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기억]불교계의 가장 맑은 큰스님이 입적하다, 봉암사 적명스님

2019-12-25 14:16
  • 글자크기 설정

[24일 입적한 봉암사 적명스님.]


# 평생의 고요한 수행자, 성탄 이브에 홀연히 입적

불교의 큰 스님 한 분이 홀연히 입적했다. 문경 봉암사(가은읍 원북리)의 수좌 적명스님이 성탄 이브(24일)에 입적했다. 한국 불교계가 우러르는 선승이었다. 1939년생으로 향년 80세다. 제주 출신으로 1960년 나주 다보사에서 우화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해인사 자운스님을 스승으로 구족계를 받는다. 통도사와 백양사 선원장을 역임했다. 선승 단체인 전국선원수좌회 공동대표를 지냈고, 2018년 조계종 승려 최고품계인 대종사(大宗師)에 올랐다.
24일은 겨울 석달 선방 참선수행인 동안거 결제의 '반결제날'이었다. 이날 아침 적명스님은 동료승들과 봉암사 뒷산이 희양산에 산행을 갔다. 내려오는 길에 다른 승려들과 떨어진 채 하산을 했는데 홀로 용추 쪽 바위를 구경하러 간 것 같다고 동행하던 승려들은 말했다. 그런데 점심 공양 때가 되었는데도 내려오지 않아 이상히 여겨 119에 신고를 했다. 경찰은 오후 4시36분께 근처 계곡에서 숨진 스님을 발견했다. 경찰은 나무에 걸려 넘어진 듯한 현장 흔적을 보았고 실족사고 가능성을 조사 중이다.

조계종단의 존경을 받아온 적명스님은 어떤 분이었을까. 봉암사에서 정진을 거듭해온 그는 11년전에 이미 조실(祖室)에 추대되었으나 "나는 아직 그럴 위치에 있지 않다"며 사양했다. 2009년부터는 조실 다음 소임인 수좌를 맡아왔다. 그래서 봉암사 조실 자리는 공석이다. 절은 규모에 따라 총림(叢林, 종합수도원)과 일반사찰로 나뉜다. 통도사(영축총림), 해인사(가야총림), 송광사(조계총림), 수덕사(덕숭총림), 백양사(고불총림)이 5대총림이다. 총림의 큰스님은 방장(方丈)이라 부른다. 그외의 절에서는 큰스님을 조실로 모신다.

# 조계종 특별선원인 봉암사의 조실 추대를 사양한 겸허한 '수좌'

봉암사는 총림의 규모는 아니지만, 절중의 절이라고 불리는 조계종 유일의 종립특별선원이다. 이곳은 연중 산문을 닫아걸고 100여명의 선승들이 참선으로 일관한다. 오직 부처님 오신 날 하루만 일반인들에게 개방된다. 1947년 한국 불교의 기둥이 된 성철,청담,자운,월산,혜암,성수,법전스님 등이 '불법(佛法) 수행정진'을 맹세한 곳이다. 조계종이 선(禪, 참선으로 자신의 본성을 구하고 밝혀 깨달음의 묘경을 터득하는 것)을 종지(宗旨, 종문의 큰 방향)로 삼은 것은, 바로 봉암 결사(結社)에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심장한 절의 리더가 적명스님이다.

그는 평생을 선원과 토굴에서 참선수행을 거듭했으나 불교의 타락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준렬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1980년 불교정화 사태 때 그는 홀연히 나서서, 준동하는 사판승(事判僧, 직위나 직책에 마음을 두는 승려)들을 일거에 교체하고 다시 홀연히 선원(禪院)으로 돌아간 일이 있었다. 2013년 선원수좌회의 원로로 총무원장 사태 때 혁신을 촉구하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그때 했던 일갈은 지금도 쩌렁쩌렁하다. “불교계에 퍼져 있는 부정부패의 근원은 명백합니다. 속된 말이지만 '돈'입니다. 부정부패를 추방하려면 딱 한가지만 하면 됩니다. 스님들로 하여금 돈에서 멀어지게 해서 돈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사찰의 재정을 투명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재정 관리에 신도들이 참여해야 합니다. 이미 가톨릭과 원불교에서 시행하는 방법입니다. 주지들이 마음대로 돈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없애면 주지 자리를 탐하는 사람도 없어질 것입니다."

