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이야기④] “다시 한 번, 가치를 팝니다”

2020-03-0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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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리나 마리몬드 대표 인터뷰

‘휴먼 브랜딩’ 통해 ‘피해자→인권 운동가’ 인식 전환

미투와 대응문건, 그 이후의 진정성

“비즈니스가 안 될 듯 하지만, 되게 만드는 것이 예술”

[편집자주] 성수동은 매력적이었습니다. 트리마제, 아크로 서울 포레스트 등 초호화 주거시설 반대편에는 수제화 거리‧철물점의 낡은 흔적이 공존했습니다. 골목 곳곳에는 저마다 개성을 살린 카페와 음식점, 뷰티 전문점이 자리했습니다. 여기에 소셜벤처기업이 빈 공간을 채우면서 성수동은 문화의 용광로가 됐습니다.

성수동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테이블 하나 없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며 남사장님과 건너편 꽃집 여사장님의 관계를 알게 됐습니다. 커피를 사면 꽃집 안에서 티타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정보도 얻었습니다. 반대편 음식점에선 도시를 떠나 귀농한 농부가 직접 채소를 길러 반찬을 만들고, 손님들에게 내놓는다고 했습니다. 이곳에선 각자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습니다.

성수동이 궁금해졌습니다. 넓은 공간 속 작은 공간들, 그 한 곳 한 곳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성수동에 가게를 낸 자영업자, 세상을 향한 ‘임팩트’를 준비하는 소셜벤처 창업가, 본사 이전으로 성수동에서 근무하는 직장인, 수식 불가능한 문화예술인, 그리고 오랜시간 성수동의 변화를 함께한 평범한 사람들.

성수동은 그 사람들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2020년,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성수동을 이해해 보려 합니다. 이 과정은 ‘성수동을 기반으로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 성장을 지원하는’ 루트임팩트와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아주경제X루트임팩트의 ‘성수동 이야기’ 지금 시작합니다.


 

[성수동에 위치한 마리몬드 라운지.(사진=마리몬드)]


1919년 3월 1일, 일제 식민통치에 반대하며 한국의 독립의사를 전 세계에 알렸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거리에 나왔다. 목숨을 건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독립투사들은 태극기를 흔들었고, 핍박을 감수했다. 고통은 계속됐다. 26년이 지난 뒤에야 식민통치에서 벗어났다. 당시 한국은 힘없는 작은 나라였다.

101번째 삼일절은 일요일과 겹쳐 공휴일 느낌이 나지 않았다. 세상 밖은 코로나19 확산으로 온 신경이 곤두선 상태다. 빠르게 늘어나는 확진자 수를 전 세계 언론이 앞다퉈 보도 중이다. 펜데믹(대유행)에 대한 걱정이기도 하지만 반도체, 2차 전지, MLCC(적층세라믹콘덴서) 등 핵심 부품 공급에 차질을 우려한다. 한국이 멈추면 글로벌 제조 공급망(서플라이 체인)이 돌아가지 않는다. 현재 한국은 글로벌 서플라이 체인의 중심에 서 있다.

국력은 강해졌지만, 과거의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여전히 일본에 사과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28년간 매주 수요집회에 나가고 있다. 이제는 피해자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인권 운동가로 조명받는다. 마리몬드는 이 지점에서 시작했다. 이야기를 알리고,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기억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로 했다. 휴먼 브랜딩을 통해 ‘가치’를 파는 기업, 마리몬드 홍리나 대표를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서 만났다.


- 마리몬드는 어떤 브랜드인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시작됐다. 할머니 한 분 한 분의 삶을 공부해 꽃을 부여해 드리고, 플라워 패턴을 제품으로 제작한다. 휴대폰 케이스, 수첩을 포함해 가방이나 의류도 있다. 디자이너들이 직접 공장에 가서 만들기도 한다. 제품들은 사람의 일상에서 사용돼 할머니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우리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삶을 넘어서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위한 디자인 제품을 판매한다. 적극적인 행동을 하려 하는 라이프 스타일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 마리몬드의 작업은 ‘휴먼 브랜딩’ 프로젝트라고도 불린다.

“조명하고자 하는 대상과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스토리를 담은 매개체(제품)를 연결한다. 그 이미지를 담은 디자인 제품으로 사람들이 일상에서 기억하게 하는 거다. 핵심 키워드는 재조명이다.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위안부 할머니들은 피해자라는 인식만 있었다. 할머니들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28년간 매주 수요집회에 나갔다. 이것은 인권운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피해자가 아닌 인권운동가로 조명했다.

‘프로젝트 나무’는 학대 피해 아동을 조명했다. 피해 아동은 문제아로 자랄 것이라는 편견이 있지만, 그 모든 상황은 아이들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가졌던 인권은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리고 있다. 브랜딩은 새로운 생명을 부여한다. 겉으로 봤을 때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이 우리의 미션이자 방향성이다.”


