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소월리 유적서 토지 관리 연관 신라 목간 나와

2019-12-0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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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대 토지 관리 문서 추정

[문화재청]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토지 관리 연관 신라 목간(문자를 기록하기 위해 일정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나무 조각)이 출토됐다.

문화재청는 화랑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 중인 경산 지식산업지구 진입도로구간 경산 소월리 유적에서 지난 3일 공개된 사람 얼굴 모양 토기에 이어 신라 시대 토지와 관련한 목간이 추가로 확인됐다고 9일 밝혔다. 발굴조사 현장은 11일 공개할 예정으로 지난 3일 공개한 사람 얼굴 모양 토기와, 함께 출토된 다른 토기도 볼 수 있다. 목간은 유물의 안전을 위해 실물이 아닌 적외선 사진 등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길이가 74.2㎝에 이르는 목간은 사람 얼굴 모양 토기 아래에서 출토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수습, 응급보존처리 등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진행한 1차 판독을 통해 굽은 나무의 표면을 다듬어 만든 6면에 약 94자의 글자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중 2면은 글자를 연습한 흔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록된 글자의 서체나 내용은 경북 경산 인근 지역의 토지 현황을 기록한 ‘6세기대에 작성된 토지관리 문서 목간’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목간에 기록된 글자 가운데 ‘곡(谷)과 답(畓), 제(堤)’ 등이 주목된다. 이번에 발견된 목간을 통해 골짜기(곡, 谷)를 배경으로 형성된 일정한 집단이 있었고, 둑(제, 堤)이 조세 부과와 연관 있다는 점도 드러났다. 이를 통해 골짜기(谷)와 둑(堤)을 중심으로 한 당시 지방 촌락의 입지, 농업 생산력 증대를 위해 축조한 제방과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논의 존재, 그곳을 대상으로 조세를 수취하는 중앙 정부의 지배 양상을 엿볼 수 있다.

논을 의미하는 표현으로 한자(漢字)인 답(畓)을 사용했다는 점과 조세 부과를 위한 토지 면적 단위는 결(結)이나 부(負)를 사용했다는 점도 밝혀졌다.

답(畓)은 종래에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국보 제33호, 561년 건립)에 처음 등장한다고 여겨졌는데, 목간에 등장하는 답(畓)을 통해 목간의 제작연대도 비슷한 시기임을 추정할 수 있다.

토지 면적 단위인 결(結)과 부(負)는 지금까지 삼국통일 이후 사용된 것으로 여겨졌지만 이번에 발견된 목간을 통해 사용 시기를 6세기까지 올려볼 수 있게 돼 신라의 지방 지배와 토지를 중심으로 한 경제활동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목간은 1차 판독이 완료된 상황으로, 관련학계와 함께 추가적인 판독 및 연구 과정을 거쳐 더 다양한 해석과 내용을 공개할 계획이다.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들의 고고학적인 분석과 함께 자연과학적 분석을 실시하고, 주변 유구와의 상관관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명확한 성격과 시기 등을 밝혀 다시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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