# 돈뭉치를 앞에 갖다놓으면 쇠로 된 부처님도 흔들릴 것

그때 그는 이런 말도 했는데, 깜짝 놀랄 법어였다.

"당나라 황제 측천무후는 신심이 있어서 스님들을 잘 받들고 불사를 많이 했는데,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고 합니다. 큰 스님들을 궁으로 모셔서 벌거벗은 궁녀들이 목욕을 시키게 한 겁니다. 측천무후는 구멍을 뚫고 그 모습을 지켜봤다고 하는데, 그 중 혜안대사와 신수대사가 의연하게 대처해서 두고두고 존중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벽암록(중국 송나라 때의 불서)은 이 사연을 거론하면서 '그와 같은 일을 당하면 철불(鐵佛)이라도 땀을 흘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돈에 대한 위력을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돈뭉치를 앞에 갖다놓으면 쇠로 된 부처님도 마음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이죠. 실은 저 자신도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범속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연치 않게 만나서 이러저런 불가의 이야기를 했는데 때묻은 사람을 일방적으로 나무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상황이 이렇게까지 된 것은 우리들의 잘못입니다. 그동안 선방이 다른 사람들의 감동을 이끌어냈다면 종단의 현실은 이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큰스님이 되기까지 그의 수행여정은 어떠했을까.

스무 살에 출가하는 그는 관세음보살을 염불하며 관(觀)수행을 하다가 깜짝 놀랄 체험을 한다. 천상 천하 극락 지옥을 생시보다 더 생생하게 본 것이다. 나중에 알고보니 '능엄경(대승경전)'에 나와 있는 '수행과정에 나타나는 마장(魔障)들'과 흡사했다. 이 체험을 하고난 뒤 그가 범어사 동산스님과 통도사 경봉스님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았는데, 그들은 "관수행은 돌아가는 길이니 화두선을 하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그러나 관수행의 체험이 너무나 강렬했던지라 당시엔 그들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선가의 은사인 성철스님과 돈오돈수-돈오점수를 논쟁

25세때 토굴에서 참선수행을 할 때 법화경과 절요(보조국사의 책)를 읽는다. 그는 그때의 일을 이렇게 말했다. " 몇 권은 사라지고 조각조각 남은 '법화경'이었죠. 읽으면서 솟아나는 감동에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절요'도 앞뒤 몇장이 떨어져나가 너덜너덜한 책이었죠. 한자로 돼있고 토도 안 달려있고 띄어쓰기도 안된 이 책을 붙들고 옥편을 찾아가며 세 번을 읽었습니다. 그 마지막에 '수행을 하려면 활구참선(活句參禪)을 하라'는 말이 있는 것을 보고, '무(無)' 한 글자를 붙들었습니다."

그는, 선가의 큰 은사인 성철스님과 깨달음과 수행에 대한 논쟁적 입장을 개진하기도 했다. 성철은 단박에 깨달으면 더 이상 닦을 일이 아니라는 돈오돈수(頓悟頓修)를 밝혔지만, 적명은 깨달은 후에도 더 닦아나가야 한다는 돈오점수(頓悟漸修)의 입장을 취했다. 성철스님의 주장은 고려 원종국사 태고 보우의 이론과 맥을 같이 하고있다. 이에 반해 적명은 보우의 주창에 반대입장을 취했던 보조국사 지눌의 생각을 따르고 있다. 고려 때의 수행논쟁이 한국 불교계로 이동했다고도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적명은 이렇게 말했다. "보조국사 지눌도 돈오돈수를 인정하긴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드문 경우로 상근기(上根機)는 돼야 한다고 했죠. 상근기는 부처 말씀을 전혀 접하지 못한 사람이 그 말씀을 듣는 첫 순간에 바로 깨달음을 얻는 바탕을 가진 경우를 말합니다. 중국의 육조 혜능같은 분이 그런 분이죠." 그러면서 적명은 덧붙인다. "막 금광에서 캐낸 금도 금인 것은 맞지만 이를 단련하고 또 단련해서 순금이 되게 하는 것이 돈오점수입니다."

