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봉석 사장은 내년 1월 7일~10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Consumer Electronics Show)에서 LG전자 수장 데뷔전을 치른다. 지난해에는 MC(모바일)과 HE(가전) 사업본부장으로 참석했다. 이번 행사에서 LG전자는 가전 왕좌 수성과 모바일 흑자 전환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LG전자는 전통적인 가전 강자로서의 면모를 세탁기로 강조할 전망이다. 권 사장 전임인 조성진 대표이사 CEO(부회장)는 세탁기 기술 국산화와 트윈워시 흥행의 주역이다. 권 사장은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수익성 강화를 이어왔다.
권 사장이 선임된 이유로 LG전자는 “기술과 마케팅을 겸비하고 현장 감각까지 갖춘 전략가”라고 밝혔다. 백색가전의 명가 자리를 지켜내고 적자가 줄어든 MC 부문을 흑자로 돌려야 하는 상황에서 과거 성공 사례보다 전략적으로 빠른 의사결정이 더 중요해졌다는 판단이다.
◆CES 이후가 주목받는 TV 전쟁
기본은 품질이다. LG전자는 이번 CES에서 인공지능 DD(Direct Drive)모터를 탑재한 트윈워시 신제품을 공개한다. 제품은 의류 무게를 감지한 뒤 인공지능이 빅데이터 약 2만개로 의류 재질을 판단한다. 이어 6모션 가운데 최적의 모션으로 세탁한다. LG전자는 세계적 인증기관 ‘인터텍(Intertek)’의 지난 3월 검증 결과를 인용해 DD모터가 일반 드럼세탁기보다 옷감 보호 성능이 약 18% 높았다고 설명했다.
세제가 떨어지면 LG 씽큐(ThinQ) 앱으로 소모품을 자동 주문하는 ‘아마존 대시(Amazon Dash Replenishment Service)’도 사용할 수 있다. 미국 소비자들은 내년 3월에는 제품 설치부터 사용, 관리에 이르는 전과정을 최적화해주는 프로액티브 서비스(Proactive Customer Care)도 이용할 수 있다. 서비스는 제품 작동 상태를 분석해 예상되는 고장을 사전에 감지해 알려준다.
올 연말 호평을 이어간 TV 품질 경쟁에서도 우위를 보여야한다. 올레드TV(모델명 C9)은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가 뽑은 ‘올해의 베스트 100 제품’에서 지난해에 이어 베스트 TV를 차지했다. 명암비와 블랙 표현, 시야각과 색 재현 능력 등에서 후한 점수를 받았다. 세계 최초 8K 올레드 TV ‘LG 시그니처 올레드 8K’는 ‘타임(TIME)’에서 ‘미래의 TV’로 평가받아 올해 최고의 발명품에 선정됐다. LG전자는 이달 ‘외산의 무덤’으로 불리는 일본에 제품을 출시하며 내년 도쿄 올림픽 관련 수요에 자신감을 보였다.
관심을 모은 삼성전자 관련 비방전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CES의 상호비방・비교전시 금지 때문이다. 다만 다양한 형태의 기술력 과시로 숙적과의 신경전은 이어갈 전망이다.
LG전자는 향후 TV 전쟁을 어떻게 이어갈 지에 대한 단초도 암시할 수 있다. 올해 LG전자는 QLED TV가 사실상 LCD 제품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광고와 기자 설명회, 공정거래위원회 제소 등으로 삼성전자와 번번이 충돌하고 있다. TV를 만드는 HE사업부문 3분기 영업이익은 3180억원으로 2017년 같은 분기 4580억원보다 낮다. 이번 TV 전쟁은 그간 인정받아온 품질을8K 시장 선점과 영업이익으로 이어가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TV 전쟁에 권 사장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이번 행사를 기점으로 확인될 지, 전략 수정이 있을 지 여부가 향후 관전 요소다.
