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식기가 우리를 낳았는가
류영모(柳永模)는 1890년 3월 13일(음력 경인년 2월 23일)에 태어났다. 류영모가 현대인으로 매우 존경하였으며 사상으로 가장 일치한 사람이 레프 톨스토이 그리고 마하트마 간디이다. 류영모가 태어난 1890년에 톨스토이는 62살이었고 간디는 21살이었다. 류영모는 톨스토이와는 20년 동안, 간디와는 58년 동안 같은 해와 달 아래에 숨쉬며 살았다. 세 사람이 함께 산 날은 류영모가 태어난 1890년 3월 13일부터 1910년 11월 7일 톨스토이가 죽을 때까지 20년 동안이다. 그러므로 이 세 사람은 동시대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류영모 스스로도 나는 19세기 사람이라고 하였다. 톨스토이·간디·류영모는 19세기에 태어나서 20세기에 돌아간, 양세기에 걸쳐진 진인(眞人)들이다.
류영모는 류명근(柳明根·24)과 김완전(金完全·27) 사이에서 태어났다. 우리는 나를 낳은 이를 아버지, 어머니라고 한다. 사실은 아버지, 어머니의 생식기가 나를 낳았지만 생식기를 보고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지 않는다. 하긴 사람들이 생식기를 만들어 놓고 숭배하기도 하였다. 산소에 세워 놓은 망두석이 바로 생식기의 형상이다. 생식기는 아버지, 어머니의 몸에 달려 있다. 아버지, 어머니는 지구에 달려 있다. 지구는 태양계에 달려 있다. 태양계는 은하계에 달려 있다. 은하계는 무한한 허공에 달려 있다. 허공은 하느님에게 달려 있다. 우리 사람을 낳은 이도 아버지, 어머니가 아니라 하느님이 낳은 것이다. 하느님을 아버지로 깨달은 이에게는 부모에 대한 효(孝)는 생식기 숭배사상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노자(老子)는 "하느님은 뭇 오묘한 것이 나오는 오래(門)라"(衆妙之門 -<노자> 1장)고 하였다.
# 우린 정말 어렵게 세상에 나왔다
류영모는 인생의 탄생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세상에 나온 것은 정말 어렵게 비집어서 나온 것입니다. 또 오고 싶은 세상이 아니라고 볼지 모르나 이 세상에 나온 것은 참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어서 겨우겨우 요나마 세상에 참여한 것입니다. 사람이 태어나기란 맹구우목(盲龜遇木, 천년 만에 물 위로 올라온 눈먼 거북이 구멍 뚫린 널빤지를 만나는 확률)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는 그 자신의 탄생에 대해서 "내가 처음으로 이 생명의 문을 건너던 순간을 깨닫지 못하겠나이다. 한밤중 숲 속에 꽃봉오리와도 같이 이 거대한 신비(神秘)로 향하여 이 몸을 열어젖히게 한 힘은 무엇이나이까?"(타고르 <기탄잘리> 95)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의 탄생이 감사하고 선택되고 신비한 것만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한다. 류영모는 나의 탄생을 사변(事變)이라고 하였다.
"내 몸이 태어난 것은 사변입니다. 이 사변이 없었으면 인생의 우주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변 중에 큰 사변이 인생이 태어난 것입니다. 평안하게 부모의 품안에서 자라 따뜻한 이부자리에서 평생을 지내고 모두가 환영을 하고 모두가 즐거운 것이 인생으로만 알면 틀린 것입니다. 이 사변이 없었으면 배고프다는 것이 없었을 것이고, 자식이고 부모가 어디 있겠어요. 노골적으로 말해서 남녀관계란 치정(癡情)인데 치정이 사람의 대(代)를 이어 주어요. 어리석은 남녀의 혼인으로 인해서 우리가 오늘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남녀가 깨끗하고 말쑥하였던들 우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깨끗하고 말쑥할 수가 없고, 어떻게든지 삼독(三毒)이 나타납니다. 우리의 근본은 죄다가 독(毒)입니다. 정충시대부터 나란 투쟁적이고 배타적이에요. 우리 어머니, 아버지의 노(怒)한 끄트머리로 나온 것이니 진생(瞋生)이 아닐 수 없어요. 나와서도 젖을 탐합니다. 탐욕으로 자라게 됩니다. 만일 우리가 탐욕이 없다면 나오지도 자라지도 못하였을 것입니다. "
# '영성의 나'를 깨달은 사람, 류영모
나의 탄생은 한없이 신비하면서 그지없이 추악한 것이다. 나의 탄생은 한없이 감사하면서 그지없이 원망스럽다. 나의 탄생은 한없이 기쁘면서 그지없이 슬픈 것이다. 류영모는 '이 나가 누구인가? 이 나가 무엇인가?'를 생각하다가, 어버이 사이에서 태어난 나는 거짓나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 뱃속에서 나온 나는 참나(眞我)가 아닙니다. 얼(靈)이 나입니다. 몸의 나는 흙덩어리요, 재(灰) 한 줌입니다. 그러나 얼사람은 한없이 강하고 한없이 큽니다. 놓아 두면 우주에 꽉 차고 움켜잡으면 가슴 세 치(三寸)에 들어서는 이것이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나입니다."
얼의 나는 어버이를 거치지 않고 직접 하느님께서 하느님의 생명인 성령을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는 위로부터 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위로부터 났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이 낳으셨다는 말이다. 하느님은 얼나(靈我)의 아버지이다. 그래서 예수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하였다. 류영모는 예수처럼 하느님이 아버지임을 깨달은 얼나의 사람이다. 톨스토이와 마하트마 간디도 마찬가지로 얼나를 깨달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류영모의 삶을 통하여 어버이가 낳은 제나(自我)의 사람에서 하느님이 낳은 얼나의 사람이 되는 과정을 살피자는 것이다. 멸망의 생명인 제나(自我)에서 영생의 생명인 얼나(靈我)로 솟나는 것을 배우자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세상살이에 지치고 고달픈데 남의 생애를 알려고 할 것도 없고 알리려고 할 것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거짓나에서 참나를 깨닫고, 멸망의 생명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자는 것이다. 이를 이룬 사람이 참사람이다. 류영모가 바로 그러한 참사람이다.
다석전기 집필 = 다석사상연구회 회장 박영호
증보집필 및 편집 = 이상국 논설실장
@아주경제 '정신가치' 시리즈 편집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