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총선은 정권 중간평가 성격을 지녔다. 그런데 이번엔 현 정부의 실정(失政)이 코로나에 묻혀버린 것 같다. 아니 묻혀버린 게 아니라 코로나를 타고 오히려 정권에 유리한 국면이 만들어진 것 같다. 부동층(浮動層)의 분노가 어디로 튈지가 변수다. 8일까지 발표된 '선거전 여론조사'는 의지할 게 못 된다는 게 역대선거를 통해 증명됐다. 여당이 뭔가 착각하고 있다는 얘기도 등장한다. 그러면 선거 와중에 광풍처럼 일어난 '긴급재난자금' 경쟁은 득표에 영향을 줄까. 돈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돈은 받지만 표를 주는 건 다른 문제로 인식할 가능성이 있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이상한 선거'라는 4·15총선이 바싹 다가왔지만, 코로나로 아예 입을 가려버린 마스크 민심이 어떤 민의(民意)를 내놓을지 쉽게 알아채기는 어렵다. 본지는 8일 정치·경제 전문가 '총선 와이드 좌담'을 열었다. <관련기사 4·5면>
이번 총선은 '역시'와 '혹시'의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좌담 참석자들 또한 '역시'와 '혹시'의 의견들을 번갈아가며 내놓았다.
# 역시 코로나, 혹시 경제 심판?
"어제 오후 이낙연 후보가 유세하는 종로의 동묘에 갔는데 40분가량을 코로나 얘기밖에 안 했다. '대응 잘했다. 전 세계가 칭찬하고 있다.' 이번 선거는 코로나 선거가 되어버렸다."(이재호 극동대 교수)
"코로나 사태를, '울고 싶은데 뺨맞은 격'이라고 본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는 가뭄으로 겨우 버티고 있었는데 태풍이 와서 싹 쓸어간 느낌이다. 경제민심은 엄청나게 나쁘다고 판단한다. 천안의 어느 상인이 경기가 거지 같다고 발언했는데, 아주 정확한 표현이라고 본다."(최성환 고려대 교수)
"방역문제에 대통령과 정부가 잘 대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긍정적이겠지만 지난 3년간 경제문제에 어떻게 대처했느냐고 묻는다면 서민들과 자영업자, 20대 남자들의 답은 부정적으로 나올 것이다."(최광웅 데이터정치경제연구원장)
# 역시 진영논리, 혹시 보수 부활?
"코로나 대처 잘했다고 하면 친문, 못했다고 하면 반문으로 낙인 찍힌다. 중국 입국을 정부가 빨리 막지 않아서 퍼졌다고 하면 보수, 신천지 탓이라고 하면 진보 쪽이다. 둘 다 문제 있다고 하면 될 걸, 양쪽 다 원하는 정보만 끌어와 싸운다. 최근 호남지역 사람들이 이성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이재호)
"역대 정치판도에서 항상 보수 합계는 진보보다 약간 더 많았다. 이번에 보수가 하나로 합쳤기 때문에 민주당이 위태로운데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위기가 오면 우파가 더 뭉친다."(최광웅)
# 역시 '돈풀리즘'이 최고, 혹시 '돈 따로 표 따로'?
"과연 100만원 줬다 해서 지지정당이 바뀔 건지는 의문이다."(임병식 대통령직속 국가균형발전위원)
"작은 정부와 감세 얘기를 해야 할 보수 쪽이 긴급재정명령권에 앞장서는 게 맞는가"(이재호)
"스윙보터는 왔다 갔다 할 수 있다. 2012년 기초연금 몇 천원 올렸는데 노인들이 환호한 적이 있다."(최광웅)
선거법에 대한 얘기도 쏟아졌다. 이재호 교수는 이번 개정선거법은 '귀태(태어나서는 안 될)'선거법이라고 언급했다. 임병식 위원은 공수처를 위해 여당이 개정선거법을 밀어붙인 것이었는데, 이젠 이런 행태를 비판해도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고 위성정당이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고 비판한다. 최성환 교수는 우리나라 제도 중 난해한 3대 제도가 비례대표제, 부동산 세제, 대입제도라는 말이 있다고 언급했다. 최광웅 대표는 친문감별사로 나선 열린민주당이 이번 선거의 '진풍경'이라면서, 친문을 뺀 나머지 국민을 화나게 하는 정치라고 꼬집는다.
여론조사가 일주일 뒤의 일을 결코 예언하는 게 아니라는 입장도 나왔다. 임병식 위원은 여론조사가 결과를 맞힌 것이 한두 번밖에 없으며 80~90%가 틀렸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여론조사 전화를 받지 않고 극렬지지층만 끝까지 답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을 보탰다.
유권자들은 지금 누구를 찍을지 마음을 정했을까. 중앙선관위가 과거 총선(18·19·20대) 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거의 절반인 47% 정도만 결정했다고 나온다. 아직 절반이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투표는 아마도 더 망설이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희망과 분노의 저울질, 체감경제와 정치적 구호의 차이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망가진 경제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수많은 표심들이 이 정부가 앞으로 잘해 낼 수 있는 것에 베팅할지, 엄중한 경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할지 그것도 혹시와 역시 사이에 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12곳이 1000표 이하의 표 차이로 당선자가 갈렸던 기억이 있다. 내가 찍는 한 표가 가볍지 않다. 산사태로 거대한 바위가 굴러가는 건 그것을 막았던 한 알의 작은 돌이 무너지면서부터 시작되며, 눈 쌓인 나뭇가지를 끝내 부러뜨리는 건 마지막 한 점의 눈송이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