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 임대주택 유형만 7가지…소비자는 '혼란' 공급자는 '비효율'

2019-10-22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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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주도 정책 다양화 통한 공급 확대로 서민 주거 안정 성과

정권별 선심성 '표지갈이' 짝퉁 남발...정보 불균형 등 문제 야기

정부가 연말 공공 임대주택 유형 통합안을 내놓기로 한 것은 무려 7가지에 달하는 공공임대주택 유형을 간소화해 임대주택 수요자의 혼란을 줄이고 신청을 용이하게 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그동안 공공 임대주택은 중앙정부 주도 공급 정책으로 단기간에 많은 물량이 공급돼 서민 주거 안정에 크게 기여한 성과를 이뤘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유형이 새롭게 추가됐다. 김대중 정부 당시 국민임대 100만호, 노무현 정부 때 국민임대 200만호 및 매입 임대, 이명박 정부 시절 장기전세(시프트), 박근혜 정부 땐 행복주택 등이 나왔다. 입주 자격 등 유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준 또는 조건 등을 조금씩 달리하며 사실상 '표지 갈이'만 한 짝퉁 공공 임대주택 상품들이 쏟아진 것이다. 공공 임대주택 공급은 서민 주거 정책으로 선거철마다 표에 큰 도움이 되는 선심성 인기 공약사항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비용 과다 발생 △수요자 간 정보 불균형 등 문제점이 지적돼왔다.

천성희 서울주택도시공사(SH) 부장은 "공공 임대주택이 정치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정책이다 보니 새로운 유형의 임대주택이 계속 탄생했다. 실제로는 똑같은 임대주택인데 신청 기준이나 임대료 부과 원칙 등만 바뀐 새로운 상품들이 자꾸 나온 것"이라며 "이제는 유형이 너무 많아져 우리끼린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표현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임대주택 공급에 있어 여러 비용이 발생한다는 문제가 있다"며 "우리 같은 상품 공급자는 상품별로 공고를 통해 입주자를 뽑기에 상당히 많은 공고가 필요하다. 수요자 입장에서는 상품별로 신청을 해야 하다보니 번거롭다.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불필요한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비용 발생보다 더 심각한 문제로 정보의 불균형을 지적했다. 천 부장은 "임대주택 거주자 가운데는 고연령층도 상당한데 이분들이 방대한 임대주택 유형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크다"며 "문재인 정부가 주창하는 '기회의 평등'이 이뤄질 수가 없는 구조"라고 역설했다.

지난 7월 발생한 ‘봉천동 탈북모자’ 아사(餓死) 사건 역시 복잡한 임대주택 유형이 야기한 비극이란 평가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영구·국민임대주택에 거주하는 자가 수도·전기·가스요금 등을 3개월 이상 연체하는 경우, 이 내용이 자동으로 통보되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관리시스템'을 운용 중이다. 봉천동 탈북모자는 관리비 15개월, 가스요금 9개월 이상 연체에도 불구 시스템에 포착되지 못했다. 얽히고설킨 제도 때문에 국민임대주택 거주자로 분류되지 못한 탓이다.

모자가 거주하던 아파트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에 따라 건설된 임대주택으로 당시 기준에 따라 재개발임대주택으로 분류돼 있었으나 지난해 말 변경된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령 제2조에 따르면 국민임대주택으로 분류된다.

한국이 양적 공급에 치우쳐 공급 방식을 정비하지 못할 동안 유럽, 미주 등 주거 선진국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선진국은 임대주택 유형이라는 개념이 없다. '소셜하우징'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공급되는 단일 유형만 존재할 뿐이다. 임대주택별로 면적, 방 수, 임대료 정도만 차이가 난다. 파리주택공사 등 정부 산하 공급기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확보한 임대주택 '스톡'(Stock)을 보유하고 있다가, 이를 '웨이팅리스트'(Waiting list)에 올라와 있는 입주 대기자들에게 순차적으로 공급한다. 웨이팅리스트는 중앙정부에서 관리하며 입주를 원하는 누구나 자신의 정보를 올릴 수 있다.

웨이팅리스트는 입주 예정이던 사람이 입주하지 않거나 일정 기간 이주해 공가가 발생하면 그 주택에 입주할 사람들을 명부로 관리하는 현행 국토부 시스템과는 차이가 있다.

현재 서울시 등 지방자치단체는 국토부가 연말 내놓을 발표에 이 같은 '웨이팅리스트'를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국토부가 안을 확정한 것은 아니지만, 입때껏 지자체와 논의한 내용으로 미뤄볼 때 다소 소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종균 SH 처장은 "임대주택 유형이 통합되면 새로운 공급방식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며 "임대주택 유형 통합과 대기자 명부 마련은 한 세트로 시행돼야 할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러나 그동안 국토부 측은 유형 통합을 하기 위한 임대료 체계 개선, 새로운 체계를 적용할 몇 개 아파트 단지 선정 등 구상만 되풀이했다"고 덧붙였다.

또 "국토부는 테스트베드로 일부 아파트 단지를 거론하고 있지만, 시범사업이 의의를 가지려면 적어도 하나의 광역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실험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서울은 SH가 준비하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방 한두 도시 정도를 준비하면 어떨까 싶다"고 말했다.
 

[사진 = 국토교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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