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신년 들어 파격적인 행정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 16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을지로 일대 대규모 재개발사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는데요.
역사와 전통이 담긴 생활유산을 보호한다는 취지는 좋았는데,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등 재개발 대상지 반응은 싸늘합니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선 연일 사업지 내 주민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요.
21일 세운3구역 토지주 200여명은 서울광장에서 '토지주 피 빨아먹는 늦장 행정 오류 행정 내 땅이지 네 땅이냐', '을지면옥 살리려고 모든 토지주를 죽이는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집단행동을 벌였습니다.
23일에도 세운3구역 토지주 150여명이 같은 장소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땐 '사방천지에 석면덩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게 정비하라' 등 주거환경이 여의치 않다는 점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이 보였습니다. '서울시 전면보류 결사반대', '을지면옥 개발희망! 조선옥도 개발희망한다!' 등의 문구도 눈에 띄었는데요.
서울시는 지난 2014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해왔습니다. 사업이 본격화한 지 5년째인데 이제와서 재개발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겠다니, '뒷북행정'이란 지적이 나오지 않을 수 없겠죠.
서울시가 23일 마련한 관련 입장 발표에서도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왜 이제와서?"라는 물음입니다. 시는 23일 을지면옥·을지다방·양미옥·조선옥 등 4개 노포를 보호하고, 연말까지 아직 철거되지 않은 구역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사실상 사업이 중단된 거죠.
이에 대해 서울시는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시민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도시환경정비구역 가운데 일부, 커피 한약방이나 을지로 노가리골목 등은 생활유산으로 지정됐다"면서 "2014년엔 생각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나면서 이에 발맞추기 위해 계획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구멍이 발견됐다는 건데요.
늦게라도 잘못을 고쳐가는 건 중요하지만, 그 방향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찍힙니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23일 발표에서 "을지면옥, 을지다방, 양미옥 등 토지 소유주가 '재개발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서울시 관계자는 "조선옥도 당장은 반대 입장"이라고 전했습니다.
일견 옛 것을 보존한다는 서울시 방침과 토지주들이 원하는 지점이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4개 점포 토지주들이 처음부터 재개발을 반대한 건 아니거든요. 사업시행사이자 토지 등 소유자 가운데 하나인 한호건설과 나머지 토지 등 소유자끼리 정리되지 않은 토지보상가액 등 숨은 문제가 있어요.
서울시 관계자는 "을지면옥 사장님과 3-2구역 내 다른 토지 소유주들이 시청으로 찾아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면서 "'재개발을 원하시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는데, '재개발을 원하지만 합리적인 시행사랑 같이 진행하길 원한다'고 하셨다"고 전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영세 토지주들의 사정이에요.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는 을지면옥·양미옥 등 인기 있는 맛집을 갖고 있는 토지주들 외에도, 15평 내외의 땅을 보유하고 있거나 영업자가 아닌 토지주들이 많아요. 이들은 연말에 서울시가 대책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많지 않아요. 사업지 일대가 지나치게 슬럼화돼 있어 임차인이 들어오려 하지도 않는 데다 공사를 하기도 어렵다고 해요. 사정이 이러니 빚을 안고 있는 경우도 많고요.
서울시가 보호하겠다는 4개 점포 외 철거를 원치 않는 다른 가게들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요? 이들은 단지 생활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철거 대상에서 빠지지 못했는데요. 생활유산 지정 기준이 '박원순의 입맛'이냐는 웃픈 얘기까지 도는 요즘입니다.
물론 서울시가 연말까지 기준을 마련해 보존해야 할 곳과 정비해야 할 곳을 확정하겠다곤 했지만, 앞으로 나올 기준마저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건 부정하기 힘듭니다.
오늘 출근하니 한 선배가 저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을지면옥 안 사라지게 돼서 너무 좋아. 사라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가려고 했었는데 정말 잘됐어."
그래도 박 시장표 도시재생이 미식가들에겐 통하는 걸까요? 정작 냉면 만드는 이들은 행복하지 않다니, 어쩐지 아이러니합니다.
