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82년생 김지영’이 담아낸 한국 여성들의 삶도 그러했다. 지영의 엄마 50년생 오미숙은 오빠들을 뒷바라지하기 위해 청계천의 미싱노동자가 됐다. 그녀의 딸 82년생 지영은 유능한 홍보대행사 직원이었지만 출산 후 육아를 전담하며 ‘맘충’ 취급 받는 전업주부가 됐다. 가까스로 재취업 길이 열렸지만 ‘시터 이모님’을 구하지 못해 좌절한다. ‘친정 엄마 찬스’로 회사에서 악바리로 버텼던 선배 여성팀장 역시 결국 승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해 OECD가 발표한 성별 임금격차를 보면 우리나라는 36.7%로 OECD 국가 가운데 남녀 임금격차가 가장 크다. 한국은 성별 임금격차에서 15년째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59.4%로, OECD 36개국 중 32위로 지난 19년간 50%대에 머물고 있다.
남성 중심의 대표적 조직인 정치권과 기업의 유리천장은 이보다 더 두껍다.
우리나라의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17.1%(20대 국회 52명)로, 전 세계 평균 24.3%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 전 세계 193개국 중 121등이고, OECD 34개국 중에선 일본과 헝가리를 제외하고 꼴찌에서 셋째다. 공공부문 3급 이상 고위직 공무원 중 여성고위직 비율은 7.1%에 불과하다.
기업 부문은 더 심각하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가 지난달 세계 3000여개 기업을 분석해 발표한 ‘젠더 보고서’에서 한국 기업 이사회의 여성 비율은 3.1%로 조사 대상 40개국 중 꼴찌였다.
양성평등을 실현한 선진국들의 공통점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남성도 가사와 육아에 참여하고, 남녀 모두가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하도록 법과 제도로 뒷받침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경제활동과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 남녀동수 공천, 고용할당제 등 여성할당제를 실시했다. 그 결과 의회 절반이 여성으로 채워졌다. 아이슬란드는 세계 최초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다.
스웨덴에서 ‘라테파파(육아휴직 후 어린 자녀를 돌보는 남성들을 지칭)'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북유럽 국가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부모가 가사와 육아를 공동 분담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다. 자연스럽게 성평등 인식과 문화가 자리 잡게 되면서 스웨덴은 사회 전반에서 성평등이 실현됐고, 국가의 양육 책임과 남성 돌봄이 제도화됐다. 돌봄 노동이 오로지 여성의 몫으로 치우쳐 있는 한국 사회 현실과는 너무도 다르다.
또 도덕적이고 합리적이며 공감의 소통이 강점인 여성리더십은 후진적인 한국 정치문화도 바꿀 수 있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정쟁만 일삼고, 거친 언행과 몸싸움까지 벌이는 ‘동물국회’, ‘식물국회’는 남성 중심 문화 탓이다. 학연·지연으로 똘똘 뭉쳐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패거리 정치도 남성주의 산물이다. 부패 비리에 연루돼 의원직을 잃는 의원들도 모두 남성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여성·청년·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공천 가산점을 약속하며 평등 시대를 외치고 있지만, 정작 제도 개선에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다. 총선후보 여성 30% 할당제 의무화를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야 정치권에 촉구한다. 내년 총선 때는 30% 여성공천을 꼭 의무화하기 바란다.
급격한 저출산·고령화와 저성장 시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경쟁력이 꼭 필요하다.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사회, 서로 존중하는 양성평등사회가 된다면 모두가 행복한 사회가 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