LG전자는 권 사장의 전략을 신뢰하며 최고 경영자 자리에 앉혔다. 그는 1987년 입사 이후 전략과 상품기획, 연구개발, 영업, 생산 등 가치사슬로 경력을 쌓았다. LG전자가 그의 ‘선택과 집중’ 전략을 기대하는 이유다. 대표적인 사례가 커브드 TV 포기다. LG전자는 2013년 초 몰입감을 높인다며 화면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제품을 내놨다. 하지만 권 사장이 사업본부장을 맡은 뒤 커브드TV는 판매가 중단됐다. TV는 거실에서 가족이 함께 보기 때문에 단 한 명의 몰입감에 초점을 맞추면 주력 제품이 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그의 확신대로 지금은 시장에서 커브드 TV를 찾기 어렵다. 그 대신 LG전자가 집중해온 제품이 올레드 TV다.
◆모바일・자동차 생태계 확장 본격화
모바일에 대한 선택과 집중 전략도 흑자 전환을 뒷받침 할 지 관심을 모은다. 권 사장은 올해 MC사업본부장을 겸하면서 평택 스마트폰 생산 공장을 베트남으로 옮겼다. 보급형에 한정됐던 제조업자개발생산(ODM)을 내년부터 중가대 제품으로 확대한다.
5G 프리미엄 제품은 올해 호평 받은 듀얼 스크린으로 점유율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LG전자는 10월 4분기 사업 환경 악화를 예상하면서도 내년 미국에서 애플보다 5G를 먼저 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흑자전환이나 미국 시장 선점을 위해서는 생태계 구축 등 제품 매력을 높여야 한다. 애플 제품은 아직까지 LTE 제품 뿐이지만 세계 점유율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3분기 애플 제품 출하량은 11.8%로 3위다. 삼성전자는 20.6%로 1위, LG전자는 2%에 머물렀다.
LG전자는 게임과 통신, 방송 등을 아우르는 생태계 조성에 나서고 있다. 한쪽 화면에서 네이버 웨일로 검색한 기사를 누르면 다른쪽 화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게임 컨트롤러 앱 ‘LG게임패드’를 켜면 아래 화면을 게임 패드로 활용할 수 있다. LG전자는 e스포츠대회 ESL 모바일 오픈 시즌 3를 후원하고 선수들이 배틀그라운드와 클래시 오브 클랜, 아스팔트9 등을 듀얼스크린으로 즐기는 모습을 홍보했다.
제품 자체의 매력을 끌어올린 다음에는 기기 간 연동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iOS와 안드로이드 진영을 대표하는 아이폰과 갤럭시는 이미 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애플은 2011년부터 아이폰과 아이패드, 맥 등 자사 기기 간 사진과 동영상, 통화와 문자 메시지, 인터넷 검색 화면과 이메일 이어 쓰기 등 사용 경험 전반을 하나로 묶고 있다. 2015년에는 애플워치도 전화와 문자, 음악 연동에 가세하며 기기 사용 습관을 자사 제품 안에 묶어두고 있다. 삼성전자 역시 올해부터 마이크로소프트(MS) 원드라이브를 이용해 갤럭시 노트10과 랩톱, 태블릿과 스마트워치 등을 연동하는 서비스에 돌입했다. 실시간 동기화 경쟁에서 밀려나기 전에 스마트폰 자체 점유율을 키워놔야 LG전자 생태계 구축에 유리해진다.
LG전자 생태계 발전은 자동차에서 우선 확인될 전망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LG전자는 리눅스 기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플랫폼 ‘웹OS 오토(webOS Auto)’를 강화해 소개한다. 이 플랫폼은 커넥티드 카(Connected Car)의 서비스 허브 역할을 지원한다. 커넥티드 카는 네트워크에 연결된 자동차가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념이다. 차에서 인터넷 라디오, 비디오 스트리밍 등을 이용 할 수 있다. 기술 개발에 퀄컴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이 참여했다. 이들 회사의 협력으로 5G 속도로 MS 클라우드 플랫폼을 통한 오디오와 비디오, 내비게이션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