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사바하' 이정재에게 남은 '총알'들

2019-02-27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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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사바하'에서 박목사 역을 맡은 배우 이정재[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눈으로 봐도 믿을 수 없는 '콰트로 천만'이라는 대기록. 영화 '도둑들'부터 '암살' '신과함께'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영화의 중심에는 언제나 배우 이정재가 있었다.

'흥행'을 위해 안전하고 믿음직한 작품을 따라갈 법도 하건만, 이정재는 언제나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새롭고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혀있다. 그것이 배우 이정재(47)의 원동력이고, 그가 '믿고 보는 배우'라 불리는 이유기도 하다.

그런 이정재가 선택한 영화 '사바하'(감독 장재현)는 신흥 종교 집단을 쫓던 박목사(이정재 분)가 의문의 인물과 사건들을 마주하게 되며 시작되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2015년 개봉해 544만 관객을 모은 '검은 사제들' 장재현 감독의 신작으로 당시에도 독특한 장르, 색채, 비주얼로 마니아를 양산해냈던바. '사바하' 역시 장르적 재미, 서사, 캐릭터, 영화적 은유 등으로 개봉 7일째 박스오피스 정상을 지키며 140만 관객을 동원했다.

"그간 장재현 감독 같은 연출자를 만나 본 적이 없었어요. 엄청난 독창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독창성'을 남들에게 잘 설득 시키죠. 그 한 커트, 한 커트를 찍어내는 집요함이란…. 아주 특별한 사람인 것 같아요."

언제나 "새로운 것, 다른 것에 도전하고 싶었던" 이정재지만, 연기 경력 27년 차가 돼서야 느낀 건 "아무래 '다른걸' 만들고 싶어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경력이 쌓이니까 알겠더라고요. 예전에는 '다르게 보이도록 해야지' 혼자 고민했다면, 지금은 '이정재를 다르게 보이도록 해야지' 하고 모두 함께 고민하고 있다는 걸요. 모두 함께 노력하니 작품을 용이하게 해나갈 수 있는 게 아닐까요? 감사하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더라고요."

영화 '사바하'에서 박목사 역을 맡은 배우 이정재[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다르게 보인다"는 점에서 영화 '사바하'와 박목사 캐릭터는 기존 장르와 캐릭터와는 궤를 달리하는 점이 많다. 불교와 기독교, 무속이 한데 섞여 있고 '목사'라는 직업을 앞세우고 있지만 목회를 주로 하는 일반적인 목사 캐릭터도 아니었다.

"일단 '사바하' 얘기를 할게요. 오컬트적인 것보다 추리적 서사가 강하다는 이야기가 많잖아요. 저도 그 점을 흥미롭게 보았어요. 처음에 '사바하? 어떤 영화야'하고 책을 읽었는데 '아, 이거 탐정 영화네!' 하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왜, 무서운 걸 잘 못 보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저도 그렇거든요. 오컬트적 요소, 추리적 요소가 한데 엮이면서 색다른 영화가 나올 거로 생각했어요. 그 점이 재미있게 느껴졌고요."

그렇다면 캐릭터 적인 요소는 어땠을까? 이정재는 "이런 캐릭터는 내 필모그래피에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박목사라는 캐릭터의 실제 모델을 언급하기도 했다.

"박목사는 실제 모델이 있어요. 종교인을 자처하며 악행을 저지르는 인물들을 고발하는 분이 계시는데 그분을 모델로 만들어졌어요. 그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흥미로웠고 궁금해졌죠."

그렇다면 '실제 모델'이 연기적인 부분에도 영향을 미쳤을까? 의아하게도 대답은 "아니오"였다. 이정재는 오히려 연기적인 부분은 장재현 감독의 색깔이 더 강하게 들어갔다고 말해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장재현 감독은 머릿속에 정확한 그림이 있어요. '그게 아니라 이런 거예요' 하고 요구하길래 '차라리 편하게 얘기를 해달라'고 했죠. 어미를 올리느냐, 내리느냐, 화를 내느냐 마느냐까지 아주 세세하게 물어보고 체크했어요. 그런데도 딱 자기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나 봐요. 그래서 결국 '대본을 읽어봐라'하고 카메라로 찍기 시작했죠. 지금도 제 핸드폰에 장재현 감독의 연기 영상이 남아있어요. 하하하."

