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외이사 임기를 6년으로 제한한 조항부터 보자. 이는 우선적으로 기업 현장의 시각과 어려움을 고려하지 못했다. 6년이라는 기간을 모든 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한 것부터 문제다. 6년이면 3년 임기 두 번 정도인데, 이 기간을 거치면 일률적으로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훼손되는 것이 아니다. 사외이사는 겸직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회사 경영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지는 학습 효과도 상당하다. 이들의 역할이 경영진에 대한 견제와 균형이라고 할 때 경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질수록 견제 역할을 할 수 있는 역량도 축적된다. 따라서 회사별·산업별 사정을 고려해 가이드라인을 주고 회사가 자유롭게 결정하도록 하되 일정 기간 이상 연임하는 경우 그 이유를 공시하도록 하는 정도가 타당하다. 동일한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또한 기업별로 좋은 사외이사후보를 찾고 그 후보의 동의를 구하려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간과되었다. 주총 시즌이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무려 720여명의 상장기업 사외이사를 일시에 교체하는 조치를 밀어붙이는 것도 문제가 많다. 정부가 무리수를 둔 셈이다.
단순투자 목적으로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관투자자에 대해 임직원의 위법행위에 대한 해임 청구, 지배구조 개선 정관 변경 등을 쉽게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것도 문제가 많다. 임직원에 대한 해임 청구나 지배구조개선을 위한 정관 변경은 분명한 경영 참여 행위다. 경영 참여와 단순투자 목적으로 구분할 때 당연히 경영 참여로 봐야 할 사항을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정부는 너무 많은 규제를 통해 기업을 옥죄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오죽하면 이번 선거에 '규제개혁당'이라는 정당까지 등장했겠나. 국민연금의 기업경영 개입을 확대할 근거를 자꾸만 강화한다면 경제적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차제에 기업이 부담하는 규제준수비용과 상장유지비용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경제적 자유 확대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에서 규제자의 의도가 아무리 선하더라도 이를 준수해야 할 피규제자들의 입장도 고려되어야 한다. 만일 규제준수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지키기가 너무 힘들다면 규제를 재고해야 하는 것 아닌가.
피규제자들이 아무리 힘들다고 아우성쳐도 "너희는 원래 그렇잖아"라면서 밀어붙이듯 규제 도입을 강행하는 것을 보면 한숨이 저절로 나온다. ‘사농공상’, ‘관존민비’의 시대가 부활한 느낌마저 든다. 이제 ‘시장 실패’만 거론하지 말고 ‘정부 실패’ 가능성도 같이 거론해야 할 시점이다.
윤창현(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 전 한국금융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