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속 판키우는 손정의…'비전펀드 2호' 출격

2019-10-31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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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보다 10% 늘린 1080억 달러 AI기업 투자

실험실서 재배한 육류 제조회사 '멤피스미츠'

美 제약배달 스타트업 '알토파머시' 등 선정

우버·위워크 등 실패 교훈 이번엔 보완책 마련

투자속도 늦추고 수익성·IPO 빠른 기업 집중

투자한 스타트업들의 상장 실패와 인력감축 등이 잇따르면서 '위기설'에 휩싸인 세계 최대 기술투자펀드인 일본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가 되레 판을 키운 '2호'의 출격 소식을 알렸다. 

미국 경제주간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는 최신호에서 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끄는 비전펀드 2호가 1080억 달러를 투입해 세계 각국의 '인공지능(AI) 혁신 기업'을 향한 자금 수혈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비전펀드 1호가 1000억 달러 규모였던 데 비하면 판돈을 10% 가까이 늘리겠다는 목표다.

비전펀드 2호의 자금 수혈 대상으로는 미국 제약 배달 스타트업인 '알토파머시(Alto Pharmacy)', 로봇 햄버거 제조 업체 '크리에이터'(Creator), 실험실에서 재배한 육류 제조회사 '멤피스미츠(Memphis Meats)' 등이 선정됐다.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삼은 알토파머시는 제약 배달 스타트업으로, 비전펀드 2호의 투자 대상 가운데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회사다. 당일 처방약 제공 등 차별화된 서비스로 투자자의 이목을 끈 이 기업은 현재까지 가장 많은 금액인 1억4600만 달러를 확보했다.

피치북에 따르면 로봇이 만드는 햄버거 레스토랑인 크리에이터는 약 2400만 달러를 조달했다. '모멘텀 머신'이라는 이름으로 먼저 알려진 크리에이터는 지난해 6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문을 열었다. '햄버거맨'이란 이름의 로봇이 350개 센서를 이용해 사람 도움 없이 재료 손질과 패티(고기) 굽기 등 모든 조리를 직접 하면서 화제에 올랐다.

마찬가지로 샌프란시스코에 기반을 둔 멤피스미츠는 동물을 기르고 도살할 필요가 없도록 세포에서 고기를 개발한다. 비전펀드 2호를 통해 현재까지 약 2000만 달러를 손에 넣었다.

투자 사실에 대해 비전펀드는 물론 해당 기업들도 말을 아끼는 분위기다. 블룸버그는 투자 여부에 대한 질문에 비전펀드와 멤피스미츠, 알토파머시가 답변을 거부했으며, 크리에이터는 응답조차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7월 비전펀드 1호를 기반으로 업그레이드한 비전펀드 2호를 출격시킨다고 공표했다. 비전펀드 2호는 여전히 새 펀드를 위한 모금 과정에 있으며, 1차 펀드에 비해 규모가 더 크다고 블룸버그는 설명했다.

비전펀드 2호는 정보기술(IT) 스타트업 투자에 주력했던 1호 때와 달리 AI 스타트업 발굴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다. 손 회장은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과 만나서도 "앞으로 한국이 집중해야 할 것은 첫째도 인공지능, 둘째도 인공지능, 셋째도 인공지능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지난해 비즈니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2~3년마다 1000억 달러씩 신규 기금을 조성해 매년 500억 달러 안팎을 투자할 계획"이라며 지금 같은 공격적 투자를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래픽=임이슬 기자]

◆비전펀드, '일등공신'서 '골칫덩이'로…2호 땐 보완책 마련에 중점

비전펀드는 소프트뱅크를 일본 시가총액 1위의 글로벌 최대 IT 기업으로 만든 '일등 공신'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최근 투자한 사무실 공유업체 '위워크', 차량 공유업체 '우버' 등의 기업 가치가 곤두박질치면서 승승장구하던 비전펀드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거액을 투자한 위워크는 지난 8월 기업공개(IPO) 관련 서류를 공개하면서 회사의 수익성과 기업 가치의 적정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상장에 실패했다. 비전펀드는 여러 차례 투자를 이어가며 위워크의 기업 가치를 올 초 470억 달러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위워크의 상장 실패는 소프트뱅크 투자모델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을 불러일으켰다. 비전펀드 1·2호의 자본 규모는 총 2080억 달러로, 8030억 달러로 추정되는 세계 벤처캐피털 운영 자산 중 26%를 차지한다.

그러나 10조원 이상의 거액을 투자한 기업들이 상장 이후 주가가 폭락하거나 상장 전부터 무너지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소프트뱅크의 근원적인 운영 능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소프트뱅크는 우버, 위워크 등에 대한 투자에서 발생한 손실로 최소 50억 달러 규모의 대손상각을 계획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비전펀드는 다음 달 6일 2분기 실적 발표에서 부실 채권에 대한 상각을 발표할 예정이다.

상각 규모는 최대 70억 달러 수준으로 늘 수도 있지만, 최종 규모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우버는 지난 5월 IPO 이후 주가가 25% 이상 떨어졌다. 우버 지분 13%를 갖고 있는 소프트뱅크의 시가총액은 6월 말 이후 석 달간 35억 달러 정도 줄었다.

소프트뱅크는 위워크의 지분도 3분의 1 갖고 있으나, 위워크의 자금난이 심해지면서 100억 달러 이상을 수혈해 경영권을 인수하기로 했다. 위워크 인수설이 돌면서 소프트뱅크 주가도 하락을 면치 못했다.

이 같은 위기 속에서 비전펀드는 새로운 전략과 보완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CNBC에 따르면 비전펀드 2호는 투자 속도를 늦추는 대신 수익성과 IPO에 더 빨리 도달할 수 있는 기업들에 집중할 예정이다.

한편 1981년 일본 내 통신업으로 출발한 소프트뱅크는 1996년 미국 야후와 공동 출자로 야후 재팬을 설립하면서 투자회사로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소프트뱅크가 일본 기업 가운데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한 배경에는 대규모 인수합병(M&A) 성공이 있다.

2013년에는 미국 4위 이동통신사 스프린트를 220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을 들여 사들였으며, 2016년 영국 반도체 설계 업체 ARM을 일본 M&A 역사상 최대액인 234억 파운드에 인수했다.

최근에는 일본 최대 온라인 의류 쇼핑몰 업체 조조(ZOZO)를 야후 재팬 자회사로 인수했다.

M&A를 통한 규모 확장과 펀드를 통한 투자금 회수로 소프트뱅크는 2018회계연도에 사상 최대 영업이익(2조3539억엔)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80.5% 늘어난 것이다.

소프트뱅크의 영업이익이 2조엔을 넘어선 것은 처음으로, 도요타자동차의 영업이익 2조4675억엔에 육박했다. 영업이익 증가는 '비전펀드'의 투자 수익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비전펀드를 통한 글로벌 투자 이익 등만 1조2500억엔에 달했다.

2017년 5월 중동 국부펀드·애플·퀄컴 등과 함께 비전펀드를 출범시킨 소프트뱅크는 위워크, 우버 등 전 세계에서 뜨고 있는 벤처기업 80여 곳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면서 스타트업업계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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