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이른바 ‘우한 폐렴’이 중국 전역으로 확산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다수 의학전문가들이 당국의 엄격한 검사와 보고 체계가 확산세의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10년전 사스(SARS·중증호흡기증후군) 발생 후 정확한 판단과 대응을 위해 구축한 이 체계가 정보의 늑장 공개와, 부실대응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21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최근 홍콩에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의심환자가 우한폐렴에 걸린 게 맞는지 확인하는데 곤혹을 치렀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인 검사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 별도로 마련된 실험실에서 진행해야만 해 비교적 많은 시간이 필요한데다 중국 측 대응이 늦었기 때문이다.
질병전문가인 홍콩중문대학교 데이비드 후이수청 교수는 SCMP와 가진 인터뷰에서 “중국 현지 체계에 대해 명확하게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세계보건기구(WHO)에 지난 12일까지 유전체 염기서열이 제출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며 “따라서 WHO가 배포하는 진단키트를 전달받기 전까지 모든 유형의 코로나 바이러스를 확인하는 진단키트 검사를 이틀에 걸쳐 시행해야 했다”고 밝혔다.
홍콩과 해외 국가들은 중국이 WHO에 전달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유전체 염기서열을 확보해 우한폐렴을 확진해야 한다. 유전체 염기서열만 확보하면 몇 시간 안에 진단이 가능하지만 중국의 늑장 보고로 이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얘기다.
익명을 요구한 광둥성 보건 당국 관계자는 이런 늑장 보고에도 나름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보고가 3단계 확인 절차를 걸쳐야 한다는 이유다.
그는 “예를 들어 지역병원에서 바이러스 확진 판정이 나와도, 전문위원회 진단 결과, 중국 질병통제예방센터의 양성 판정 등이 완료돼야만 확진자를 발표할 수 있다”며 “모든 관련 보고 체계가 몇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체계는 과거 사스 사태 후 당국이 수십 억 위안을 들여 구축한 체계라고 SCMP는 부연했다.
전염병의 확산을 막는 우한 당국의 예방 조치가 부실하다는 점도 문제다. SCMP에 따르면 최근 우한을 다녀온 한 베이징 거주민은 우한 기차역에 도착했을 때 마스크를 쓴 사람은 본인 뿐이었다며 “전염병 확산 예방 조치가 잘 시행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일반 대중이 폐렴 감염 위험에 대한 낮은 의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중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환자는 발생지인 후베이성 우한을 벗어나 수도 베이징과 광둥성, 상하이시 등 중국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20일 저녁 8시(현지시간) 기준 감염자는 218명에 달한다. 우한시 198명, 베이징시 5명, 광둥성 14명, 상하이시 1명 등이다. 해외에서 확진한 환자는 한국 1명을 비롯해 일본 1명, 태국 2명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