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기업들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과를 예의 주시하며 잰걸음을 걷고 있다.
양 정상이 이번 회담에서 논의할 북한 비핵화 합의 수준과 미국의 지원책 등에 따라 남북경협 등 남북관계 전반에 불어닥칠 변화의 격류가 거셀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10대그룹의 한 고위임원은 27일 "북·미 정상회담이 동북아 정세 안정화로 이어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해소되고 새로운 사업 기회가 생겨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대그룹은 그 누구보다 이번 회담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그룹의 숙원 사업으로 꼽히는 금강산 관광 사업과 개성공단 가동 등 대북 사업을 재개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2차 북·미회담을 계기로 남북경협이 재개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면서 "회담 진행상황을 지켜보면서 내부적으로는 남북경협 재개 등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베트남 현지 생산공장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문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김 위원장이 이번 회담을 계기로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를 잘 풀어낸다면, 베트남에 위치한 한국 생산공장들은 북한 경제발전의 롤 모델이 될 것"이라고 봤다.
SK그룹에서는 SK임업이 남북경협의 주체가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있다. 북한은 지난해 9월 열린 평양정상회담 이전부터 산림녹화사업에서의 협력을 원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소기업계는 이번 회담이 북한의 경제 개혁·개방으로 이어진다면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변재용 중소기업중앙회 남북경협팀장은 "북한의 경제 개혁·개방은 고임금·저성장 국면인 현 경제상황을 넘어서는 돌파구 역할을 할 것"이라며 "새로운 시장 확대와 양질의 노동력 확보, 원가절감 등 사업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북제재 완화 시 건설·통신 등 수혜 기대
전문가들은 향후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가 완화된다면 우선적으로 건설, 에너지, 통신 등의 업종이 수혜를 볼 것으로 진단했다.
실제 대형 건설사들은 이미 대북사업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렸으며, 향후 대북제재 완화 시 적극 대응한다는 입장이다.
현대건설은 올 들어 영업조직 내에 10여명 규모의 경협 지원단을 신설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이번 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도출되면 남북경협이 빠르게 진행되고 기업들의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건설도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현재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가 언급되는 상황"이라며 "작년 9월 평양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동·서해선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추진이 예상되는 만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개성공단 개발사업자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관계자는 "이번 북·미회담 결과 남북경협의 물꼬가 트이고 개성공단이 조속히 재개돼 우리 입주 기업들이 하루 빨리 공장을 가동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국내 대표 철강업체인 포스코는 "북한의 인프라 구축이나 제철소 리노베이션 등 철강업에 대한 투자에 포스코가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통신·정보기술(IT) 분야에서는 소프트웨어 업체와 통신사들의 진출 기회가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북한은 통신 네트워크 등 인프라가 미비해 평양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통신 서비스가 불가능하다.
◆의료·항공 등 서비스 업종도 기대 고조
의료, 항공, 물류 등 서비스 관련 기업들도 기대감을 표했다.
북한은 보건의료산업이 매우 낙후돼 있다. 특히 백신이 부족해 예방접종률이 낮아 연간 영아(생후 1년 이하) 사망이 8000명에 달한다.
이에 녹십자, SK케미칼 등 국내 백신 생산 관련 기업은 북한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녹십자는 2000년 제약사 최초로 북한에 남북합작회사 '정성녹십자생물제약합작회사'를 만들었으며 평양에 공장을 보유하고 있다.
항공업계도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남북간 긴장완화로 한국에 입국하는 외국인 관광객이 늘어날 수 있다"며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북한 영공을 지날 수 있게 되면 비행시간을 줄이고 유류비도 아낄 수 있어 다양한 항로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편의점 등 유통업계도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개성공단에 유일하게 진출했던 CU는 "개성공단이 정상화돼 점포 운영이 가능해진다면 입주기업 직원들을 위한 편의시설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회담을 통해 대북사업에 물꼬가 트인다 해도 실제 사업 재개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막연한 기대감보다는 차분하게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남북경협과 관련해 다양한 사업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실화된 것은 거의 없다"며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 및 산업 활성화에 기여하겠지만 당장 성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