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로 대(對)이란 경제 제재 부활을 예고했던 미국 정부가 동맹국에 이란산 원유 수입 제한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원유 수출국인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본격화하는 것으로, 시장 공급 불균형이 심화되면 국제유가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란산 원유 수입 시 제재 가능"··· 美 이란 경제 제재 본격화
과거 버락 오바마 전임 정부에서도 각국에 이란산 원유 수입량을 약 20% 감축해 달라는 요청을 한 적은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그 수준을 상회하는, 사실상 제로 수준의 수입 제한을 통보한 만큼 미국이 이란 제재에 본격적으로 나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이란의 주요 수입원인 원유 수출을 차단해 자금 유입 기회를 원천 봉쇄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그동안 이란이 원유 수출을 통한 자금으로 핵 개발과 테러 조직 지원 등에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핵협정 탈퇴를 공식화하면서, 2015년 7월 이후 3년여 만에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부활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그간 제재 예외 대상이었던 여객기 공급 등에 대해서는 오는 8월 6일부터, 석유 수출 등 나머지 부분에 대한 제재는 11월 5일께 제재가 단행될 예정이다.
미국 정부가 제재 카드를 꺼냄에 따라 유럽연합(EU), 중국, 인도, 터키 등 사실상 모든 이란산 원유 수입국들은 대책 마련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자동차세 관세 부과를 두고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EU의 경우 고민이 더욱 깊다. 미국의 권고에 따라 이란산 원유 조달을 중단할 경우 이란의 반발로 이란 핵협정 자체가 무효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이란산 원유를 계속 수입할 경우 미국의 제재를 피할 수 없어 제2의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OPEC 등에 요청해 시장 충격 줄일 것"··· 효과는 '글쎄'
미국 정부는 이란산 원유가 주요 수출 시장에서 제외될 경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대비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대표단을 주요 중동 산유국에 파견해 산유량 증산을 요청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한 카드로 거론된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등 일부 산유국들이 증산 요청에 적극적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고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들은 보고 있다.
특히 앞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등 주요 산유국들이 이미 하루 100만 배럴 증산에 합의한 만큼 미국의 추가 증산 요구를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AFP통신 등에 따르면 OPEC의 14개 회원국과 러시아, 멕시코 등 비회원 산유국들은 지난 2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산유량 증산에 합의했다. 유가 하락을 막기 위해 그간 산유량 감산에 돌입했던 OPEC 회원국들이 감산폭을 줄이고 증산으로 돌아선 만큼 이란에 대한 원유 금수 조치로 인한 충격이 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란의 하루 원유 생산량이 380만 배럴에 달하는 만큼 OPEC의 증산 합의가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이란은 세계 5위 산유국이자 OPEC 내에서도 3위 원유 수출국이다. CNN머니는 "이란은 2016년 초 서방 국가의 경제 제재 해제 이후 하루 1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해왔다"며 "이란의 원유 공급이 어려워진다면 국제유가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미국 정부의 이란 제재 입장이 나온 이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한 달여 만에 최고 수준을 보였다.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26일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8월 인도분 WTI 가격은 전날보다 배럴당 2.45달러(3.6%) 상승한 70.53달러에 마감했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8월물 브렌트유도 2% 이상 급등해 배럴당 80달러 돌파를 목전에 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