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진구의 부산시민공원. 평범한 이 공원이 지난달 15일, 갑자기 세계적인 관광지로 부상했다. 글로벌 스타 방탄소년단(BTS) 멤버인 뷔가 이곳을 방문한 것. 전날만 해도 ‘북쪽 3번 게이트앞 산책로’였던 길은 순식간에 ‘뷔 로드’로 등극했다. 공원측도 발빠르게 아미(ARMY, BTS 팬클럽)를 위한 포토존을 조성했다. 누구나 좋아하는 연예인이 한 명씩은 있다. 그런데 단순히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대상에 깊은 애정을 갖고 열광하는 ‘덕후’들의 힘은 평범한 장소를 이처럼 성지순례지로 바꾼다.
올여름, 미국 뉴욕으로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 영화 ‘어벤져스’ 성지 순례를 떠나는 우리 회사 직원에 그 이유를 묻자 “특별하잖아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팬덤, 키덜트 등의 문화를 탄생시킨 소위 덕후들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일차원적 소비를 넘어서 굿즈를 수집하거나 연관 콘텐츠를 직접 경험하며 더욱 깊게 공감하고 감동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이 특별함을 추구하는 덕후의 힘은 특히 관광산업에서 그 위력을 발휘한다.
관광 산업에 있어 ‘특별함’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이 곧 콘텐츠다. 콘텐츠란 마블스토어 같은 기념품숍이 될 수도,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에서 주인공들이 먹은 히다후루카와의 라멘집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단순 인증샷을 남기는 포토존만으로 성지가 되기 힘들다. 덕후들은 대상에 깊게 공감하고 체험하는 특별한 콘텐츠가 마련돼야 열광한다.
일본 도쿄의 아키하바라는 게임과 각종 피규어 매장이 밀집해 있는 덕후의 성지다. 여기에 2006년 AKB48이라는 아이돌이 데뷔, 국민적인 인기를 얻으며 그 위세가 더욱 높아졌다. 돈키호테 아키하바라점 8층의 AKB48극장은 국민 아이돌 AKB48이 탄생한 기념비적인 장소다. 오직 이곳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 굿즈와 멤버들의 공연, 만남이 가능해 덕질의 필수 관문이 됐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도 ‘프로듀스48’을 통해 AKB48 멤버들이 인기를 끌자 게임, 피규어에는 전혀 관심 없던 사람들도 아키하바라 방문이 늘었다. 단순 소비만 이뤄지던 공간을 체험하며 열광할 수 있도록 발전시킨 힘이 바로 AKB48이란 콘텐츠의 힘이다.
엔터테인먼트와 문화산업 전반에 신드롬을 불러온 BTS의 경우 ‘방탄투어’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는 등 그 위력이 대단하다. 방탄투어란 BTS의 뮤직비디오, 앨범 재킷 촬영지, 멤버들이 즐겨찾는 맛집 등을 찾아 그들의 경험을 공유하는 여행이다. 2017년 발매된 앨범 ‘YOU NEVER WALK ALONE’의 재킷 촬영지인 강릉의 주문진해수욕장 항호해변 버스정거장은 전세계 BTS 팬들이 가장 방문하고 싶어 하는 곳으로 꼽힌다. BTS가 무명시절부터 찾은 강남의 유정식당은 이제 ‘방탄식당’으로 불릴 만큼 유명해졌다.
BTS 멤버들이 국내 여행 중 올린 인증샷을 보고 여행지를 찾아가는 투어도 많다. 앞서 언급한 부산시민공원을 비롯해 RM이 여행한 여수 향일암도 방탄투어 장소로 꼽힌다. 가장 인상적인 점은 제이홉이 작사한 ‘Ma City’를 듣고 광주광역시를 방문해 5·18 민주묘지까지 참배한 해외팬들이다. 당시 팬들은 가사에 등장한 광주와 5·18이 궁금해 찾아왔는데 비극적인 역사를 알고 참배까지 했단다. 덕후들을 여행하게 만들고 지역 역사에도 귀를 기울이는 힘, 그것이 BTS란 콘텐츠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