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룐카, 마트료시카, 샤슬릭, 보르쉬, 펙토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생소한 단어였지만, 중국 하얼빈으로 여행을 다녀온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얼빈 하면 '안중근 의사'를 떠올리지만 사실 하얼빈은 ‘동방의 모스크바’로 더 유명하다. 하얼빈 시내 곳곳엔 유난히 러시아풍 건물들이 눈에 띈다.
하얼빈에서 기자가 찾은 100년 가까운 전통을 가진 노포(老鋪) '라오추자(老厨家)'의 간판음식 궈바오러우(鍋包肉)도 사실은 과거 새콤달콤한 맛을 즐기는 외국인, 특히 러시아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 개발해낸 요리다. 라오추자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즐겨 찾는 중국식 탕수육, 궈바오러우를 처음 만든 원조집이다.
우리나라에서 칭다오맥주 못지않게 유명한 하얼빈맥주. 맑고 순한 맛의 하얼빈맥주도 사실은 러시아 맥주에서 유래했다. 시내에서 30㎞ 넘게 떨어진 하얼빈맥주 박물관에는 과거 칭다오맥주보다 4년 앞선 1900년 러시아 상인이 하얼빈에 처음 맥주공장을 세운 게 하얼빈맥주의 시작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로 하얼빈 근대 역사를 돌아보면 러시아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제국 러시아는 만주 지배를 위한 거점도시였던 하얼빈을 중심으로 2000㎞가 넘는 철도를 깔았고, 러시아인을 비롯해 유럽인들은 하얼빈으로 몰려왔다. 1900년대 하얼빈은 사실상 러시아가 지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하얼빈의 인구 절반이 러시아 사람이었을 정도니.
사실 기자가 러시아 문물을 접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러시아는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깝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로 두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곳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이다. 태평양 건너 열 몇 시간 비행기 타고 가는 미국보다 훨씬 더 가깝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미국은 잘 알면서 러시아는 너무 모르고 있지 않은가.
그나마 최근 '신(新)북방정책'을 통해 러시아와 협력을 강화하려고 노력하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라도 러시아와의 관계 강화는 필수다. 이낙연 총리는 오는 10일 러시아 동방경제포럼에도 참석한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와 협력 교류가 활성화되길 기대한다.
참고로, 러시아에서 ‘Pectopah’라는 단어는 영어식으로 ‘펙토파’라고 읽으면 안 된다. 러시아 키릴문자로 ‘레스토란’이라고 읽는다. 레스토랑이라는 뜻이다. 러시아어는 알파벳 ‘P’를 ‘R’로 발음한다는 것, 이번에 처음 알게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