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길을 잃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내놓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합의안이 12일(현지시간) 하원 승인투표에서 또 다시 부결되면서다. 브렉시트를 둘러싼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 영국의 정국 혼란은 더 커졌다.
가디언과 BBC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12일 영국 하원은 메이 총리가 EU와 막판 협상 끝에 내놓은 브렉시트 수정 합의안에 다시 반대표를 쏟아냈다. 찬성 242표, 반대 391표로 표차는 149표에 달했다.
이날 승인투표가 부결되자 메이 총리는 예고한 대로 13일 노딜 브렉시트 여부를 표결에 부친다고 밝혔다. 만약 하원이 노딜 브렉시트에 찬성하면 영국은 오는 29일 아무런 합의 없이 EU를 탈퇴한다. 이 경우 관세와 국경 문제 등에서 큰 혼란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노딜 브렉시트가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하원이 노딜 브렉시트를 부결하면 14일에 브렉시트를 일정 기간 연기할지를 두고 다시 투표를 치른다. 브렉시트 연기가 통과되면 영국은 EU에 탈퇴 연기를 요청하고, EU는 오는 21일 정상회의에서 영국의 요청을 승인할지 결정한다.
하지만 영국이 EU 탈퇴 시점을 얼마나 미루길 원하는지, 원하는 만큼 미룰 수 있는지 장담할 수 없다. 5월로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가 변수다. EU는 5월 23~26일 차기 유럽의회 의원을 뽑을 예정인데 영국이 EU 탈퇴를 결정한 만큼 영국 출신 의원은 뽑지 않을 계획이기 때문이다. 선거 후에도 영국이 EU 회원국으로 남을 경우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고려해 영국이나 EU 모두 차기 유럽의회 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되기 전에 탈퇴를 마무리짓겠다는 구상을 밝힌 바 있다.
게다가 2016월 6월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하고도 2년 반째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영국이 브렉시트를 몇 달 연기한다고 해서 그 사이에 마땅한 해법을 찾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브렉시트 합의안에 대한 추가 협상의 경우 EU가 불가 방침을 못박은 상태다. BBC는 브렉시트 탈퇴 시점을 연기하면 메이 총리 사퇴와 조기 총선에서 노딜 브렉시트 및 제2 국민투표 재추진까지 브렉시트를 둘러싼 온갖 선택지가 처음부터 다시 논의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메이 총리에 대한 사퇴 압박은 더 커질 전망이다. 12일 승인투표 전부터 여당인 보수당에서조차 메이 총리가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제1 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 역시 조기 총선을 통해 새로 판을 짜서 EU와 협상을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2 국민투표를 통해 EU 탈퇴를 없던 일로 되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메이 총리는 이날 하원 부결 직후 현재의 브렉시트 합의안이 최선이라면서도, 제2 국민투표 선택지를 완전히 버리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메이 총리는 "EU는 우리가 리스본 조약 50조에 따른 브렉시트 취소를 원하는지, 아니면 제2 국민투표를 원하는지를 알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케이어 스타머 노동당 대변인은 당장 2차 국민투표를 추진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2차 국민투표가 결정되면 EU 잔류를 지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