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 그대로다. 데뷔 9년 차 아이돌 그룹 인피니트의 엘에 비한다면 배우 김명수(26)의 커리어는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김명수는 꼼수를 부리거나 엘에게 기대지 않고 꾸준하고 성실하게 배우로서의 길을 닦아왔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17일 종영한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극본 문유석·연출 곽정환)는 배우 김명수에 대한 신뢰감을 쌓을 수 있도록 만든 작품이다. 드라마 ‘닥치고 꽃미남밴드’(2012)를 시작으로 ‘주군의 태양’(2013), ‘앙큼한 돌싱녀’(2014),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2015), ‘군주’(2017)에 이르기까지.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차근차근 커리어를 쌓아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미스 함무라비’는 이상주의 열혈 초임 판사 박차오름(고아라 분), 섣부른 선의보다 원리원칙이 최우선인 초엘리트 판사 임바른(김명수 분), 세상의 무게를 아는 현실주의 부장 판사 한세상(성동일 분) 등 달라도 너무 다른 세 명의 재판부가 펼치는 법정 드라마다. 김명수는 엘리트 판사 임바른 역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얻으며 배우로서 한 뼘 더 성장했다.
“아직, 부족해요. 우리 드라마가 90% 사전제작인데도 모니터링을 해보니 단점만 보이더라고요. (단점에 대한) 피드백을 받아서 빨리 고치고 달리 연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주변에서 칭찬을 많이 해주셔서 기뻤지만 아쉬운 마음도 그만큼 있어요. 다음 작품을 만나면 더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최근 아주경제는 드라마 종영 전, 배우 김명수를 만나 드라마 및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 원작소설과 시나리오를 읽고 ‘임바른을 잘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기하게도 작가님, 감독님도 저에게서 임바른을 보셨대요. 캐스팅 후에는 저의 성격, 성향을 임바른에 투영하기도 하셨더라고요.”
높은 싱크로율 덕이었을까? 시청자들은 김명수가 그린 임바른에 대한 뜨거운 반응을 보내왔다. 차오름과 세상, 보왕(류덕환 분) 등 타인과 만나며 성장하는 모습 또한 충분히 공감 가능한 것이었다.
“촬영하면서 배울 게 정말 많았어요. 문유석 작가님, 곽정환 PD님을 비롯해 성동일 선생님, (류)덕환이 형 등등 많은 분에게 도움을 받았어요. 처음에는 작가님이 쓴 임바른에 맞추려고 대사도 토씨 하나 안 틀리고 달달 외웠는데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임바른의 말투나 행동들이 친숙해졌어요. 특히 덕환이 형과는 편하게 지낼 수 있어서 상대에게 맞는 연기를 하려고 했었죠. 애드리브도 많이 했고요. 하하하.”
언제나 정석적인 연기를 추구했던 김명수는 ‘미스 함무라비’를 통해 작품과 캐릭터를 유연하게 대할 수 있게 됐다.
“‘미스 함무라비’는 제 첫 주연작이기도 해요. 이전에는 애드리브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그런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좋은 상대들을 만났고 편해졌고 자연스럽게 애드리브도 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아요.”
동료 배우들에 대한 김명수의 애정은 남달랐다. 유독 고아라, 성동일과 많은 장면을 함께 했던 그는 “베테랑 배우들 덕에 임바른의 감정과 캐릭터가 더 좋아질 수 있었다”며, 공을 돌리기도 했다.
“특히 (고)아라 누나 같은 경우는 저의 멜로 파트너기도 하잖아요? 뭘 더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알고 계셨고, 많은 소통을 나눠서 감정을 끌어올려 주기도 했었어요.”
“언제나 배우는 차세로 차근차근 쌓아나갈 것”이라는 김명수는 우려를 기대로 바꾸는 힘을 가지게 됐다.
“이전 작품들은 그만큼 제가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해요. 인피니티 앨범 활동과 연기를 병행하기도 했었고…. 가수로서도, 연기자로서도 집중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에요. 과정은 그대로 결과로 이어지는 것 같아요. 소화를 못 하니 결과도 안 나오고 욕을 먹는 건 당연하죠. 그건 그대로 아이돌 출신에 대한 선입견으로 이어지기도 했고요. 아직까지도 (아이돌 출신 연기자에 대한) 선입견이 있고, 그건 제가 연기로서 대중들의 시각을 바꾸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인터넷 포털 기사며 댓글들을 찾아 읽는다는 김명수는 “데뷔 초보다는 훨씬 그릇이 커졌다”며 꽤나 어른스러운 표정을 짓기도 했다.
“데뷔초에는 악플에 대한 타격감이 엄청 컸어요. ‘현타’(현구 충족 이후에 밀려오는 무념무상의 시간이라는 뜻의 신조어. 현실자각타임의 준말)라고 할까요? 그런 걸 자주 느꼈는데 이젠 저도 데뷔 9년 차고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해서 그런지 비난과 비판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어요. 제게 도움이 되는 비판들이 분명 있고, 그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이 제게 있는 것 같아요.”
인피니트 엘이 쌓아온 9년이라는 시간은 곧 김명수가 맞게 될 새로운 시간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기도 했다. “앞으로의 10년을 어떻게 내다 보느냐”고 묻자, 그는 단박에 “엘과 김명수의 수준을 맞춰놓겠다”고 자신 있게 답했다.
“김명수로서 엘을 이기고 싶어요. 어딜 가도, 사람들은 제게 ‘인피니트 엘’이라고 해요. 배우 활동을 하면서 (엘이라고 불리는 것만큼) 김명수라고 불리고 싶어요. 가수도, 배우도 포기할 수 없어요. 엘이 쌓아온 것만큼, 김명수로서도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