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내에서 수많은 재화들은 국가 사이를 오가면서 무역의 대상이 되는 교역재이다. 그런데 부동산은 좀 다르다. 해외에서 수입이 불가능한 비교역재이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교역재 가격이 일시적으로 오를 조짐이 보이면 해외 수입이 늘어나면서 가격상승은 억제된다. 하지만 부동산은 다르다. 해외요인의 영향을 받는 동시에 국내 특수요인을 상당 부분 반영하므로 다른 교역재와 다르게 독자적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10여년 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미국에서 유동성 과잉으로 인한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발생한 서브프라임 위기가 원인이 되었다. 부동산 버블이 터지면서 부동산 시장의 이상상황이 금융시장을 강타하자, 이 쇼크가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엄청난 실물위기로 번져 버렸다. 글로벌 수준의 불황이 발생하자 불황 극복을 위해 각국 중앙은행들은 제로금리 내지 마이너스금리까지 불사하면서 통화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최근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 폭등을 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특히 경제 전체적으로 디플레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특정 지역 부동산 가격만 오른다는 것은 우리 경제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10여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우리 경제는 외환위기의 조짐이 있었으나 IMF 위기 때와 달리 유동성 위기를 겪지 않고 잘 피해갔다. 하지만 글로벌 경제의 불황이 가져오는 여파로 인해 우리도 결국 금리를 내리고 통화량을 늘리면서 어려움 극복을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 경제 내에서 통화량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9년 3분기 말 기준 1500조원 근처였던 총통화(M2) 지표가 10년이 지난 2019년 3분기 말 기준 2800조원이 넘고 있다. 10여년 만에 86.6%가 증가한 것이다.
지난 10여년간 연평균 통화량 증가율이 7% 정도였으니, 물가와 통화량이 비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물가상승률도 그 정도일 수 있었다. 하지만 교역재가 많은 상황에서 물가상승률은 1∼2%대에 그쳤다. 그리고 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돈이 도는 속도도 감소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최근 우리 경제에 이상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글로벌 위기 이후 돌지 않던 돈이 시간이 지나면서 기업을 포함한 생산적 분야보다는 특정지역 부동산으로 급격히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더구나 상황이 어려운 지방 부동산은 여전히 부진한 가운데 특정지역 주거용 부동산으로 돈이 흘러가면서 부동산 가격에 이상이 발생하고 있다,
우리 경제 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화, 즉 생산재·소비재·수출재까지 다 합쳐서 계산되는 가장 광범위한 물가지수를 ‘GDP 디플레이터’라 하는데, 이 지수의 전년 동기 대비 상승률은 올해 3분기 말 기준 –1.6%로 20여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소비자물가상승률은 0% 근처이다. 경제 전체로는 디플레 기조가 자꾸만 확산되는 느낌인데 특정 지역 부동산 가격만 상승하고 있다. 경제 전체적으로는 디플레, 특정 부문에서는 ‘국지적 인플레’가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매우 불안하다.
이번 부동산 시장의 흐름은 자금 시장 전반에 대한 고찰이 필요함을 역설해 주고 있다. 보유세 인상같이 부동산 시장 내부적 관점에서 수요를 줄이는 식의 정책에만 머무르지 말고, 자금 흐름 전반을 따져보면서 어떻게 해서든 자금이 생산적 분야로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전략까지 포괄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부동산 부문만 따로 떼어 보지 말고 자금시장 내지 금융시장 전체까지 감안하는 폭넓은 시야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전 한국금융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