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식 칼럼] 이인영 신임 원내대표에게 바란다

2019-05-10 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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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임병식 객원 논설위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신임 원내대표는 한때 386세대로 불렸다. 1987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1990년 전대협 1기 의장을 지냈다. 흔히 말하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임종석, 우상호, 김민석과 함께 386을 대표했다. 이들을 발탁한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새천년민주당을 창당한 김 전 대통령은 ‘젊은 피’ 수혈을 앞세웠다. 이 원내대표도 2000년 입문했다. 30대 정치인이 가세하면서 새천년민주당에는 신선한 바람이 불었다. 당은 역동성을 띠었다. 16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은 획득하지 못했지만 그때 뿌린 386이란 씨앗은 대한민국 정치사에 의미 있는 흐름을 형성했다.

‘386’은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닌 30대 정치인이다. 그러니 이제는 과거형이다. 파릇함은 가시고 어느덧 50대 중후반을 바라보는 ‘꼰대’가 됐다. 나아가 자기 검열은커녕 기득권에 안주한 세력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래도 ‘86’으로 불리는 이들은 우리 정치권에 소중한 자산이다. 진보적 성향에다 현실 인식을 갖췄기에 잘만 버무린다면 균형 있는 정치를 펼치기에 좋은 토양을 갖고 있다. 보수진영으로부터 제기되는 공격도 수렴할 수 있다. 보수는 현 정권이 지나치게 편향됐다며 비난한다. 진영논리에 포획된 나머지 포용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86에게 요구되는 덕목은 유연함이다.

“낡은 관념과 아집부터 불살라 버리겠다.” 그런 점에서 이 원내대표가 밝힌 향후 노정은 의미 있다. 나만 옳다는 독선과 독단은 끼리끼리 문화와 아집에서 비롯된다. 이 원내대표가 제시한 선거 캐치프레이즈는 ‘변화와 통합’이었다. 친문 핵심인 김태년 의원을 여유 있게 제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친문일색으로는 대선은커녕 내년 총선조차 기약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다. 동종교배보다 잡종교배가 낫다는 건 상식이다. 이인영은 동종교배에 대한 반작용이다. 당청 관계가 일방으로 흐르고 있다는 당내 불만도 표로 나타났다.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한 현실을 바로잡아 달라는 주문이다.

이 원내대표에게 주어진 과제는 적지 않다. 총선 승리라는 정치 셈법에만 연연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선출해준 의미를 절반만 달성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변화와 통합에 방점을 두어야 한다. 강한 종이 살아남는 게 아니다. 살아남는 종이 강하다. 진화는 변화를 통해서 가능했다.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살피며 적절하게 대응한 결과다. 변화가 생존이자 경쟁력이다. 민주당은 오만해졌다는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 고루한 정책, 편향된 사고, 자신만 옳다는 독선, 진영논리에 갇힌 아집, 상대를 배척하는 독단을 철저하게 깨뜨려야 한다. 그럴 때 총선을 넘어 대선으로 갈 수 있다.

또 다른 과제는 통합이다. 당내 통합을 말하는 게 아니다. 당내에선 다양한 목소리가 있어야 건강하다. 그러니 통합을 앞세워 소수를 배척하거나 다양성을 죽여서는 안 된다. 다양한 의견이 오갈 때 진영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에코챔버와 확증편향을 경계해야 한다. 끼리끼리 둘러앉아 확증편향을 키우다 보면 독선과 오만만 자랄 뿐이다. 당내는 화합이다. 제대로 된 통합은 당내 통합을 뛰어넘는 것이다. 야당과 소통하고 반대편에 있는 국민을 껴안는 것이다. 당장은 한국당을 설득해 의회정치를 복원하는 일이다. ‘가출정치’라는 말로 조롱하기는 쉽다. 대화와 타협, 그리고 협치가 진짜 통합이다.

지방자치분권도 그런 맥락에서 폭넓게 논의되어야 한다. 지방 소멸이란 위기를 외면한다면 미래는 암울하다. 모두가 서울, 수도권만 생각할 때 지방에 시선을 두었다는 점은 평가받을 만하다. 지방이 살아야 국민통합과 국가경쟁력을 견인할 수 있다. 수도권 집중과 지방 소외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가균형발전은 노무현 정신이다. 다양한 지역발전 전략을 만들어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인다면 새로운 인물 발굴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386을 발탁했듯이 21대 총선은 시대흐름을 반영한 인물로 채워야 한다. 그럴 때 민주당의 앞날도 밝다.

이 원내대표는 정계 입문 이후 먼 길을 돌았다. 16대 첫 출마에서 낙선했고, 18대 총선에서도 떨어졌다. 정책위의장, 대변인, 원내수석부대표 등 변변한 중책을 맡지 못했다. 유일한 당직이 최고위원이다. 주류보다는 비주류였다. 그래서 소외된 이들을 헤아릴 수 있는 눈높이를 지녔다. 소수를 보듬고 야당 설움도 헤아리는 마음가짐이다. 그는 “주류, 비주류 없는 완전한 융합으로 새로운 통합, 새로운 질서를 만들겠다”고 했다. 새로운 통합, 새로운 질서는 국민통합과 정치 발전을 위해서도 절실하다.

군사 책략자 손빈은 “민중의 지지를 얻으면 승리하고, 그러지 못하면 패한다”고 했다. 지지는 소통에서 비롯된다. 사마천도 진이 멸망한 가장 큰 원인으로 위 아래 언로가 막히는 ‘옹폐(雍蔽)’를 들었다. 언로가 막히면 나라가 망한다는 ‘옹폐지국상야(雍蔽之國傷也)’다. 원내대표는 소통하는 자리다. 당내, 청와대, 야당, 그리고 국민과 소통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내 주류‧기득권, 관성과 맞서야 한다. ‘파부침주(破釜沈舟).’ 솥을 깨고 배를 가라앉히는 결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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