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강한 민주당' 전제조건은

2019-08-01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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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이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한·일 갈등 분석 보고서 때문이다. 보고서는 ‘한일 갈등이 총선에 미치는 영향은 민주당에 긍정적’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면서 원론적인 대응(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보고서는 민주당 의원 모두에게 발송됐다. 논란이 확산되자 민주연구원은 궁색한 답변을 내놨다. “민주당 공식 입장은 아니다. 충분한 내부 검토를 거치지 않고 부적절한 내용이 나갔다.” 양정철 원장도 “적절치 못한 내용이 적절치 못하게 배포돼 유감이다”며 고개 숙였다. 사태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죽창가, 이적(利敵), 신 친일 논란과 맞물려 휘발성이 강하다. 야당에 빌미를 준 꼴이다. 한국당은 “민주연구원이 아니라 민중선동연구원”이라고 비난했다. 그래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경솔했다는 비판이 당 안팎에 비등한 이유다. 기업들은 경제보복 때문에 한 달 가까이 전전긍긍이다. 국민들은 때 아닌 친일 논쟁에 휩싸였다. 정당한 비판도 친일로 몰릴까 자기검열에 나서는 웃픈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여당 싱크탱크는 저급한 표 계산에만 급급했다. 그런데도 솔직하지 못하다. 양 원장은 자신은 몰랐다고 한다. 보고서 첫 장에는 ‘대외주의’라고 적혀있다. 원장이 모르는 상태에서 배포됐다는 게 더 문제다. 비공개 자료 유출 논란까지 더해지는 판국이다. 자칫하면 민주연구원에 대한 도덕성 논란까지 우려된다. 이쯤 되면 솔직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내부에서 따끔한 경고음을 내야 한다. 그런데 청와대도 민주당도 침묵하고 있다.

그동안 양정철 원장 행보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마조마했다. 그는 취임 이후 끊임없이 뉴스를 몰고 다녔다. 언론은 광폭 행보를 불안한 눈길로 주시했다. 잦은 구설은 대통령과 민주당에 부담이 됐다. 실세라서 대놓고 말하지 못했을 뿐이다. 국정원장 만찬은 대표적이다. 당시 야당이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면 논란이 되기에 충분했다. 양 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일등공신으로 회자된다. 그래서 어떤 공직도 맡지 않겠다는 선언은 신선했다. 해외로 떠돌 때는 동정론도 비등했다. 그는 주목받는 정치인이다. 누구보다 신중해야 한다. 덧붙여 문재인 정부가 성공하고, 민주당이 건강하려면 내부 견제와 비판이 활발해야 한다. 그럴 때 민주당에 희망이 있다.실세라고 숨죽이고, 내 편이라고 눈감고, 당론이라고 침묵한다면 망하는 길밖에 없다.

송영길, 최운열, 금태섭, 조응천 의원은 반대를 주저하지 않는다. 청와대와 다른 목소리를 내고 당론과 배치되는 발언을 쏟아낸다. 지지층으로부터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송영길 의원은 에너지 정책에 대해 줄곧 소신을 피력하고 있다. 원전을 폐기하는 것보다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먼저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LNG발전은 원전에 비해 미세먼지와 온실가스가 더 많이 발생한다는 주장이다.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도 주문했다. 정부 정책과 결이 다른 용기 있는 발언이다.

조응천 의원은 조국 수석 경질을 처음 거론했다. 인사검증 실패 논란이 한창일 때다. 그는 “대통령을 직접 모시는 참모는 다른 공직자보다 더 빠르고 더 무겁게 결과에 대한 정무적 책임을 져야한다”며 사의를 촉구했다. 조 의원은 경기 남양주 갑에 출마해 249표 차이로 신승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이다. 당시 문재인 대표는 선거 전날 SNS에 “유난히 두 사람이 눈에 밟힌다”면서 조응천 지지를 호소했다. 조 의원이 보여준 소신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 금태섭 의원은 윤석열 검찰총장 인사 청문에서 소신 발언을 쏟아냈다. “후배 검사를 감싸기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해도 괜찮냐” “후배를 감싸주려고 거짓말하는 게 미담인가” “아이들에게 그렇게 가르칠 것인지 듣고 싶다”며 사과를 촉구했다. 민주당 모든 의원들이 감싸느라 급급할 때 홀로 보인 소신이다. 조응천 금태섭 의원은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해서도 당론과는 다른 목소리를 냈다. 옥상옥을 비롯해 우려되는 부작용에 주목한 것이다. 다른 목소리를 낸 대가는 혹독했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면 안 된다” “배신자가 본색을 드러냈다”는 원색적인 비난이었다.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출신인 최운열 의원도 마찬가지다. 급격한 최저임금인상을 비판하며 동결을 주문했다. 이해찬 당대표 경제특보를 맡고 있기에 쉽지 않은 목소리다. 누구도 고양이 목에 방울걸기를 주저할 때 경제학자로서 보인 소신이다. 물론 송영길 최운열 조응천 금태섭 의원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다양한 목소리다. 정당 민주화는 거창한 게 아니다. 이런 목소리가 모여 민주당을 민주당답게 만든다. 그럴 때 국민들도 민주당을 신뢰한다.

얼마 전 끝난 북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투표율은 99.98%였다. 그 가운데 찬성은 100%. “예”만 있는 정당은 조폭사회나 다름없다. 사마천은 진나라가 멸망한 가장 큰 원인으로 ‘옹폐(雍蔽)’를 들었다.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는 ‘옹폐지국상야(雍蔽之國傷也)’는 고금을 떠나 진리다. 양정철 원장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쓴 소리를 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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