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이 지난 20일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2조2500억원의 대규모 투자금을 수혈하며 새로운 비전을 선포했다. 넉넉한 주머니 사정 덕에 운신의 폭이 넓어진 쿠팡을 보면서 유통 업계는 '바짝' 긴장하는 모양새다.
업계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투자를 받은 쿠팡의 이력은 전자상거래(이커머스) 시장에서의 혈전을 예고한다. 기존 위메프·티몬과의 이커머스 경쟁에서 벗어나 오픈마켓(G마켓·11번가), 인터넷 플랫폼 기업(네이버·카카오), 대형 유통기업(신세계·롯데), 쇼핑 전문몰(스타일난다·난닝구닷컴)까지 쟁쟁한 강자들과 물러설 수 없는 건곤일척의 한 판 승부를 앞두고 있다. 특히 롯데와 신세계 등 '유통 공룡' 들이 이커머스 시장 장악을 목표로 수조원의 자금을 쏟아 붓는 상황이다. 상대방이 죽어야 사는 '치킨게임(제 살 깎기식 출혈 경쟁)'이 본격화한 것이다.
이커머스 업계 1위인 쿠팡은 작금의 현실에서 선두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까.
다른 경쟁사보다 빠른 배송이 가능한 이유는 탄탄한 물류 인프라 때문이다. 쿠팡은 올해 인천 덕평 등 메가 물류센터를 포함해 전국 60여 곳의 물류 네트워크를 완성했다. 이는 축구장 151개 면적에 달하는 규모다. 쿠팡은 적자폭을 늘려가면서 물류 인프라 구축에 매진해왔다. 이 부분 투자가 막바지에 다다르며 적자폭이 줄어 들면서 수익구조 개선에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그러나 쿠팡이 내세운 물류 인프라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쿠팡의 물류 인프라가 만성적인 고비용 구조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미국의 아마존과 중국의 징동닷컴은 물류 인프라 덕에 성공한 기업이다.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여서 물류 인프라가 경쟁력으로 작용했다. 반면, 상대적으로 비좁은 우리나라는 물류 사정이 낫다. 이는 다른 업체들도 로켓 배송 못지 않은 유통의 혁신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쿠팡은 내년 물류 인프라를 두배 이상 확대한다고 한다.
쿠팡 관계자는 "쿠팡 성장의 배경에는 물류가 뒷받침 하고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비용은 부정적 요인이 아니다"며 "전국 60여 곳의 물류 네트워크는 시작 단계일 뿐"이라고 우려를 일축했다. 로켓배송의 핵심은 직매입 방식의 소매이기 때문에 물류 인프라가 필수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과감한 실험 정신이다.
쿠팡 강점이 빠른 배송이라면, 이를 선호하는 소비자를 확보할 수 있다. 하지만 가격을 따라 이동하는 소비자 속성은 무시할 수 없다. 이커머스는 유통구조 최소화로 오프라인 채널보다 원하는 물건을 싸게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롯데마트나 이마트 등 후발주자는 극단적인 저가격 정책을 무기로 내세울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할인폭이 줄어든 만큼 이탈하는 소비자가 늘어나는 이커머스의 특성을 고려한 가격 전략이 쿠팡에는 없다고 한다. 가격 경쟁으로 성장한 회사가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쿠팡 관계자는 "기술 개발과 물류 인프라 확대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라며 "쿠팡이 온라인 쇼핑이라는 비즈니스를 넘어 소비자 중심의 인터넷 플랫폼 기업으로 한 단계 더 올라서겠다"고 말한다.
애둘러 표현하는 쿠팡만의 새로운 시도가 무엇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어떠한 비욘드 플랫폼을 만들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커머스 시장은 갈수록 커진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이마케터에 따르면 세계 전자상거래 규모(소매 기준)는 지난 2016년 기준 2200조원에 달했다. 이후 매년 20% 이상 성장해 오는 2020년이면 두 배 가까운 4000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쿠팡을 보면 '내수의, 내수에 의한, 내수를 위한' 경영 활동에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올해 국내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기껏해야 100조원이다. 국내에서 출혈 경쟁에만 목매지 말고, 광활한 해외 시장을 무대로 뛰어야 한다. 쿠팡이 새로 장착한 실탄이 한국 시장선점을 위한 '전쟁 비용'으로만 지출될 것이 아니라 글로벌 진출의 초석을 다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