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책임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공방이 장기화되면서 양국의 충돌이 격화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코로나19 사태의 책임을 물으라는 세계 각국 반발에 직면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11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위기에 놓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글로벌 주도권 장악에 더 열을 올릴 것이란 해석이다.
◇미·중 책임공방 가열… “美 대선까지 이어질 듯”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27일 다수 전문가를 인용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미·중 관계 악화를 전망했다.
미국은 최근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강조하면서 연일 ‘중국 때리기’에 나서고 있다. 사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중국과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한 후 중국 비판을 자제해왔다. 코로나19 초기때도 중국을 비난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미국의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지자 돌변했다. 코로나19 기원을 밝히기 위한 조사팀을 중국에 파견하는가 하면, 중국의 코로나19 통계 축소와 조작 등 의혹을 거론하는 등 연일 중국에 대한 비판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공세와 함께 미국 내 반(反)중 정서까지 고조됐다. 앞서 21일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중국에 대한 미국인의 비호감도는 66%까지 올라갔다. 이는 2005년 해당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SCMP는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는 유럽까지 확산됐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도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중국 책임론에 의견을 모았다. 지난해까지 친중 행보를 보이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마저 “중국이 코로나19 기원에 대한 정보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은 반발하고 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20일 “중국도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은 피해자지 가해자가 아니다”라며 “바이러스 공모자는 더욱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와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도 미국이 코로나19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미·중 공방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 냉전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은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경제 타격 책임을 중국에 전가하고, 중국은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을 부각하며 글로벌 패권을 노린다는 것이다.
실제 최근 중국은 의료장비 생산설비를 확충하고 세계 곳곳에 의료용품을 수출하는가 하면, 국제기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면서 국제 사회 활동 폭을 넓히고 있다.
미국 워싱턴D.C 국제안보분석연구소의 갈 루프트 이사는 중국의 이 같은 움직임이 강해질 수록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책임론’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열리는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직이 위태로울 만한 위기에 몰려 있다”며 “선거에 가까워질수록 그는 더 공개적으로 중국에 책임을 전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스콧 케네디 연구위원도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 모두 ‘이념 지향적 민족주의자’로 협력 의향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며 양국의 패권 경쟁 심화를 예측했다.
홍콩대 아시아글로벌연구소의 첸지우 소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가장 부정적인 상황은 미·중이 신냉전에 돌입하는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양국의 국제적 위상과 지위는 예전만 못할 것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은 세계 가장 강대국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은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를 냈고, 중국은 투명하지 않은 정보 공개로 비난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싱크탱크 스팀슨센터의 윤선 연구원은 “코로나19로 미국과 중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신뢰가 손상됐다”며 “중국이 지정학적 계산없이 책임을 인정한다고 해도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