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개봉한 영화 ‘마녀’는 의문의 사고로 시설에서 수많은 이들이 죽고, 그곳에서 홀로 탈출한 뒤 모든 기억을 잃게 된 고등학생 자윤(김다미 분) 앞에 의문의 인물들이 나타나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렸다. 영화의 단단한 뼈대는 기성품처럼 보이나 군데군데서 느껴지는 낯섦은 ‘마녀’만의 새로운 장르로 읽히게 한다. 익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이 기묘한 영화는 그렇게 관객들의 의심을 비집는 데 성공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를 가진 박훈정 감독의 일문일답이다
- 우리의 의도가 그랬다. 일본 애니메이션을 실사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를 바랐다. 캐릭터도 액션도 만화적 설정인 거다. 만화, 판타지, SF판타지 등 아무래도 느낌상 일본 애니메이션 느낌이 물씬 풍기지 않을까 생각한다.
레퍼런스가 된 작품들이 있을까?
- 이미지적인 건 없다. 수많은 애니메이션의 세계관이나 동선 등 공식들을 가져다 쓴 거다. 특정 작품이나 한두 작품이 레퍼런스가 아니었다. 그냥 이런 종류라고 정의하는 거다.
‘마녀’는 시리즈물의 1편 같다는 느낌이 강했다
- 본래 시리즈로 기획된 거고 캐릭터의 전사 느낌으로 만든 거니까. 제작사인 워너브러더스와도 ‘이건 자윤의 비긴즈니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만 1편을 쓸 것’이라고 했다. 본편의 전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영화가 여성 누아르·여성 중심 서사 등으로 많은 홍보가 되더라. 자윤이나 닥터 백이 중심인물이기는 하나 ‘여성’인 건 중요치 않다는 느낌인데
- 여성과 남성의 문제라고 생각지 않고 이 인물에 집중하고자 했다. 박희순 배우가 기자간담회 당시 ‘걸크러시’라고 말했는데, 저는 걸크러시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 이야기에 적합했던 게 여고생 캐릭터였던 거다. 자윤이 여성스러운 특징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니까.
‘브이아이피’ 당시 여혐 논란에 시달렸었다. 그것이 ‘마녀’에 어떤 영향을 미치기도 했나?
-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일부러 의식하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영화의 캐릭터들이 매력적이었다. 솔로무비를 만든다면 어떤 캐릭터를 꼽겠나?
- 모두 다? 하하하. 잘 된다면 시리즈를 만들면서 각 캐릭터의 솔로 무비도 만들고 싶다 .모두 개성이 강하니까. 만화의 장점이 각 캐릭터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 아닌가. 이야기를 만듦에 있어서도 (캐릭터는) 장점이다. 만화적인 ‘마녀’의 캐릭터들도 그런 것 같다. 각기 누구를 어디에 갖다 놓아도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귀공자 캐릭터가 인상 깊었다. 이른바 ‘덕후’를 많이 생성할 것 같던데
- 귀공자라는 캐릭터는 자윤이 나타나기 전, 자윤의 위치에 있던 인물이다. 시설 안에서 닥터 백의 총애를 받다가 자윤이 두각을 나타내며 방치된 거다. 자윤에 대한 콤플렉스와 동시에 동경을 가진 캐릭터다. 또 마지막으로 가장 부러워한 건 ‘이름’이었을 거다. 자윤에 대한 애증이 강한 친구다. 귀공자를 자세히 보면 다른 캐릭터와 있을 땐 대화를 안 하는데 자윤 앞에만 서면 말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 ‘말’은 전부 허세다. 하하하. 자윤 앞에서 잘나 보이고 싶은 거다. 기본적으로 자윤이 훨씬 세다는 걸 알고 있지만 혹시나 예전보다 더 강해진 내가 자윤과 상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고 있기도 한 거다. 자신이 세진 걸 자윤에게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 안쓰러운 캐릭터다.
시나리오와 영화 속 귀공자가 많이 달라졌다고 들었다
- 처음에는 딱딱한 캐릭터를 설정했었다. 캐릭터를 완전히 구축하지 않았고 나머지를 배우가 채우는 식이었다. 처음에 귀공자 캐릭터를 만들고 배우로 하여금 플러스알파가 된다고 생각했다. 최우식이라는 배우가 들어왔을 때 그가 가진 재능과 에너지, 이미지가 어우러지며 플러스 된 것 같다. 저는 아주 괜찮았다고 본다. 유연하게 잘 된 것 같다.
각 인물의 관계성도 흥미롭다. 자윤X귀공자도 재밌지만, 자윤X닥터 백도 많은 서사가 담겨있는데
- 영화의 전반부를 통해 ‘자윤 또한 평범하게 살 수 있지 않았을까?’를 보여주는 거다. 악하게 태어났더라도 부모님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단짝 친구와의 우정, 따듯한 마을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거다. 자윤은 이런 관계성을 처음 맺었고 이를 지키려고 한다. 그러나 닥터 백의 입장에서는 전혀 이해가 안 가는 거다. 자윤은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살 수 없는 인물인데. 이러한 캐릭터적 설명을 위해 전반부 이야기를 길고 풀어냈던 거다. 이 이야기가 생략되었다면 자윤의 심정이 덜 표현되거나 충격이 덜했을 거다.
