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값이 확실히 많이 올라서 러우자모 가격도 좀 올렸어요."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14일 산시성 시안에서 지방시찰 도중 길가의 러우자모(肉夾饃) 가게를 깜짝 방문했다. 시안의 명물 먹거리로 불리는 러우자모는 잘게 찢은 고기를 넣어 만든 일종의 중국식 버거다. 보통 돼지고기를 쓴다.
이는 지난해 8월 중국 대륙에 처음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돼지고기 파동'이 일어난 가운데, 중국 지도부가 돼지고기 공급과 가격 안정에 얼마나 신경 쓰는지를 보여줬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8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ASF가 발병했다. 예방백신, 치료약이 없어 현재로서는 살처분이 확산을 막기 위한 유일한 대책이다. 지난 1년 새 ASF 여파로 전 세계 사육두수의 절반가량인 4억 마리가 넘던 중국 내 돼지 사육두수가 반토막이 났다. 중국 농업농촌부에 따르면 9월 말 기준, 중국 내 돼지 사육두수는 전년 동기 대비 41.1% 줄었다. 미국 농업부는 지난 7월 보고서에서 중국의 올해 돼지고기 부족분이 1억8300만 마리에 이를 것으로 관측했다.
부족분을 해외에서 잔뜩 사들이면서 올 들어 중국 돼지고기 수입량이 대폭 증가했다. 중국 세관당국인 해관총서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중국의 돼지고기 수입량은 모두 130만t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6% 증가했다. 미국 농업부에 따르면 지난 3일까지 일주일간 중국이 수입한 미국산 돼지고기는 14만2200t으로 주간 기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수입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 중국은 최근 미국과 지난 10~11일 미국 워싱턴DC에서 진행한 고위급 무역협상에서 연간 400억~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농산물을 수입하기로 했다고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번에 중국 협상단을 이끈 류허 부총리를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한 친서에서 미국산 대두와 돼지고기 수입 가속화를 강조하기도 했다.
중국은 세계 최대 돈육 생산국이자 소비국이다. 중국인의 돼지 사랑은 유별나다. 돼지고기와 식량이 천하를 평안케 한다는 '저량안천하(猪糧安天下)'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돼지고기는 중국인에게 주식이나 다름없다. 중국 지도부가 돼지고기 공급량 증대와 가격 안정을 ‘긴박한 정치적 임무’로 삼고 돼지고기 가격 방어에 발 벗고 나선 이유다.
중국 농업농촌부,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재정부, 자연자원부, 생태환경부,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 등 6개 중앙부처는 최근 △냉동 돼지고기 비축물량 방출 △돼지고기 구매제한 △돼지농가 양돈 보조금 지원 등과 같은 시장 안정 조치를 발표했다. 지난 9월 초까지 중국은 돼지고기 보조금으로 32억3000만 위안을 지급했는가 하면, 연휴를 앞둔 지난달 말엔 돼지고기 '전략비축물량'을 1만t 이상 방출했다.
◆'돼지고기 가격 방어전'에도···돼지고기값 1년새 70% 폭등
중국 지도부의 돼지고기 가격 방어전은 좀처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중국 내 돼지고기 가격이 1년 새 70% 폭등하는 등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15일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9월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69.3% 올랐다. 전달 상승폭인 47.7%에서 22.6%포인트 확대된 것이다.
이 여파로 9월 중국의 소비자물가도 큰 폭으로 올랐다. 9월 중국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3%를 기록했다. 시장 전망치 2.9%와 전달 상승률인 2.8%를 모두 웃돌았다. 월간 상승폭으로는 2013년 10월 이래 약 6년 만에 최대치다.
이로써 올 초까지만 해도 1%대의 비교적 낮은 상승률을 유지했던 소비자물가는 3월부터 2%대를 넘어서더니, 지난달 중국 정부의 올 한해 물가 상승률 관리 목표치인 3%까지 치솟았다. 돼지열병에 중국 소비자물가 관리에도 경고등이 켜진 모습이다.
돼지고기 가격은 지난달 물가 상승폭 3%의 절반이 훌쩍 넘는 1.65%포인트를 끌어올렸다. 이에 더해 돼지고기 가격 상승은 다른 육류 가격 상승을 자극했다. 같은 달 소고기와 양고기 가격도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8.8%, 15.9% 상승한 것. 육류가격 상승 탓에 9월 식품류 물가는 전년 동기 대비 11.2% 올라 8년여 만에 최대 상승폭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