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기억을 잊기 어렵다. 임시로 조성된 실내놀이터 입구에 휠체어를 탄 딸과 도착하자 안내스태프가 우리를 발견하고 휠체어 경사로로 즉시 안내해줬다. 작은 하얀 공들이 잔뜩 든 볼풀에 도착해서 내가 물었다. “혹시 저 안까지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나요?” “물론이죠. 휠체어 경사로가 볼풀 안까지 들어가요. 안내해 드릴게요.”
한국에서는 휠체어 경사로가 있는 볼풀은 본 적이 없었다. 우리나라 놀이동산에 가면 장애인 보호자가 먼저 직원에게 반드시 “들어갈 수 있나요?”라고 물어봐야 한다. 물어보면 즉답을 하는 직원 비율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만큼 장애인을 다뤄본 경험이 없다는 뜻이다. 교육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일본, 홍콩, 호주의 놀이공원에서는 휠체어를 타고 놀이기구 앞에서 문의하면 10명 직원 중 8명가량이 능숙하게 응대해준다. 그만큼 장애인 손님을 다뤄본 경험이 많다는 거다.
이렇게 아예 분리하고 운영하는 방법도 있지만, 일전에 호주에서의 경험처럼 아예 비장애인이 즐기는 해수욕장에 휠체어 매트를 깔았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의 많은 장애인 정책은 ‘분리’를 기본으로 한다. 한국에서는 장애인이 일반택시를 타는 걸 본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특별교통수단’인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물리적으로 분리해 놓을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장애인 주차구역이 그렇다. 휠체어를 차에 싣고 내릴 때, 휠체어에서 차로 옮겨 탈 때 그냥 보통 주차구역은 너무 좁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이유가 있는 때를 제외하고는 굳이 분리된 공간을 만들 필요가 없다.
미국의 화장실을 보자. 어떤 곳은 장애인화장실이 따로 없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일반화장실이 한국 장애인화장실보다 커서 휠체어 접근이 가능하다. 물론 대륙 규모가 워낙 큰 터라 화장실도 크게 만들었을 법하지만 미국의 장애인법이 매우 엄격한 것도 한 이유다.
사실 가장 악명 높은 분리정책은 미국의 인종분리(segregation) 정책이다. 버스에서조차 흑인·백인이 분리된 칸을 마련했었다. 백인 칸에 앉았다가 조롱 받은 흑인소녀 로자 파크스가 미국 흑인 인권운동의 도화선이 된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처럼 물리적 분리는 차별에 기반하고 차별을 조장한다.
현재 미국 화장실의 장애인 칸은 장애인뿐 아니라 아기 기저귀를 가는 부모도 이용할 수 있다. 굳이 장애인과 부모들이 제한된 공간을 두고 싸울 이유가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휠체어 사용자가 모욕을 당하고 노약자석에 앉은 임신부들이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이유는 뻔하다. 애초부터 장애인·임산부·노약자를 ‘분리’해서 공간을 구성하니 좁아서 싸움이 난다.
분리는 누구든 경험하고 싶지 않다. 지하철 휠체어 리프트를 장애인들이 타기 싫어하는 이유다. 위험한 건 둘째치고, 일반인과 ‘분리’되는 장치들이 참담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좌절감을 경험하면 밖에 나가기가 싫어진다.
분리 정책으로 물리적 인프라를 구축하면 그 시설의 숫자도 적다. 그러니 일반인들이 장애인과 함께하는 경험이 줄어든다. 이런 결과로 한국의 길거리에는 휠체어 이용자가 외국에 비해 적은 것이다.
어떻게 더 많은 휠체어가 거리를 활보할 수 있을까.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전용좌석··· 이런 말부터 없애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장애인콜택시 외에도 일반택시 회사가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택시를 구비하도록 유도 또는 강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협동조합 무의를 통해 지하철 휠체어 환승지도를 만들면서도 항상 이런 ‘전용지도’가 필요 없는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지도를 만들 때 비장애인, 어르신들과 함께 굳이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을 이용한다. 다녀온 분들은 ‘휠체어를 몇 분만 몰았는데도 팔이 아프다’고 공감을 표한다.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변화의 속도는 빨라진다.
부디 많은 장애인들이 용기를 내서 더 자주 밖에 나왔으면 좋겠다. 휠체어는 이동방식 가운데 하나일 뿐, 분리정책을 정당화할 이유가 없음을 세상에 보여 줘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