# 호수에 비친 달과 하늘의 달, 이것이 이것이구나

적명이 머무른 봉암사는 7세기 신라 헌강왕 때 지증대사가 창건했다. 지증대사는 왕이 여러 차례 왕궁에 초청하자 마지못해 찾아갔다. 하지만 하룻밤 머물고 돌아와 버린다. 새벽 호수에 비친 달을 보며 그는 이렇게 말했다. "是卽是 餘無言(시즉시 여무언, 이것이 바로 이것이구나 더 말해 무엇하리)'

여러 가지 의미가 있겠지만, 하늘에 비친 달과 호수에 비친 달이 다르지 않다는 자타불이(自他不二)의 깨달음이 아닐까 싶다. 자타불이는 사랑을 의미한다. 타인을 자신과 같이 대하고 자신을 타인같이 대하는 태도가 자타불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 부부간에 사랑한다는 말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다. 깨달음의 덕성은 하나에 있다. 적명은 초기 불교와 대승불교의 핵심개념으로 중도를 꼽는다. 상대적인 것과 차별적인 것들이 존재를 이루는데 이 상대와 차별을 벗어난 것, ‘다르지 않은 것’(不異性)이 중도이다. 존재의 굴레를 벗어나는 비밀은 여기에 있다고 그는 말한다.

# 부처가 아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이 장면에서 적명의 설법에도 들어있는 부처의 아들 이야기가 떠오른다. 부처는 도를 이루고 나나서 고향 친인척을 제도하고자 가비라성으로 간다. 무두가 마중을 나왔으나, 부인인 야수다라는 나오지 않는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남편에 대한 원망이 있어서였으리라. 그런데 탁발을 하러온 부처를 본 야수다라는 아들 라훌라를 그의 아버지에게로 보낸 뒤 세상에서 가장 비싼 보배를 달라고 청하게 한다. 아들의 말을 들은 부처는 그를 데리고 가서 머리를 깎게 하고 수행자로 만든다.

적명은 부처가 아들에게 분명히 이렇게 말했을 거라고 설법했다. "너는 장차 가비라성의 성주가 되어서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일찍이 그와 같은 상황이었지만 부귀영화가 우리를 지켜주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에 출가를 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부귀영화는 늙음도, 질병도, 죽음도 막아주지 못한다. 이 세상 어떤 것도 그 고통에서 우리를 진실로 보호해주지 못한다. 아버지는 깨달음을 성취해서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을 터득했다. 그래서 너를 숲으로 데려가려는 것이다.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이루면 이 말의 뜻을 너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이 가치 있다는 걸."

# 부처님은 고행한 게 아닙니다 최상의 기쁨을 느낀 분입니다

'적명(寂明)의 길'은 말없이 세상을 비추는 햇살처럼 고요히 이 시대 이 땅을 비추고 간 위대한 깨달음의 여정이었다. "설사 깨달음의 길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수행 자체가 기쁨이어야 합니다. 저는 부처님이 고행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삼매경은 희열입니다." 오래전 토굴에 머물 때 프랑스인 비구니가 와서 물었다. "그렇게 수행만 하는 건 안생의 낭비가 아닐까요?" 그는 답했다. "성불해서 중생을 도울 지혜만 갖출 수 있다면 천생 만생을 들여도 아까울 게 없습니다. 남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힘을 갖춘다면 대체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그는 그 질문을 붙들고 온몸으로 정진하다가 가만히 '적명(寂明)'의 기쁨 속으로 입적했다.

이상국 논설실장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