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함성이란 기름에 지배자가 불을 댕기는 것.’ 마녀사냥의 본질이다.
오를레앙 성녀 잔다르크는 화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백년전쟁에서 프랑스에 패한 영국왕 에드워드3세는 잔다르크를 재판에 세웠다. 교회는 그에게 마녀란 낙인을 찍었다. 남장을 했다는 게 죄목이었다. 성난 군중은 화염을 보며 자위했다.
승전한 샤를7세는 프랑스를 구한 영웅의 비극을 방관했다. 신탁을 받은 잔다르크는 자신에게 위협이었다. 에드워드3세와 거래를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영국에서 불어오는 검은 연기에 안도했다.
질문. 잔다르크를 죽인 건 에드워드3세인가, 샤를7세인가. 성난 국민인가.
18세기 르네상스 이후 이성이 신앙을, 법원이 교회를 대체했다. 돌을 달아 물에 던지고 떠오르면 마녀란 식의 재판은 자취를 감췄다. 성난 군중이란 기름은 때때로 우리 주위를 맴돌고 횟불을 든 지배자 또한 여전히 존재한다.
KT가 17만 자영업자에게 ‘위로금’을 지급키로 했다. 아현지국 화재피해에 대한 책임 차원이다. 지난 12일부터 26일까지 피해사례를 접수받아 지급대상과 액수를 결정한다.
위로금이란 표현에 시민단체와 자영업자들은 강한 거부감을 표했다. 보상이나 배상이란 용어를 쓰지 않음으로써 교묘히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것이다.
따져보면 당연한 처사다. 보상과 배상은 법적인 개념이다. 합법적인 영업활동으로 인한 손실에 대해서는 보상을,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에 대해서는 배상을 한다. 아현지국 화재 원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보상이나 배상이란 용어는 쓸 수 없는 것이다.
원인 규명 전 배상금을 지급한다면 명백한 배임이다. 주주이익을 그만큼 훼손하는 것이다. KT 정관상 10억원 이상의 출연이나 기부는 이사회 승인 을 받게 돼 있다.
구태언 테크앤로 변호사는 “원인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회삿돈을 마음대로 지급한다면 배임의 소지가 있다”고 했다. 물론 위로금을 지급하는 게 기업 이미지를 개선하고, 가입자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주주에게 더 많은 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이 인과관계가 불명확한 판단을 하기는 어렵다.
KT는 책임 소재가 명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왜 위로금 지급 절차에 착수했을까.
17만 자영업자는 분노했다. 화재로 인해 분명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데 동네에 불까지 나고 카드 결제가 안 되는 것이다. 배고픔은 분노가 되고, 개별은 집단이 됐다.
지배자는 위협을 느꼈다.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화재 직후 황창규 KT회장 등 이동통신 3사 최고경영자(CEO)들을 긴급히 불러 모았다. 세 명의 CEO를 배경으로 분명한 책임을 묻겠다고 호통을 쳤다. 성난 국민 앞에서 KT는 재판도 없이 마녀가 됐다.
황창규 회장은 샤를7세처럼 방관했다. 일단 명백히 원인을 규명하고 그에 따른 책임을 지겠다고 했어야 했다.
집단이성과 사법 시스템이 성숙한 나라에선 마녀사냥이 어렵다. 화웨이가 보안을 문제 삼는 트럼프 정부에게 법적 대응을 선포했다. 그러면서 중국 법무법인이 아니라 미국 법무법인을 선택했다. 미국 정부의 마녀사냥을 미국 사법 시스템으로 막겠다는 건 아이러니다. 미국의 사법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독립적이라 판단한 것이다.
기업이 현대판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는 건 지배구조와 관련이 깊다. 기업 입장에선 투명성, CEO 개인 입장에선 도덕성이다. 국민연금이 1대주주인 KT는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않다. △박근혜 전대통령 독대를 통해 SK텔레콤의 CJ헬로 합병을 무력화했다는 의혹 △정치자금법 위반혐의 △청와대 수사관 골프접대 로비 연루 의혹 등 황창규 회장을 둘러싼 구설이 잇따른다.
다시 질문. 잔다르크를 죽인 건 에드워드3세인가, 샤를7세인가. 성난 민심인가. 샤를7세가 은인 잔다르크를 마녀로 만들면서까지 지키려했던 건 과연 무엇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