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짙어지고 있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역사적인 첫 회담 이후 뚜렷한 비핵화 성과가 드러나지 않아서다.
◆진전 없는 비핵화 협상..."북·미 정상 뭐하러 만나나"
북한 사정에 정통한 미국의 한 고위 협상자도 블룸버그에 북·미 양측이 비핵화 개념이나 미국이 김 위원장을 만족시키기 위해 뭘 제안해야 할지 등에 대해 아직 합의하지 못한 상태라고 귀띔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오는 27~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재회할 예정이다.
블룸버그는 비핵화 개념과 미국의 상응조치 등에 대한 북·미 간의 근본적인 의견차 때문에 하노이 회담이 싱가포르 회담과 다를 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싱가포르 회담은 비핵화라는 모호한 원칙만 도출했지, 실질적인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심지어 싱가포르 회담 이후 이어진 실무협상은 한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다.
비핵화와 관련해 미국은 북한이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공개하길 바라지만, 북한은 미국의 제재 해제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북핵 전문가인 비핀 나랑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블룸버그에 "이번 회담에서 양측이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늦추는 진전이나마 이루면 대단하겠지만, 가장 그럴듯한 결과는 (싱가포르 회담의) 되풀이"라고 말했다.
◆롬니 "특별한 기대 안 해...北약속 못 믿어"
미국 의회 전문지 더힐은 미국 상원에서도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나온다고 1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상원의원들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두 번째 정상회담을 환영하면서도 기대감은 낮다는 지적이다.
민주당의 밋 롬니 상원의원은 "기대 수준은 높지만, 특별한 기대는 없다"며 "북한은 수년간 그들의 약속은 믿을 수 없다는 걸 입증해왔다"고 비판했다. 2012년 공화당 대선주자였던 롬니 의원은 북한에서 특별한 언급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느냐는 질문에 "그런 언급을 바라지만,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더힐은 북·미 협상대표들이 싱가포르 회담 이후 어느 쪽이 먼저 다음 조치를 취할지 등에 대한 이견을 극복하는 게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친프럼프 진영에서는 하노이 담판에 기대하는 게 적지 않다. 상원 군사위원회 위원장인 공화당의 제임스 인포프 의원은 최근 베트남에서 나올 결과는 뭐라도 싱가포르 때보단 더 구체적일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는 "김 위원장이 보다 협조적으로 나설 마음을 먹지 않았다면 그 둘이 다시 만나기로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성과 자랑...美강경기조 후퇴 우려도
주목할 건 트럼프 대통령이 회의론은 아랑곳하지 않고 김 위원장과의 1차 회담 성과를 자랑할 뿐 아니라, 2차 회담에 대한 기대감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새해 국정연설에서 자신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았다면, 미국이 북한과 큰 전쟁을 벌이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때 김 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조롱했던 트럼프는 지난 8일 트위터를 통해 북한이 '경제 로켓'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를 비판하는 전문가들은 김 위원장도 트럼프 대통령만큼이나 북·미 정상회담 성과를 뽐낼 수 있다고 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 게 대표적이다.
브루스 클링너 미국 헤리티지재단 동북아 담당 선임연구원은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북한에 계속 주기만 하는 선물"이라며 "우리는 비핵화에 대한 진전을 전혀 이루지 못했고 북한은 계속 핵무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정보기관 수장들도 최근 미국 의회에 북한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전했다.
그 사이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기조가 너무 누그러진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이 최근 북한에 대한 핵자산 목록 공개 요구를 뒤로 미룰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다.
클링너 연구원은 "가장 큰 장애물은 신뢰 부족이 아니라 북한의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북한은 경찰 앞에서 '내가 오늘 은행을 안 턴다면 뭘 줄 수 있느냐'고 묻는 범죄자와 같다며, 범죄자가 먼저 상대방에게 적대적 의도가 없음을 납득시키기 위한 첫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