박 감독의 말처럼 전반부 서사의 길이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관객들도 있었다
- 상업영화 공식에 따르면 앞이 길고 뒤에만 액션이 몰려있으니까. 아쉬워하는 관객도 분명 있다. 하지만 우리 상황이나 제작비 여건 등을 따졌을 때 저는 꽤나 효율적인 구성이라고 본다. 물론 관객은 이 과정을 몰라도 된다. 결과물만 즐기시면 되니까.
영화적 구성도 독특했다. 판타지와 현실을 아주 잘 엮었더라
- 우리 영화는 판타지다. 말씀드린 대로 수많은 재패니메이션의 설정을 가져다 쓴 건데, (그 설정을) 한국으로 가져올 때 어색하지 않게 맞추려고 했다.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들도 현지화를 잘 시키지 않았나. 잘 안 되면 어색하게 떠 보이는 데 그런 건 느껴지지 않았다고 본다.
자윤이 성장하는 곳도 충청도다. 영화에는 자주 등장하지 않는 지역이지 않나
- 충청도 분들이 느긋하다고 하는데, 사실 자윤이 숨어 지내기에 너무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윤이 고른 장소니까. 여러모로 적합한 곳으로 고르지 않았을까.
배우들의 충청도 사투리가 인상 깊었다
- 명희 역의 고민시는 원래 충청도 대전 출신이다. 사투리가 되는 친구지. 영화 초반 등장한 비료상 부자의 고향도 충청도 광천이더라. 그야말로 로컬 배우들이다. 마을 사람들은 토박이니까 진짜 사투리를 구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자윤의 부모님들은 외지인이니까 느낌만 들면 되고.
충청도 배경과 언어는 너무도 현실적인데 대사는 문학적이더라
- 솔직히 대사를 보고 ‘아, 진짜 오글거리네’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저는 만화적 캐릭터에 맞도록 대사를 구성했다. 그 분위기, 캐릭터니까 이 정도 대사를 구사해도 괜찮다고 본 거다. 만화를 보면 우리가 속으로 생각할 법한 말들을 마구 뱉어버리지 않나. 각 인물도 그 분위기에 맞게 리얼한 연기를 할 필요가 없는 거다. 캐릭터 톤에 맞게 오버해도 괜찮았다. 극 중 판타지스러운 인물과 현실적인 마을 사람들이 나뉘는데 전반부 후반부 색깔이 다르기 때문에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우리들끼리도 그런 이야기는 나눴다. 한국 관객들 중, 생활연기·리얼한 연기에 초점을 맞추는 분들이 많은데 속으로 ‘오버스럽다’, ‘만화 같다’고 하지 않겠냐고. 그런데 우리 영화를 보고 ‘만화 캐릭터 같다’는 건 도리어 칭찬이다.
신선한 캐스팅이 많았다. 신인 배우들을 비롯해 최우식까지 낯선 얼굴을 보여주었는데
- 그런 느낌이 있다. 에너지라고 할까? 배우를 보고 이 캐릭터를 입혔을 때 어떻게 나올까 떠올려본다. 그럼 답이 어느 정도 나온다.
신인 배우가 대거 출연했다. 주인공인 김다미를 비롯해 명희 역의 고민시, 긴머리 역의 정다은 등 신예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 캐스팅 이야기를 하자니 문득 ‘엔터테인먼트를 차려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하하. 농담이다. 어쨌건 세 친구 모두 오디션으로 발탁됐다. 다미, 민시, 다은이 모두 ‘자윤 역’을 두고 오디션을 봤는데 딱 보자마자 각각의 캐릭터가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윤 역을 두고 오디션을 본 친구들이니 (다른 배역을 맡기기에) 미안하더라. 그들에게 ’조단역 캐릭터를 맡겨도 되겠냐’고 양해를 구했고, 친구들이 선뜻 받아들여 주었다.
영화를 10분만 공개한다면?
- 영화의 초반부를 보여주겠다. 액션 말고. 하하하. 사실 그래서 푸티지 상영회를 열었던 거다. 우리는 후반부에 액션이 몰려있으니까. 그걸 공개하면 다 보여주는 셈 아닌가!
영화를 보고 나니 ‘미스터리 액션’이라는 홍보 문구가 이해가 가더라. ‘악녀’와의 비교에서도 경계하던 감독님의 모습도 공감이 가고
- 마케팅팀이 무척 힘들어했다. 저는 액션을 미리 공개하지 말자고 반대했다. 액션이 많으면 상관없는데 후반부에 적은 액션이 다인데, 그걸 공개하면 ‘예고편이 다네’라는 반응이 나오지 않겠나. 내가 관객이더라도 열 받을 것 같다. 차라리 ‘이게 무슨 이야기야?’ 하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애초 계획한 대로 ‘마녀2’를 볼 수 있을까?
- 글쎄.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제작사인 워너브라더스도 위험부담이 큰 기획이니까. 여성 원톱의 60억짜리 상업영화인데 그래도 런칭이 잘 되고 투자하신 분들이 손해는 안 봐야 하지 않겠나. 그래야 저도 후속편을 만들자고 제안할 수 있을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