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일방적으로 탈퇴를 선언하고 ‘역대 최강’의 제재 복원을 천명했다. 본격적인 제재가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이미 이란 경제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의 이란 핵합의 탈퇴 후 이란 제조업체에서 수출업체, 소매점까지 수입을 통한 물품 조달에 어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해외 기업들은 이란과 거래를 축소하고 있고, 수출입 결제를 담당하던 대형 은행들도 향후 제재를 우려해 몸을 사리고 있다.
결국 기업들은 높아진 비용에 생산을 줄이거나 수입 계약을 파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전력 인프라 부품을 생산하는 게오르긱 다니알리는 WSJ에 “상황이 심각하다”면서 재료비 부담으로 인해 올해 생산량을 15~20% 줄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원단 공장을 운영하는 바히드 호세인자데 역시 같은 이유로 이달 생산량을 3분의1로 감축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 예고만으로 이란 경제는 충격을 받고 있다. 신용평가사 피치 산하 연구소인 BMI리서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핵협상 탈퇴 선언 후 이란 경제 성장률을 종전 4.3%에서 1.8%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내년에는 경제가 4.3% 위축될 것으로 예상했다. 정부에 대한 불만도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달 말에는 수도 테헤란의 대형 전통시장 그랜드바자르에서 수천명의 상인들이 거리로 나와 정부에 대책을 마련하라는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에 참여한 한 상인은 “팔 물건이 없다. 공급업체에 다른 가게 말고 우리 가게에 물건을 대라고 뇌물을 바쳐야 한다”면서 “3개월 뒤에나 오지 않는 이상 물건은 계속 없을 것”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미국은 대이란 제재에 강경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독일·프랑스·영국·중국·러시아)은 핵합의를 유지한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이란의 경제적 고립을 위해 이란과 거래하는 기업에 제재를 가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적용 방침을 밝혔다. 또한 이란의 최대 자금줄인 원유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동맹국들에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을 요구했다. 최근엔 제한적인 제재 면제 가능성을 밝히기도 했으나 종국엔 이란산 원유 수입이 ‘제로(0)’가 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금·귀금속·자동차 등의 거래는 8월 6일부터 금지되고, 11월 4일부터는 이란 석유 수입 및 이란 중앙은행과의 거래도 금지된다.
다국적 기업들은 이란 사업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프랑스 자동차 제조업체 PSA는 이란 시장에서 철수를 결정했고, 프랑스 유전개발업체 토털SA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이란 유전개발 프로젝트에서 발을 빼기로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보도했다.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19일 니혼게이자이는 일본이 이란산 원유 수입 중단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원유 결제를 담당하는 대형은행인 미쓰비시 은행은 자국 정유회사들에 이란 자금 결제를 여름 내에 순차적으로 중단한다고 통보했고, 미즈호은행도 뒤따를 가능성이 있다. 유조선으로 원유를 일본에 들여오는 일본 해운회사들도 정유회사들에 오는 9월까지만 이란산 원유를 운반하겠다고 통보했다. 일본은 이란산 원유를 사우디아라비아나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대체할 예정이다.
이란은 미국 제재 후에도 핵합의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 한편 협상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핵개발을 재개하겠다며 강수로 맞서고 있다. 이란은 최근 제재 후 유럽과 이란 중앙은행과의 금융 채널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했고, 중국 기업에 이란산 원유 수입을 계속하도록 설득하고 있다. 동시에 이란은 18일 미국의 제재로 인해 핵합의 유지 협상이 실패할 경우 우라늄을 더 높은 농도로 농축하겠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