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마음이 외로울 때에도/“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구명대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저 하나 있으니” 하며/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씨알의 소리'를 낸 사상가인 함석헌은 우리에게 '그 사람을 가졌는가'라고 묻고 있지만, 그 자신은 그 사람을 가졌을까. 처자를 내맡기고 만리 길 떠나고, 외로움 가운데도 갈구하는 같은 마음을 발견하고, 침몰하는 배 속에서도 혹은 사형장에서도 목숨을 양보할 사람, 죽을 때 살아있을 그 사람 때문에 미소가 지어지고, 모든 사람이 찬성해도 그가 반대하기에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함석헌에게 있었을까.
그에게 그런 사람이 있었다. 스승이었던 다석 류영모(1890~1981)다. 열한 살이 많은 선각이자 동지였던 그분을 향한 신뢰와 감정은 오히려 그 이상이었다. 함석헌이 사상의 핵심으로 제시한 씨알은 ‘민(民)’을 뜻하는 말로, 바로 다석의 용어였다. 씨알은 씨앗이란 뜻의 '씨'와 인간 속에 들어 있는 생명의 하늘을 뜻하는 '알'이 합쳐진 말이다. 씨알 사상은 다석 류영모가 밝힌 놀라운 인간관이다.
함석헌은 쉰넷이 되던 생일날, 20여명의 제자들이 열어주는 잔치 자리에서 그래프 한 장을 들고 나왔다. 거기엔 평탄한 선이 그어져 있었고 오직 두 군데만 위로 튀어오른 직선이 있었다. 그는 첫번째 수직을 류영모 선생을 만날 때라고 말했고, 두번째는 우치무라 간조(1861~1930,일본의 기독교 사상가로 무교회주의 창시자)를 만날 때라고 말했다.
류영모가 오산학교 교장으로 인준을 받지 못하고 1년 뒤에 학교를 나왔을 때, 오산에서 고읍역까지 걸어가야 했는데, 뜻밖에 평소에 말이 없던 함석헌 학생이 배웅을 나왔다. 말없이 따라 걷는 학생에게 류영모는 말했다. "내가 오산학교에 오게 된 것은 자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였던가 보네." 두 사람은 이후 '영원을 지향하는 길동무'를 자처했다. 2008년 한국에서 세계철학자대회를 유치하면서, 철학의 이단아로 분류되어온 류영모-함석헌의 씨알사상이 한국철학의 주제로 제시된다. 그런 함석헌이 뭇사람에게 묻는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다석 류영모는 비교신학(Comparative Theology)의 실천적 선구로 서양에서도 눈여겨보게 된 존재다. 그는 동양문화의 뼈대에서 서양문화의 골수인 '성경'을 해석해 서구신학을 능가하는 사유의 단초를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석의 정신적 위상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은 오히려 같은 나라에 사는 우리들이다. 가치와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이때에 다석을 재발견하는 일은, 우리가 생각을 혁신하고 새로운 시대의 길로 접어드는 '정신혁명'의 질료를 찾아내는 길이다. 그는 너무나 21세기적인 사람이다. 이 기획은 단순한 '한 사람'의 시리즈가 아니라, 우리의 삶과 사회와 이상과 실천의 전반을 재점검하는 위대한 '불심검문'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다석이 스스로 창안하거나 발굴한 '우리말'로 그의 철학과 신학을 풀어낸 점도 인상적이다. 우리 말로 표현해야 우리가 중심인 사상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주경제가 내놓는 '다석의 재발견'이 21세기의 첫 발자국을 디디면서 시대적 혼란과 혼선을 겪는 대한민국의 정신 가치 운동의 첫 단추가 되기를 바란다. 무엇이 중요한가.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어떤 세상이 바른 세상이며 행복한 세상인가. 그 엄청난 질문들에 일목요연한 답을 제시하는 다석의 '생각의 하늘'로 지금 이륙을 시작한다.
이상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