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안대국 착수소국(着眼大局 着手小局)'.
큰 국면을 헤아릴 수 있으면 한 수 한 수 제대로 둘 수 있다는 바둑용어다. 전체 판을 헤아려 혁신을 이끌었던 고(故) 이병철 삼성 선대회장의 경영을 재계에서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삼성은 최근 전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도마 위에 오른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제외하고도 검찰, 경찰,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을 통해서 올 한 해만 10건 이상의 조사를 받았다.
국내는 물론 해외 언론에서도 정부의 '삼성 옥죄기'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재계 고위임원은 “‘재계 1위 맏형 삼성’이라는 타이틀은 그냥 나온 것이 아니며 그만큼 국내외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며 “새해에는 불필요한 압박으로 인해 삼성을 위기 상황에서 정체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단일 사건에 '10건 이상 압수수색도'... 경영정상화 '발목'
23일 법조계와 재계 등에 따르면 검찰은 삼성바이오 분식회계 의혹 사건 수사를 위해 전산 자료 압수수색 작업을 조만간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압수물 분석에 착수할 예정이다.
검찰은 지난 13일부터 분식회계 혐의에 직접 연루된 인천 삼성바이오 본사와 삼성바이오에피스(삼성에피스) 등지의 압수수색에 들어가 최근까지 일부 전산 서버 자료의 디지털포렌식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범죄 단서를 찾기 위해 각종 디지털 저장매체에 담긴 데이터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검찰은 옛 미래전략실 등 삼성그룹 수뇌부와 삼성바이오 사이의 공모관계 속에서 회계부정이 저질러졌다는 점을 뒷받침할 단서를 찾는 게 핵심이라고 보고 증거 확보에 총력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검찰의 ‘칼날’은 먼지 한 톨까지 베어내겠다는 듯 무차별적으로 삼성을 겨냥하고 있다. 삼성바이오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삼성물산, 그룹의 총수 등과 관련된 수사를 통해 삼성을 전방위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실제 최근 1년간 정부나 기관들이 삼성과 관련해 검찰에 고발했거나 경찰에 수사 의뢰한 건수는 9건에 달한다.
특히 삼성 노조 와해 수사의 경우 단일 사건에 대해 10번이 넘는 압수수색으로 특수수사 역사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정작 법원은 지난 19일 에버랜드 노동조합 와해 혐의를 받고 있는 강경훈 삼성전자 부사장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범죄혐의 중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위반의 상당부분에 관해 범죄 성립 및 피의자의 가담 여부 등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한 결과다.
◆"끼워 맞추기식 수사 우려...경영 전념케 해야"
일각에선 검찰이 삼성과 관련된 사건에 대해 이미 결론을 정해놓고 끼워 맞춰가듯이 조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삼성바이오 논란을 보는 학계의 시각은 제각각이다. 그만큼 논쟁의 여지가 크다는 의미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IFRS의 모호성이 이번 사태를 가져왔다”며 “이에 대한 개선이 있어야지, 일부 기업을 타깃으로 당국의 잘못을 덮으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행태”라고 꼬집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새해 우리 경제에 대한 각종 지표가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며 “기업들이 경영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만 위기 속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증권선물위원회는 삼성바이오가 자회사 삼성에피스를 설립하면서 해외 합작투자자와의 핵심 계약사항(콜옵션 약정)을 제때 공시하지 않은 점, 상장을 앞두고 2015년 회계처리 방식을 갑자기 바꿔 4조5000억원에 달하는 회계상 이익을 거두게 한 점에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삼성바이오 및 회계법인을 검찰에 고발했다.
반면 삼성바이오 측은 2015년 삼성에피스가 제품개발과 판로개척에 성과를 내면서 기업가치에 중대한 변동이 생겨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K-IFRS)에 맞게 회계처리 방식을 적법하게 바꿨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삼성에 대해 기소 중인 다른 사건들도 같은 방식의 무리한 수사가 계속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크다.
이럴 경우 가뜩이나 어려운 한국 경제는 새해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재계 관계자는 “미전실 폐쇄, 지주사전환 포기, 자사주 매각 등을 통해 삼성은 충분히 스스로 변할 수 있다는 의지를 표현했다”며 “불필요한 논란으로 인해 삼성의 변화가 향후 외부로부터 시작된다면 이는 우리 경제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