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9일 오후 11시 50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3세.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김우중 전 회장이 수원 아주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영면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대우그룹은 모태인 대우실업으로 출발했다. 섬유류 등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1970년 경제성장과 수출호조 등에 힘입어 그룹 초석을 다졌다. 국내 최초 해외 진출을 했으며 이후 내쇼날의류, 대우건설 등을 설립하고 고려피혁, 쌍미섬유공업, 동양증권(대우증권 전신) 등을 인수하면서 사세를 확장시켰다. 1970년대 말에는 새한자동차(현 한국GM) 인수, 대한조선공사 옥포조선소를 인수해 대우조선공업(현 대우조선해양)을 설립했다.
1980년부터는 모기업인 ㈜대우와 대우자동차, 대우전자 등이 잇달아 출범했다. 이후 대우증권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대우경제연구소를 설립하면서 ‘대우맨’을 알리기 시작했다. 본격 팽창 시기인 1990년대에는 세계 경영을 선포하면서 주력 계열사들의 해외 현지법인 설립, 기업 인수 등으로 당시 삼성그룹을 재치고 현대그룹에 이은 국내 재계서열 2위에 오르게 된다.
1998년 아시아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룹 입지는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정부는 구조조정을 요구했지만 대우그룹은 대응이 늦었다. 자금난을 겪으면서 일부 알짜자산을 매각하기도 했지만 400%가 넘는 부채비율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초강도 구조조정안을 발표했지만 채권단을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결국 해체수순을 밟았다.
일명 ‘대우사태’ 파장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차입경영을 무시한 댓가라는 주장과 정치적 요인에 의한 희생양이라는 의견이 좀처럼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대우그룹을 둘러싼 논란만큼이나 대우그룹 계열사들의 ‘잔재’도 여전하다. 그 영향력 만큼이나 다양한 사업을 영위한 탓이다.
대우자동차 승용차 부문은 2002년 제너럴모터스(GM)에 인수됐다. GM대우로 사명을 변경하고 시장점유율을 높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2011년 쉐보레 브랜드로 흡수 통합되면서 새롭게 출발한 것이 현재 한국GM이다.
대우건설은 2006년 금호아시아나그룹으로 편입됐다. 이후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고 현재는 한국산업은행 관리하에 있다. 또 다른 건설사 경남기업도 대우그룹 계열사였다. 대아건설에 인수된 이후 역으로 흡수합병했다.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2015년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현재는 SM그룹 산하에 있다.
대우그룹 본사가 위치해 있던 서울역 앞 대우센터빌딩(현 서울스퀘어)는 그룹 해체 후 대우건설 소유로 있었으나 금호아시아나그룹에 편입된 후 매각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무역을 담당한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그룹에 인수됐으며 현재는 포스코인터내셔널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전신은 대우종합기계다. 대우종합기계는 대우중공업 분리 과정에서 대우조선공업과 같이 탄생했다.
대우전자는 TV 등 핵심사업부문이 대우모터공업으로 인계되면서 대우일렉트로닉스로 재출범했다. 2013년 동부그룹에 인수됐으며 2018년에는 대유그룹 산하에 둥지를 틀었다. 현재는 위니아대우로 사명이 교체됐다.
대우증권은 지난 2015년 미래에셋금융그룹이 인수하면서 미래에셋대우가 됐다. 대우증권은 당시 '증권업계 사관학교'로 불릴 정도였으며, 타 증권사들이 넘볼 수 없는 부동의 1위사였다. 다이너스카드클럽 코리아는 현대자동차그룹이 품으면서 현대카드로 새출발했다.
이밖에도 대우그룹에 속했던 수많은 기업들이 독자적으로 생존을 하거나 여타 그룹에 속해 영위해가고 있다.
그룹 해체 후 20년이 넘었지만 ‘대우’의 자취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만큼 대우그룹은 공격적 확장에 이은 성장으로 한국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방증한다. 김우중 전 회장은 떠났지만 ‘대우’의 DNA는 앞으로도 살아 숨 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