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신작로(新作路)는 근대화를 의미했다. 새로 난 넓은 길을 달리는 자동차는 산업화로 통했다. 신작로를 기억하는 세대에겐 아련한 그리움이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햇빛 쨍쨍 퍼부어 불 아지랑이 어른거리는 하얀 신작로 길. 작은 미루나무만 뽀얗게 먼지 뒤집어쓰고 외로이 줄지어 서 있는, 아무리 걷고 또 걸어가도 팍팍했던 머나먼 자갈 길.”(양정자‧신작로) 그러나 신작로는 그리움보다는 강제 수탈 통로였다.
경제보복으로 한·일 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강제 징용공에 대한 우리 대법원 판결이 단초가 됐다. 일본은 한국이 국제법을 어겼다며 치졸하게 보복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1965년 청구권협정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손해배상청구권은 유효하다며 맞서고 있다. 국제법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해석은 엇갈린다. 우리 대법원은 국가 간 협정과 개인 손해배상 청구권은 별개라는 해석을 따랐다. 양심 있는 일본 지식인들도 동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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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고등재판소 니무라 판사가 대표적이다. 그는 일본 시사종합지 ‘세카이(世界)’에 “국가 간 조약이나 협정을 이유로 개인 청구권을 일방적으로 소멸시키고, 재판을 청구할 수 없도록 하는 게 합당한지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해야 한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국가 간 협정이 개인 배상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없다는 논리다. 한국 대법원 판결을 지켜본 일본 변호사 200여명도 지지 성명을 냈다. 그런데도 아베 정부는 과거사 부인도 모자라 속 좁은 짓을 하고 있다.
아베가 주력했던 참의원 선거는 ‘반쪽 승리’다. 과반 의석은 얻었지만 개헌 발의에 필요한 의석수는 확보하지 못했다. 아베가 경제보복 카드를 꺼낸 이유는 보수 결집을 통한 선거 승리였다. 그러나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문제는 ‘한국 때리기’가 더욱 강경해질 것이란 우려다. 아베는 21일 TV아사히에서 “한국 측에서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라는 말은 오만하고 무례하다. 한국을 자신들 아래에 둔 헛소리다.
앞서 일본 정부는 한국 실무단과의 협상을 ‘설명회’로 폄하했다. 회의 장소도 창고나 다름없었다. 고노 외상은 한 걸음 더 나갔다.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 말을 끊고, 한국 정부에 “무례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둑놈이 회초리를 든다는 ‘적반하장’이 따로 없다. 혼네(속마음)는 어떤지 몰라도 다테마에(겉마음)만큼은 친절하다는 일본인이다. 의도적인 무례함은 우리 감정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아베 정부 도발에 휘말린다면 하책(下策)이다.
반면 북한은 시원시원하다. 북한 선전매체 ‘우리 민족끼리’는 연일 아베 정부를 성토하고 있다. 22일에도 포문을 열었다. “과거청산을 거부하면서 대세에 역행하는 못된 짓”, “우리 민족에게 막대한 해악을 끼친 죄 많은 나라”, “식민지배가 ‘근대화’를 이끌었다는 파렴치한 궤변”, “섬나라를 통째로 팔아 갚아도 모자랄 판” 거칠지만 정곡을 찌른다. 우리 속내를 대변한다. 외교적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한국 정부는 자제할 수밖에 없다. “개싸움은 우리가 한다”는 누리꾼들 대응에서 위안을 삼는다.
문제는 경제 전쟁이 간단치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다음 달 초 화이트 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면 100여개 핵심 부품과 소재가 규제 항목에 포함된다. 앞서 3개 품목만으로도 충격이 컸다. 대상 품목이 늘고 장기화될 경우 피해는 확대될 게 분명하다. 목소리를 낮추고 냉정할 필요가 있다. ‘징비록’ 첫 대목에는 신죽주가 성종에게 “일본과 화친을 잃지 말라”고 상소했다는 글이 있다. 그러나 안일하게 대응한 나머지 임진왜란을 초래했다. 국난은 정유재란, 병자호란, 식민지배로 이어졌다. 화친을 유지하되 실력을 키우는 게 관건이다.
1965년 일본과 수교 이후 우리는 한 해도 흑자를 내지 못했다. 누적 적자만 708조원 규모다. 그동안 일본과의 관계가 삐걱댈 때마다 비슷한 행태가 반복됐다. 대일 의존도를 낮추고 핵심 부품 소재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위기만 넘어가면 잊었다. 한국 전자정부 기술을 일본에 전수하고 있는 염종순 박사는 정부 역할을 강조한다. 전자정부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선 것은 DJ정부에서 관련 산업을 키운 덕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핵심 소재 산업 육성에 정부가 집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기업 책임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동안 국내 협력 기업을 소홀히 한 결과가 오늘날 화를 불렀다는 비판에서 출발한다. 중소기업과 선순환 고리를 만들 책임이 있다는 조언이다. 그럴 때 신작로를 근대화라고 우기는 일본 정부에 대해 과거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그래서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반복된다는 명제는 여전히 통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