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28일 도굴되지 않은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 무덤인 63호분 매장주체부(시신을 안치하는 공간)의 뚜겅돌을 들어 올려 내부 모습을 처음으로 소개했다.
2014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 Ⅱ군 39호분과 주변 고분(경남 창녕군 창녕읍 교리 산5 일원)’의 2019년도 발굴조사 성과와 63호분 매장주체부를 현장에서 공개했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가야문화권 조사·연구 및 정비사업’의 하나로 비화가야 최고 지배층의 묘역인 창녕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사적 제514호) 내 미정비지역(목마산성의 남서편 구릉부분)에 대한 학술발굴조사를 2014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2014~2015년의 조사에서는 5세기 중반경의 봉토분 9기, 석곽묘 15기 등 총 24기의 고분을 조사해 벽에 나무기둥을 세워 축조하는 방식, 봉토를 연접하는 방식 등의 축조기법을 확인했다.
비화가야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는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에는 약 250여 기의 고분이 분포하는 가운데 63호분은 처음으로 도굴되지 않은 완전한 상태로 확인됐다. 이번에 처음 알려진 63호분은 바로 위 조금 늦은 시기에 축조된 39호분의 봉토로 노출되지 않아, 도굴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뚜껑돌은 길이 2m 크기의 편평한 돌을 7매 올린 뒤, 점질토로 밀봉한 상태였고, 매장주체부의 내부에는 시신과 부장품을 매장한 당시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봉토의 표면 등에는 점토덩어리를 바른 흔적이 남아 있고, 호석이 노출된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어 비화가야인의 장송의례와 고분 축조기술을 보여준다.
교동과 송현동고분군에서 세 번째로 큰 고분인 39호분은 고분군의 가장 높은 곳에 있고 빗물 등으로 인한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중심부는 점토로, 가장자리는 흙으로 쌓은 가운데 봉분을 쌓는 단계마다 점토를 깔았다. 이런 기법은 울산 약사리유적 등 고대 제방유적에서도 잘 드러난다. 남동쪽 호석에 접해 약 2m 간격으로 큰 항아리를 놓았고, 이처럼 한쪽에만 집중적으로 의례용 토기를 놓는 사례는 최근 경주 쪽샘 44호분에서도 확인됐다. 약 1.5m 길이의 큰 돌을 세우거나(양 장벽과 남단벽), 눕혀서(북단벽) 매장주체부의 네 벽을 만들었고, 유사한 구조는 성주 성산동고분군 등 대구·경북지역과 일본 나가노의 키타혼죠 고분 등 나가노, 큐슈지역에서 확인돼 주변국과의 관계를 보여 준다.
소형분인 62호분에는 400여 점의 유물이 출토돼, 양쪽에 잔이 달린 토기와 6개의 잔이 달린 등잔형토기, 주전자형 토기가 나왔다. 이러한 상형토기는 주로 가야와 신라지역에서 출토됐고, 창녕에서는 처음 출토됐다. 큰 토기 안에 작은 토기를 넣고, 같은 종류의 토기를 위아래로 포개거나 열을 지어 놓는 등 다양한 매납 방식도 확인됐다.
문화재청은 조사에서 확인된 비화가야 최고 지배자 무덤의 축조기법과 장송의례, 출토유물에 대한 자료는 가야와 신라의 접경지역에 있으면서 복잡하고 다양한 문화가 나타나는 비화가야의 성격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