 것이 좋을까. 유 교수는 부동산 대책의 답을 여기에서 찾았다.
그는 "부동산 대책은 복잡한 문제"라면서도 "상업시설이 빠진 공간에 초고가 아파트를 짓는 것이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시가 15억원 이상은 대출을 막아버린 현재의 정책은 부유층이 15억원 이하의 집을 사게 하는 구조다. 유 교수는 "대출을 통해 100억원의 아파트를 못 사게 된 부자들은 대신 10억원의 집 10채를 사게 된다"며 "이런 과정이 반복되며 집값이 오르면 기존에 10억원의 집에 살던 사람들은 저급 주택지역으로 내몰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결국, 정부가 빈부격차를 인정하고 소득수준과 상황에 맞는 주거를 각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의 경제규모에 맞게 고급 아파트를 짓고 대신 이에 부합하는 보유세를 책정하면 된다"며 "사람의 본능을 인정하고 이걸 정책에 이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