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조선·해운 벨트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지역경제, 고용 등 각종 지표는 곤두박질치며 한국경제의 암울한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는 2016년부터 해운·조선업 회생방안을 내놓으며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지만, 3년이 지나도록 지역경제는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지역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리며 위태로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정부는 제조업 비중을 줄이고 4차 산업혁명을 중심으로 한 혁신성장에 집중하고 있다. 해운·조선업이 혁신성장의 범주에 들어갈지 불투명한 시점에서, 국가산업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는 이유다.
해운·조선업은 일반 제조업과 다르다. 국가전략산업으로 분류되는 만큼 정부가 주도적으로 살려야 하는 업종이다. 그러나 정부 정책은 헛바퀴 돌 듯 제자리걸음이다. 2016년부터 관련 업종 경쟁력 강화방안을 내놓으며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세계경제 불황으로 조선업이 부진하던 2016년 당시 울산, 거제 등 조선 밀집지역은 1년 새 6만명이 넘는 실업자가 발생했다. 이 같은 현상은 올해도 다르지 않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조선·중공업 분야 7개사의 인력은 지난해 6월 말 5만3703명에서 올해 6월 말 5만549명으로 3154명 줄어들었다. 삼성중공업은 1년 새 1133명, 현대중공업은 1075명 등으로 1000명 이상씩 감소했다.
대우조선해양(382명), 현대미포조선(111명), 현대삼호중공업(106명) 등도 인력 감축에 나섰다. 이로 인해 30대 그룹별 고용 인원 현황에서 현대중공업이 증감률 -4.1%로 최하위를, 대우조선해양이 -3.7%로 끝에서 다섯째를 기록했다.
지역경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조선산업 불황으로 최근 3년 새 울산지역 국가산업단지 고용자 수는 10% 가까이 줄어들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전국산단 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울산지역 2개 국가산단(미포, 온산) 고용자 수는 11만277명으로 지난해 동기 11만6002명보다 5%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2015년 1분기 12만2058명, 2016년 1분기 12만469명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최근 3년 새 10% 가까운 1만1781명이나 줄어든 것이다.
이는 조선업 불황으로 미포와 온산 국가산단 내 조선업 고용자 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공단의 분석이다.
공단 관계자는 “현대중공업 해양공장이 이달 말 폐쇄되는 등 조선 불황의 여파가 이어지고 있어 고용자 수 감소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거제시 역시 조선경기 추락으로 시작된 경제불황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달 29일 공개한 ‘시·군별 주요고용지표 집계 결과’를 보면 올해 상반기(4월 기준) 거제시 실업률은 1년 전보다 4.1% 포인트 상승한 7.0%였다.
지난 2013년 시·군 실업률 통계를 작성한 후, 지역 실업률이 7%대에 달한 것은 거제시가 처음이다. 2개 대형 조선소들의 수주 급감으로 2015년 이후 각종 지표가 추락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25만4073명으로 전년보다 3110명이 줄어 26년 만에 처음으로 인구 감소가 나타났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7월 기준 인구가 25만1577명으로 더 떨어졌다.
지자체와 업계에서는 이미 썰물처럼 빠져나간 일자리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가 추진하는 조선업 구조조정도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김태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해운정책연구실장은 “해운산업은 조선산업과 상관관계가 높아 상생공조를 위한 협력사업이다. 긍정적인 산업 파급효과가 다양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라며 “해운·조선산업의 선순환적 지속성장을 위해서는 해운산업을 국가 경제발전을 위한 기간산업으로 인식하고, 종합적인 산업정책 측면에서 정책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진단했다.
이어 “향후 스마트해운 등장, 환경 및 안전기준 강화에 따른 국제 해운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체계적인 계획과 전략이 요구된다”며 “선박·화물·터미널 및 인적 자원 등에 관한 계획과 종합적인 경영안정 지원정책으로 실효성 있는 해운·조선산업 성장과 일자리 창출 등이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