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다니엘 칼럼] ​日도 영국처럼? 아이코 여왕시대 예고

2019-10-2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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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최고통치자는 대통령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66조 제1항은, ‘대통령은 국가의 원수이며,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의 최고통치자는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하여 한국과 같이 딱 떨어지는 대답이 일본에는 없다. 다만, 일본을 상징하는 존재는 천황이다. 일본헌법 제1조는,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자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그 지위는 주권을 가진 일본국민의 총의에 바탕을 둔다’고 정의하고 있다.

일본의 천황제를 다루는 이 글에서는 흔히 한국에서 칭하는 ‘일왕’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천황이라는 어휘를 쓰기로 한다. 한자로 天皇이라고 표기되는 이 존재를 영어권에서는 emperor라고 하고 한자권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는 天皇이라고 부른다. 일본인들이 공식용어로 쓰는 천황을 우정 바꾸어 일왕(日王)이라고 표기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 타국의 원수의 명칭을 바꾸어 쓰는 사례가 또 하나 있는데, 중국인이 한국의 대통령을 총통(総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 두 사례에는 모두 역사적으로 형성된 국민감정이 개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후 세번째의 천황

1945년에 세계대전이 끝난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재임하는 천황은 세번째가 된다. 일본이 스스로 일으킨 태평양전쟁에서 패망하고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연합군이 일본을 통치하게 되었다. 이때 연합국최고사령부의 맥아더 사령관은 초기에 일본의 천황제 폐지를 심각하게 고려하였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이미 세계적인 차원에서 공산세력을 봉쇄하는 냉전체제를 구상하고 있었고, 이를 위하여 일본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그리고 일본인의 상징이자 정신적 지주인 천황이라는 존재를 그대로 존속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일본의 천황제가 살아 남는 계기였다.

히로히토(裕仁)라는 본명을 가진 쇼와 시기의 천황은 1921년부터 1989년까지 무려 70년 가까이 재임하였다. 그 시기에 일본은 한반도를 합병한 상태에서 대정데모크라시라는 자유주의 시대를 지나고 군국화하기 시작하여 중국과의 전쟁, 이어서 1941년에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게 된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미국의 동맹이 되어 세계가 주목하던 일본의 경제기적을 일으키고, 소위 ‘잃어버린 20년’에 들어가는 1989년에 세상을 뜨게된다.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이 70년의 기간에 일본은 천국과 지옥을 다 경험하며, 좋고 나쁜 양면에서 모두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나라가 된다. 쇼와천황이 황족의 남녀가 결혼하여 황실을 이루었다면, 그의 자손들이 되는 헤이세이, 그리고 레이와의 황실은 황족의 남자와 일반가정의 여자가 가정을 이루었다는 점에서 크게 구분이 된다.

1989년부터 2019년 4월말까지 재임한 헤이세이의 천황 아키히토(明仁)는 쇼다 에이사부로(正田英三郎)라는 일반인의 딸과 결혼을 하는 일본 최초의 천황이 된다. 닛신라면으로 유명한 닛신(日清)제분그룹의 장녀 미치코(美智子)와 테니스코트에서 만나 교제하여 결혼을 한 것이다.

히로히토의 손자이자 아키히토의 장남인 나루히토 (徳仁), 즉 지난 10월 22일에 즉위한 레이와천황 또한 외무성 직원이던 오와다 마사코(小和田 雅子)라는 여자와 교제하여 결혼을 하게된다. 그녀의 부친 오와자 마사시(小和田 恆)는 직업외교관으로 국제사법재판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남자아이가 없는 황실

한국인에게는 전근대적으로 느껴지겠지만, 일본국민은 황실에 애착과 관심이 많다. 그런데 이 황실이 지금 문제에 봉착해있다. 남자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것이다. 각각 1960년생과 1963년생인 레이와천황 부부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는 유일하게 2001년생인 愛子内親王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가진 아이코(愛子)라는 소녀이다. 현재 만 17세인 그녀는 가쿠슈인고등학교 학생이다. 천황부부 사이에서 남자아이가 태어날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누가 앞으로 황실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가?

황실제도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대부분의 일본인이 합의하고 있지만 후계구도에 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우선 평성천황이 아직 생존하는 상태에서 스스로 천황자리에서 내려온 것이 하나의 현안이다. 앞으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황위를 물려주는 퇴위(退位)를 제도화할 것인가에 대하여 이에 찬성하는 사람이 25%에 불과하다는 것이 NHK 조사 결과였다.

안정적인 운영을 위하여 황실제도를 개정할 필요성에 찬성하는 사람이 54%로 반을 넘었다. 여기서 더 민감한 문제는 여성을 천황으로 즉위시켜도 되는가이다. 이에 대하여 NHK 조사에서는 74%가 찬성의 의사를 표하였다. 즉 지금의 고교생인 아이코가 천황이 되어도 좋다는 것이다. 같은 질문에 대하여 우파 매체인 산케이신문의 조사결과에서는 68%의 찬성이 나왔다.

그렇다면 아이코가 영국과 같이 ‘여성천황’이 되고 그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여자 아이 밖에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여자아이가 천황이 될 경우 '여계천황'이라 부르는데, 이에 대해서 NHK 조사에서는 71%가 찬성, 산케이신문 조사결과에서는 62%의 찬성이 나왔다. 결국, 일본인들은 황실제도가 존속하기를 바라며, 앞으로는 여자황제가 나와서 영국과 유사한 제도를 갖게 된다는 것을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점차 리버럴해지는 일본황실

역사문제 등을 놓고 한·일이 갈등하는 가운데, 일본의 황실이 자민당이 지배하는 정계보다 더 리버럴한 태도를 보인다는 보도에 접한다. 이는 사실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일본의 천황은 한국에 대한 침략에 대하여 유감과 애석을 표명하였다. 다만 일본 특유의 정치문화 속에서 한국인이 바라는 ‘화끈한’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을 뿐이다.

한국인이 가지는 또 하나의 의문은 일본황실의 뿌리가 한국계인가이다. 천황을 국가의 상징으로 삼는 일본에서 이 문제는 인기있는 주제는 아니다. 다만 백제의 25대 무령왕이 일본 규슈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들 준타(純陀太子)가 일본황실에 속하게 되어, 결국 일본황실에 조선인의 피가 섞였다는 것이 알려진 사실이다.
일본황실이 자민당정권보다 한국에 대하여 리버럴한 태도를 취하는 데에는 이러한 역사적 기원보다는 태평양전쟁에 장본인으로 참여한 쇼와천황의 반성적인 회고, 그리고 그 후손들이 영국에서 받은 교육에서 비롯된 리버럴한 세계관이 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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