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미국 미주리대로 연수를 갔던 2007년 초 얘기다. 살던 집 전세를 알선했던 중개업소에서 좋은 가격에 집을 파는 게 어떠냐고 연락이 왔다. 그렇지 않아도 서울 집값이 꼭짓점에 왔다고 생각했던 터라 집을 팔려고 아내와 상의를 했다. 마지막 결정을 하기 전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부동산전문가 K씨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의 조언은 솔깃했다. MB가 대통령이 된다면 최소한 집값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집을 팔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때를 고점으로 집값은 하락세로 돌아섰다. K씨의 예상대로 그해 하반기 MB가 한나라당 후보 경선과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해 2008년 2월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집값은 오르기는커녕 글로벌 금융위기까지 겹쳐 더 가파른 속도로 하락했다.
그런데 정부가 집값을 잡으려고 초강력 부동산대책을 내놓는데도 서울 집값, 특히 강남 아파트 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다는 점이 당시와 너무 흡사하다.
문재인 정부도 2017년 8월 강력한 집값 안정 의지를 밝히며 '8·2대책‘을 내놓았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주택대출 규제 등 강력한 대책들이 그야말로 12년 전의 데자뷔다. 그리고 대책이 나온 지 1년이 지났지만 강남 집값은 잡히지 않고 있다. 8·2대책의 후속조치로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제가 부활되고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도 대폭 강화됐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조치가 나오고 보유세 강화가 예고되자 올 상반기 다주택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서면서 상승세가 한때 주춤하기도 했다.
하지만 강남 집값이 최근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여의도와 용산지역은 대형 개발호재로 술렁이는 등 서울 집값이 어디까지 오를까 궁금하게 만들 정도다. 정부 대책의 약발이 지방에만 먹혔는지 지방은 분양시장도 싸늘하게 식었고 집값도 약세를 보이고 있다.
혹자는 노무현 정부 때처럼 부동산 대책만으로 집값이 잡히지 않을 것이라고 점친다. 종합부동산세로 집부자에게 무거운 세금을 매기고 후퇴할 수 없게 대못까지 박는 초강력 정책까지 내놓았지만 치솟는 집값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노무현 정부 때의 재현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노무현 정부 때는 정부 정책이 잘못돼 집값을 못 잡은 게 아니라 그야말로 돈의 힘이 집값을 끌어올렸다. 글로벌 시장에서 풀린 자금이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집값을 끌어올린 것이다. 지금도 저금리시대가 계속되고 있기는 하지만 한국은행이 금리인상 신호를 보내는 등 금리상승에 따른 대출이자 부담이 걱정스러워지고 있다. 빚 내서 집 사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8·31대책이 나왔던 2005년에는 돈의 힘이 규제의 약발을 무색하게 만들었지만 지금은 저금리의 효과와 금리상승 부담감이 공존하고 있는 상황이란 점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정부는 집값이 잡히지 않자 후속대책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미 많은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그리고 부동산대책이 약효를 나타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8·31대책도 약발이 바로 나타난 게 아니다. 1년 반 이상 시간이 지난 후 집값이 하락했다. 오히려 금융위기와 겹치면서 하락속도가 빨라져 규제완화 정책까지 나오게 만들었다. 1년 전 나온 ‘8·2대책’도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와 보유세 강화 등 후속조치가 이어지면서 효과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집값이 대세하락기로 접어들 수 있다고 예측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뭐든지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이다. 지금 당장 낫지 않는다고 독한 약을 처방하면 결국 몸을 망친다. 집값이 다시 들썩인다고 금방 추가대책을 내놓을 게 아니라 이미 발표한 대책의 효과와 문제점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뭐가 더 필요한지 우리 경제와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