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이끈 중국 老외교관 "일주일 준비하고 협상, 떨렸다"

2019-08-25 1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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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루이제 교섭 부대표 "당시 한중 관계에 무지"

한중 수교 27주년, 中 매체 "양국 새 시대 진입"

1992년 8월 24일 이상옥 전 외교부 장관(왼쪽)과 첸치천 전 중국 외교부장이 한중 수교 합의문에 서명한 뒤 악수를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중 수교 실무 협상을 맡았는데 겨우 일주일 준비하고 한국 측 대표단을 만났다. 마음이 무겁고 불안했다."

1992년 한·중 수교 직전 예비 교섭단 부대표를 역임한 장루이제(張瑞杰) 전 대사는 당시 상황을 이처럼 회고했다.
중국 펑파이(澎湃)신문은 한·중 수교 27주년 기념일인 지난 24일 '바다 건너 악수하니 양국이 새 시대로 진입했다'는 제하의 보도에서 장 전 대사가 전한 수교 과정을 소개했다.

장 전 대사는 "(한·중 수교에 대한) 우리 당(중국 공산당)의 선견지명과 국교 수립 때의 장면들이 마음 깊이 남아 있다"며 "동북아와 한반도 정세 변화로 한·중 정치권과 민간은 상황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노태우 대통령 취임 뒤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겠다는 '북방정책'을 추진했고 1991년 첸치천(錢其琛)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참석차 방한했다"며 "고위급 인사의 첫 방한으로 중국 정부의 태도가 확인됐다"고 전했다.

노태우 대통령과 만난 첸 국무위원은 수교 의지를 재확인했고, 국교 수립을 위한 실질적인 접촉이 시작됐다.

서울과 베이징을 오가며 예비 교섭이 진행됐고 중국은 차관급 수석대표로 쉬둔신(徐敦信) 전 외교부 부부장을, 대사급 부대표로 장 전 대사를 선임했다.

실무 교섭을 이끈 장 전 대사의 한국 측 파트너는 권병현 남북핵통제위원회 공동위원장이었다. 권 위원장은 수교 6년 뒤인 1998년부터 2년간 주중 한국대사를 지냈다.

장 전 대사는 북한대사관에서 근무하는 등 장기간 북한 업무에 종사했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에티오피아와 스리랑카 대사를 역임하는 등 한반도 문제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

그가 예비 교섭단 부대표로 선임될 때의 상황은 중국 대형 포털인 바이두에 상세히 소개돼 있다.

1992년 5월 중국 외교부는 대만사무판공실에서 근무하던 장 전 대사를 부대표로 임명했다. 장 전 대사는 "10년 넘게 한반도 관련 접촉이 없었고 한·중 관계에 대해서는 더욱 무지했다"며 "한국 측 대표와 일주일 뒤 만나기로 해 준비할 시간도 빠듯했다"고 전했다.

그는 "업무를 인계받고 서둘러 자료를 검토하며 협상을 준비했다"며 "일주일이 지나니 마음이 좀 안정됐다"고 덧붙였다. 양측 부대표는 6~7명의 보좌진을 대동하고 교섭을 시작했다.

7월 29일에는 양측 수석대표가 수교 문건에 가서명했고, 8월 23일에는 첸 국무위원과 이상옥 전 외교부 장관이 수교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튿날인 24일 양국 외교장관은 베이징 댜오위타이 영빈관에서 열린 조인식에서 수교 고옹 발표문에 서명했다.

장 전 대사는 "유일한 문제는 북한의 이해와 지지를 이끌어내는 것이었다"며 "첸 국무위원이 당 중앙의 위임을 받아 7월 15일 김일성을 만났고 결국 문제를 해결했다"고 말했다.

지난 27년간 한·중 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다. 지난해 양국 교역액은 2686억 달러로 전년 대비 11.9% 증가했다. 한국의 대중 흑자액은 557억 달러에 달한다.

펑파이신문은 "한·중 수교 25주년이었던 2017년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문제로 양국 관계가 최악으로 추락하기도 했다"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고 양국 외교당국이 합의하면서 관계 개선의 서막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지난 6월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만난 문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한·중 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격상하는데 합의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나 20일 베이징에서 왕이(王毅)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회담을 하며 "한·중 수교 27주년 즈음에 중국을 방문한 것은 특수한 의미를 갖는다"며 "양국 협력의 새 모델을 만들고 양국 관계의 넓이와 깊이를 확대하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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