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연세대학교 백양누리관 그랜드볼룸에서는 한국언론학회 문화젠더연구회 주최로 'BTS 너머의 케이팝: 미디어 기술, 창의산업 그리고 팬덤문화'라는 특별 세미나가 진행됐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후원 기업으로 이번 행사에 참여했다.
전 세계 대중음악 시장에서 전례 없는 성공으로 한류 지평을 넓히는 방탄소년단(BTS). 이들이 만들어 낸 새로운 현상과 K팝을 둘러싼 문화적 지형을 각국 연구자가 학술적으로 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기조연설을 맡은 홍석경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방탄소년단의 성공은 한류와 K팝 연구에서 국내와 동아시아 중심에서 전 세계적 지평으로의 확대를 가져왔다"고 짚었다.
홍 교수는 이날 기조연설 '한류 연구의 지형도: BTS 등장 이후의 새로운 지평'에서 방탄소년단이 한류 연구를 기존 민족문화 중심에서 코즈모폴리터니즘(cosmopolitanism), 즉 세계적인 시야로 조명하는 데까지 넓혔다고 짚었다.
예컨대 한국의 K팝 팬과 글로벌 K팝 팝사이에서 벌어지는 인종주의 논의 등이 예다. 홍 교수는 "방탄소년단은 한류 현상과 한류 연구를 새로운 차원으로 끌어올렸다"고 했다.
국경을 초월하는 '트랜스내셔널' 흐름에 있는 한류의 중심이 방탄소년단 덕에 K팝으로 옮겨온 것은 부인할 수 없다면서 "K라는 접두사가 붙은 모든 현상에 대해 "특별한 홍보 없이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게 됐다"고 했다.
특히 "방탄소년단과 한류의 부상으로 한글의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면서 "프랑스만 해도 대학에서 한국어를 담당하는 교수들의 자리가 여럿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방탄소년단의 노래 가사들을 문화적으로 번역하는 일들이 생기고 있다"는 것.
미국 대중음악 차트 '빌보드'의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서 방탄소년단이 세번이나 1위를 차지하면서 "한류가 이제 더 이상 동아시아 현상이 아닌 글로벌한 대중문화 현상임을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이 포함돼있지 않는 K팝 그룹이 생기는 것"이 예다.
홍 교수는 "방탄소년단 덕에 새롭고 대안적인 남성성이 등장한 것"에 대해서도 짚었다. 특히 서구 여성이 그간 아시아 남성에 대해 갖고 있었던 지배적이고 고정된 이미지를 버리고, 새로운 가능성의 시선을 가져가는 것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홍 교수는 "80, 90년대 대학을 다닌 연구자들은 동아시아 중심으로 한류 연구의 기초를 닦았다"면서 "지금은 훨씬 더 젊고 아카데믹한 팬들이 아이돌 팬덤과 같은 눈높이에서 같은 감수성을 가지고 새로운 문제를 제시하고 연구 방법을 개척하고 있다"고 짚었다. "글로벌 대중문화로서의 K팝 연구가 시작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덧붙였다.
첫 번째 세션에선 'K팝의 정경'이라는 제목으로 방탄소년단 전후로 변화한 K팝 문화에 대해 전문가들의 발제가 이뤄졌다면, 두 번째 세션에선 방탄소년단 팬클럽 아미에 집중해서 논의가 발전됐다.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 대학교의 진달용 교수팀,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박사과정의 베르비기에 마티유, 서강대학교 원용진 교수팀이 발표자로 나섰다.
진달용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 교수는 "방탄소년단의 진정성은 결과적으로 메시지에 기인한다"며 "팬들은 청소년들의 꿈, 젊음, 분투, 자아실현 등의 주제에 동일시하고, 점증하는 불균등과 불확실성 시대에 자라면서 경험을 공유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정서적 친밀감을 보인다"고 분석했다.
진 교수는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즐길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아무리 소셜 미디어와 팬들의 영향이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데뷔 당시부터 가지고 있던 특유의 음악성이 먼저다.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들의 분투, 자아실현 등 사회성이 있는 이야기를 음악에 담았다. 또 ‘러브 유어셀프’라는 독특한 메시지 역시 특징이다. 팬들을 열심히 살게 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메시지들이 팬들에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어 “방탄소년단은 소셜 미디어를 잘 활용하고 있는 그룹이기도 하다. 방탄소년단과 팬들은 경제적 불균등,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함께 자라면서 경험한 것들을 소셜 미디어를 통해 공유하며 접점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러한 이유로 방탄소년단의 팬들이 지역이나 국가성에 의존하지 않고 인종, 나이, 젠더를 넘어서 초문화적 팬덤을 형성할 수 있었다고 본다”라고 밝혔다
진 교수는 "방탄소년단의 팬덤은 초국가성보다 소셜미디어와 영향이 깊은 초문화성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고 캐나다 214명 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를 공개했다. 그는 설문대상에 대해 "팬층의 연령대가 40대 이상으로 확대되고 있고 백인의 비율도 높았다. 73세 아미를 만나 인터뷰하는 독특한 경험도 했다"고 소개했다.
두 번째 발표자 베르비기에 마티유는 2018년 9월 24일 방탄소년단 RM이 UN에서 연설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당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성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목소리를 내주세요"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특히 '젠더 아이덴티티'에 대한 키워드를 통해 "보수적인 한국사회를 알기 때문에 RM이 이런 내용을 부각시킨 점이 흥미로웠다"면서 해외 아미들의 트윗 분석을 통해 방탄소년단이 성 정체성 표현의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세번째 발제자로 나선 서강대 원용진 교수팀은 “미국에서 방탄소년단의 팬덤이 많이 생기면서, 팬덤에 대한 연구가 있었지만 인종문제와 관련된 연구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이전까지 미국에서 아시아인을 보는 시선은 공부를 잘하고 똑똑하지만 성적 매력이 없는 존재였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이 이런 것들에 대해 균열을 내고 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미국에서 한국 대중문화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등장하자 이들을 ‘코리아부’(KoreaBoo)라고 부르게 됐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면서 한국 문화를 왜곡하며 물신화 하는 행위를 하는 이들을 언급하는 혐오적인 표현이다. 한국 문화를 잘 모르는 일반 미국 대중 다수가 K팝을 좋아하는 사람을 ‘코리아부’라고 부르지만, K팝 팬들은 이 단어를 무차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말한다”라고 밝혔다.
원용진 교수팀은 “이전에는 미국에서 아시아인에 대한 멸시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출했다면, 이제는 그런 문화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의 학술적 담론은 K팝과 BTS 뿐만 아니라 팬덤 내의 위계와 민족, 종족에 대한 논의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라고 덧붙였다.
김춘식 한국언론학회 회장은 동 세대의 고민을 함께 안고 살아가는 K팝 스타들이 공감을 준다며 "노래와 춤에 숨겨져 있는 여러 의미를 탐색하는 것에 팬들이 동참하면서 같은 시·공간에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는 ‘21세기 비틀즈’로 불리는 방탄소년단이 만들어낸 아이코닉한 문화 현상에 대해 다룬다. 방탄소년단 등장 후 K팝 관련 논의가 어떻게 발전, 확장하고 있는지 학계의 다층적인 관점에서 토의하는 장으로 마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