- 준비하는 다음 프로젝트가 있다면?

“올해는 변화가 큰 한 해가 될 거다. ‘speak up together’라는 캠페인으로 여성 성폭력 문제와 아동 인권 문제로 확장할 계획이다. 예전에는 일상에서 기억하기 위한 작업을 했다면, 올해는 캠페인 활동가에 유용한 제품을 구상하고 있다. 국내에서 해외로 확장하고,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사람들까지 조명하는 프로젝트다. 조금 먼 미래지만, 미국에 김복동 센터를 건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20 백목련 에디션.(사진=마리몬드)]


마리몬드는 최근 2년간 큰 변화를 겪었다. 창립자인 윤홍조 전 대표의 부친 미투 사건이 불거졌고, 뒤이어 고객을 부적절하게 묘사한 문건이 공개된 것이다. 윤 전 대표는 사과와 함께 대표직에서 물러났고, 지난해 8월부터 홍 대표가 마리몬드를 이끌고 있다.


- 원래는 아트 디렉터였다. 갑자기 대표직을 맡고 업무가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디자인 실무보다는 문서 작업이나 방향 설정 업무를 하고 있다. 고민해보지 않은 일들을 고민하고, 이렇게 인터뷰도 한다(웃음). 예전 대표님은 독립운동가처럼 사업을 진행했다. 제 장점은 전체적인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 조율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7년 동안 해왔던 일들을 다져가고 있다. 운영적인 부분은 처음이기 때문에 내부 회계 담당 직원 등 각 분야 전문가 출신 경영진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 대표 선임 이후 공식 인터뷰는 첫 번째 자리다. 일련의 사건에 대한 설명이 필요할 듯하다.

“그 당시 내부적으로도 경황이 없었다. 사실 대응 문서를 그렇게 작성한 것에 대해서 고객들이 실망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윤 대표는 그에 책임을 지고 (지난해 8월) 사퇴했다. 그동안 진행한 활동이나 진정성 측면에서 늘 고객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분인데, 당시에는 조급한 마음에 그런 워딩을 사용한 것 같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객들에게 다가가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도 그동안 해왔던 활동을 변함없이 진행했다. 어려움을 겪은 만큼,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행동해서 나아가려고 한다. 예전에는 고객이 우리 가치관에 공감을 해주고, 먼저 찾아와줬다. 지금은 우리가 먼저 가서 말을 걸고, 활동도 함께해야 한다. 그것이 과제다."


- 떠난 고객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일련의 사건으로 떠났다고 해도, 우리를 문득문득 생각해 줄 것 같다. 한 번쯤은 돌아볼 것 같은데, 그때 ‘이 브랜드가 진정성을 갖고 계속 활동하고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게 하고 싶다. 다시 좋은 브랜드로 남을 수 있게 저희가 잘하겠다고 말하고 싶다.”
 

[홍리나 대표.(사진=마리몬드)]


마리몬드는 영업이익의 50% 이상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와 위안부 역사관 박물관 건립 기금, 위안부 할머니들의 생활복지 기금 등에 기부한다. 2013년부터 이어온 기부액은 그동안 벌어들인 영업이익의 72%에 달한다.


- 기업은 이익이 남아야 생존한다. 영업이익 50% 이상 기부가 지속가능한 전략인가?

“실제로 어렵기는 하다. 현금 유동성도 떨어진다. 하지만 우리 브랜드 고객들이 단순히 예쁜 상품이라서 소비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속가능성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가치를 얼마나 더 진정성 있게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이 가치를 더 끌어 올려서 고객들의 소비가 아깝지 않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성수동에 계속 머무르는 이유가 있나?

“처음에는 신당 지하 사무실에 있다가 성수동을 중심으로 소셜 벤처들이 모여들기 시작한 시기에 합류했다. 지리적인 위치도 좋고, 소셜 미션을 가진 기업들이 모여 있으니까 협업하기도 좋았다. 공유와 네트워킹을 통해 기회도 많이 얻는다.

성수동은 동네 자체가 예술성이 있다. 낡은 것과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나. 다른 한편에서는, 비즈니스가 안 될 것 같은데 비즈니스를 되게 만드는 회사들이 있다. 이것 또한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 비즈니스가 안 될 것 같은데 되게 만드는 회사, 마리몬드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렇다. 돈도 벌어야겠지만, 마리몬드는 인권의 이야기를 더 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종적인 사람들이 목표는 여행하고 싶어하는 외국 대도시에 마리몬드 매장을 내고, 그 매장 안에 할머니들의 사진을 걸어 놓는 것이다. 이 브랜드의 시작은 멋진 인권 운동가 할머니들이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성수동 이야기'는 아주경제와 루트임팩트가 함께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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