역사와 전통이 담긴 생활유산을 보호한다는 취지는 좋았는데,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등 재개발 대상지 반응은 싸늘합니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선 연일 사업지 내 주민들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요.
21일 세운3구역 토지주 200여명은 서울광장에서 '토지주 피 빨아먹는 늦장 행정 오류 행정 내 땅이지 네 땅이냐', '을지면옥 살리려고 모든 토지주를 죽이는가'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집단행동을 벌였습니다.
23일에도 세운3구역 토지주 150여명이 같은 장소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땐 '사방천지에 석면덩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게 정비하라' 등 주거환경이 여의치 않다는 점을 호소하는 내용이 많이 보였습니다. '서울시 전면보류 결사반대', '을지면옥 개발희망! 조선옥도 개발희망한다!' 등의 문구도 눈에 띄었는데요.
서울시가 23일 마련한 관련 입장 발표에서도 가장 많이 나온 질문은 "왜 이제와서?"라는 물음입니다. 시는 23일 을지면옥·을지다방·양미옥·조선옥 등 4개 노포를 보호하고, 연말까지 아직 철거되지 않은 구역에 대한 종합대책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사실상 사업이 중단된 거죠.
이에 대해 서울시는 "도시재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시민들의 인식도 많이 달라졌다. 도시환경정비구역 가운데 일부, 커피 한약방이나 을지로 노가리골목 등은 생활유산으로 지정됐다"면서 "2014년엔 생각지 못했던 변화가 일어나면서 이에 발맞추기 위해 계획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구멍이 발견됐다는 건데요.
늦게라도 잘못을 고쳐가는 건 중요하지만, 그 방향이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도 물음표가 찍힙니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23일 발표에서 "을지면옥, 을지다방, 양미옥 등 토지 소유주가 '재개발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서울시 관계자는 "조선옥도 당장은 반대 입장"이라고 전했습니다.
일견 옛 것을 보존한다는 서울시 방침과 토지주들이 원하는 지점이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4개 점포 토지주들이 처음부터 재개발을 반대한 건 아니거든요. 사업시행사이자 토지 등 소유자 가운데 하나인 한호건설과 나머지 토지 등 소유자끼리 정리되지 않은 토지보상가액 등 숨은 문제가 있어요.
서울시 관계자는 "을지면옥 사장님과 3-2구역 내 다른 토지 소유주들이 시청으로 찾아와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면서 "'재개발을 원하시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는데, '재개발을 원하지만 합리적인 시행사랑 같이 진행하길 원한다'고 하셨다"고 전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영세 토지주들의 사정이에요.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는 을지면옥·양미옥 등 인기 있는 맛집을 갖고 있는 토지주들 외에도, 15평 내외의 땅을 보유하고 있거나 영업자가 아닌 토지주들이 많아요. 이들은 연말에 서울시가 대책을 내놓을 때까지 기다릴 여유가 많지 않아요. 사업지 일대가 지나치게 슬럼화돼 있어 임차인이 들어오려 하지도 않는 데다 공사를 하기도 어렵다고 해요. 사정이 이러니 빚을 안고 있는 경우도 많고요.
서울시가 보호하겠다는 4개 점포 외 철거를 원치 않는 다른 가게들의 향방은 어떻게 될까요? 이들은 단지 생활유산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철거 대상에서 빠지지 못했는데요. 생활유산 지정 기준이 '박원순의 입맛'이냐는 웃픈 얘기까지 도는 요즘입니다.
물론 서울시가 연말까지 기준을 마련해 보존해야 할 곳과 정비해야 할 곳을 확정하겠다곤 했지만, 앞으로 나올 기준마저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건 부정하기 힘듭니다.
오늘 출근하니 한 선배가 저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을지면옥 안 사라지게 돼서 너무 좋아. 사라지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가려고 했었는데 정말 잘됐어."
그래도 박 시장표 도시재생이 미식가들에겐 통하는 걸까요? 정작 냉면 만드는 이들은 행복하지 않다니, 어쩐지 아이러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