영화 '사바하'에서 박목사 역을 맡은 배우 이정재[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장재현 감독의 연기를 그대로 이정재화 시키는 작업은 어땠을까? "도움이 되었냐"는 말에, 이정재는 "그렇다"며 이해하기 쉬웠다고 거들었다.

"텍스트 내지는 대화로 설명하고 이해한다고 해도 정확한 표현이나 자기 느낌을 명확하게 그리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당신이 연기해라'하고 찍는 건, 그런 의미에서 꽤 도움이 됐어요. 박목사는 애초에 장재현 감독의 시점과 호흡이 많이 가미된 인물이기 때문에 연기할 때도 많이 참고됐죠."

장재현 감독을 담아내는 연기는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었을까? 이정재에게 호기심을 드러내자 그는 "굉장히 독특한 말투를 가져다"며 "똑똑한 사람들은 다 그런가?"라고 말해 웃음을 유발하기도 했다.

"사람을 떠보는 듯한 말투를 가지고 있어요. 스트레이트 하게 말하지 않고 이렇게 찌르고, 저렇게 찔러보는데 그런 말투가 박목사에게 있었으면 했던 거 같아요. 진짜인가? 가짜인가? 떠보면서 반응을 찾아보려고 하는 말투요. 그런 습성과 눈빛, 반응 등을 요구했죠."

영화 '사바하'에서 박목사 역을 맡은 배우 이정재[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러면서 이정재는 함께 연기한 후배 배우들의 연기를 칭찬, 그들에게 '배울점'을 언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박)정민 씨, (이)다윗 씨가 출연한 영화는 거의 다 봤어요. '와, 신선한데?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거지?' 반해버려서 결국 다 찾아봤죠. 다윗 씨의 경우는 과하지 않은데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이 있더라고요.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연기가 있어요. 정민 씨의 근래 작은 놀라울 정도로 집중력이 뛰어나요. 순식간에 몰입해서 자아를 완전히 썰어버린 듯한 연기를 하죠. 두 분 모두 뛰어난 연기를 보여줬다고 생각해요."

함께 호흡할 기회는 없었지만 금화 역을 맡은 이재인에 관해서도 빼놓지 않고 칭찬했다. "타고난 배우"라면서 "기대되는 신인 배우"라고 추켜세웠다.

"아직 연기력을 논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영글지 않고 아직 성장해나갈 수 있는 나이니까. 연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됐잖아요. 그렇지만 연출자, 동료 연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하면 되는 건가?' 생각하고 연기하는 게 놀라워요. 그건 아무리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탁월한 배우죠."

올해 27년 차 '베테랑' 배우인 이정재는 중견 배우로서의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연기에 관해 솔직하게 고민을 털어놓는 모습에서 소위 말하는 '꼰대'의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래 일한 연기자에게는 으레 '제가 알아서 연기하는 거지' 하는 시선이 더러 있어요. '그 정도 연기했으면 알아서 잘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식이죠. 물론 그것도 맞지만, 연출자 스태프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서 함께 고민하면 뭐 하나라도 좋은 게 더 나올 수 있잖아요. 물론 저도 '이건 어때?'하고 제안했는데 '별론데요' 해버리면 섭섭할 때도 있지만. 하하하! 그런 체면을 내려놓을수록 더 편안해져요. 동료 배우들과도 더 허심탄회하게 일 얘기를 할 수도 있고요."

또한 그는 후배 배우들을 보며 영감을 얻고,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제 '총알'은 몇 발 남지 않은 것 같지만 장 감독이나 박정민, 이다윗 같은 자기 색 분명한 배우들과 함께 작업하다 보면 저도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그들과 일하다 보면 그들의 '총알'이 부러워지거든요. 그러면서 '아, 내가 저 작품이나 역할을 해보면 어떨까?' 상상을 하곤 해요. 그러면서 '총알'을 비축하기도 하고요. 그들의 연기를 따라 하고 또 배우기도 해요. 사실 이제 저는 그들의 신선함을 능가할 수는 없어요. 신선함이 주는 힘은 파괴적이거든요. 다만 노련한 힘은 아직 있으니. 그 남은 '총알'을 잘 이용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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