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낱말인문학]체로금풍(體露金風), 가장 아름다운 겨울나무에 관하여

2019-12-28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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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클림트의 '생명의 나무' ]

[빈섬 이상국의 낱말인문학] 늦가을이 되어 나뭇잎이 우수수 지면 어쩐지 쓸쓸하고 어둑한 마음이 된다. 모든 존재가 시간을 따라서 저렇듯 흩어지겠구나 하는 기분. 생명을 타고난 것들이 느끼는 사무치는 공감대다.

체로금풍은 벽암록 제27칙에 나오는 말이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지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제자의 물음에 운문선사는 이렇게 말한다. "몸을 벗기는 가을바람이로다." 그것이 체로금풍이다. 심오한 생각이 들어있을 것 같지만, 뜻밖에 단조롭고 평이하다. 금풍은 황금의 바람이라고 말해도 되겠지만, 오행의 금(金)에 해당하는 것이 가을이기에 금풍은 가을바람인 셈이다. 금은 변하지 않는 것, 빛나는 정수라는 의미가 있다는 점을 새긴다면, 가을은 변하지 않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계절인 셈이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지는 것에서 죽음을 느끼는 까닭은, 생명이 깊숙이 숨겨놓은 불안 때문이다. 나는 태어났으니 죽는다는 것을 늘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탄생을 시작으로 보고 죽음을 끝으로 보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간은 이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탄생이 육신 이상의 시작이 아니요 죽음이 육신 이상의 끝이 아니라는 것을 깊이 받아들이라는 권고가 어느 종교에든 다 들어있다. 시작과 끝이 없다면, 생명의 불안 또한 실없는 것이 된다.

몸을 벗기는 체로(體露)에는 인간이 곧잘 떠올리는 누드의 야함은 없지만, 프랑스 누드비치의 순정한 인간염원 같은 것들은 있다. 하늘과 태양과 바다와 그 사이의 장대하고 흔쾌한 허공을 그야 말로 수식 없는 온몸으로 즐기고자 하는 것, 알몸정신 같은 것이다. 유럽사람들이 인류 중에서 특별히 야한 것을 밝혀서 그런 것이 아니라, 체로금풍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체득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무가 시들고 잎이 떨어진다고 보는 것은, 그야 말로 자신의 육신의 한계를 들여다보고 지레 고개를 떨어뜨린 인간생명의 시선일 뿐이다. 나무는 죽을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다. 금풍은, 지혜의 메시지를 실어나르는 우편배달부와도 같다. 그 지혜는, 앞으로 날이 추워질 것이며 많은 생명들이 이에 알맞은 대비를 하면서 더욱 건강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만들라는 부전지를 붙이고 있다.

나무는 즐거이 그 메시지를 받아들고 가만히 자기 삶의 순서에서 해야할 일을 행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것은 겨울에 부족한 햇살과 수분, 그리고 영양분을 가지와 줄기에 집중하여 간결한 알맞음으로 살기 위해서다. 그리고 떨어뜨린 나뭇잎이나 가지에 붙어 오그라진 나뭇잎들은 병들거나 버린 것들이 아니라, 겨울 동안 땅의 거름이 되고 지속적인 영양을 대주는 보조영양제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추위는 많은 미생물 적대자들을 제거해줘서 오히려 위생을 도와준다. 거기에 죽음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생의 기지와 의욕으로 넘치는 풍경이 있을 뿐이다.

체로는 마침내 생을 헐벗은 가슴으로 존재를 우주 허공에 내던지는 멋진 포즈다. 봄여름가을 생에 주어진 조건들이 우연히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니라 생명을 운행하는 시간의 다채로운 은총이 만들어낸 것이란 점을 온몸으로 체득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겨울, 생명은 스스로를 돌아보고 뿌리를 내려다보며 존재의 실체적인 윤곽을 점검하며 아름답고 진지한 한 때를 보낸다. 햇살과 바람은, 나뭇잎의 수식에 가려지지 않고 몸뚱이와 직면하여 대화를 나눈다. 가려져 상상만 했던 것들의 실체와 진실을 읽으며 내면을 단단하고 튼실하게 키우는 때다. 생명이 가장 생명답게 살아있는 때는 이때가 아닌가.

금풍에 제 몸을 드러내는 일이야 말로, 축복이다. 금풍에 제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을 할 것인가. 살아서 늘 모든 것을 가리고 숨기고 남도 모르고 자기도 모르는 채 살아가면 어쩔 것인가. 얼어죽을 망정 이토록 감미로운 자성의 시간을 주는 겨울은, 하늘의 계시를 보내는 성자다. 체로금풍은 그대가 지금껏 본 나무 중에서 가장 진실한 나무다. 누드비치에 누운 곱슬털의 남녀가 순정한 것만큼. 

# 예술하는 사람 모씨는 산집을 차려놓고, 취산몽해 체로금풍  醉山夢海 體露金風 여덟 글자 이름띠를 딱 붙였다. 산은 취했고 바다는 꿈에서 깨지 않았으니 이쯤이 딱 좋다. 저 홀로 웃통 벗고 우주에서 날아온 메시지 한통을 마른 심장으로 받아치며 맞장을 떠보겠다는 선전포고 같은 것.

                                                  이상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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