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와 봄날의 약속' 장영남은 왜 '독립 영화'로 떠났을까?

2018-07-02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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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에 출연한 배우 장영남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배우 장영남(45)은 시나브로 대중 곁에 다가왔다. 연극을 통해 연기 데뷔한 그는 영화 ‘박수칠 때 떠나라’, ‘하모니’, ‘퀴즈왕’, ‘헬로우 고스트’, ‘국제시장’, ‘공조’,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장옥정’ 등 굵직굵직한 작품을 통해 관객과 만나왔다. 때로는 똑 부러지는 전문직, 다정한 이웃·가족으로, 멘토로 분해온 장영남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중에게 스며든 것이다.

그러나 정작 장영남은 연기적으로 새롭고, 낯선 것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28일 개봉한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감독 백승빈)은 그가 느낀 연기적 갈증의 산물이기도 했다.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은 지구 종말을 예상한 외계인들이 네 명의 인간들을 찾아가 마지막이 될 쇼킹한 생일 파티를 벌이는 이야기를 담은 미스터리 판타지. 상업영화의 윤활유 같은 역할로 활약해온 장영남이 낯설고 이질적 형태를 가진 독립영화에 출연하기까지의 과정, 연기 철학, 카메라 밖에서의 모습 등을 묻고 들을 수 있었다.

다음은 아주경제와 인터뷰한 장영남의 일문일답이다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에 출연한 배우 장영남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처음엔 쉬이 매치가 되지 않더라. 어떻게 ‘나와 봄날의 약속’에 출연하게 된 건가?
- 매니저가 시나리오를 가져오면서 ‘선배님! 이거 완전 선배님이에요’라고 하더라. 시나리오를 보니 공감이 많이 됐고 편안하고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독립영화를 너무 하고 싶었으니까. 연기적인 갈증에 시달리던 시기에 이 작품을 만나게 된 셈이다. 마침 엄마라는 공감대도 있고 독립영화를 하면 (연기적으로) 환기가 되지 않을까 해서 출연하게 됐다. 사실 처음에는 단편영화인 줄 알았었다. 하하하. 제 부분 대본만 보여주셨고 ‘지구 멸망 하루 전날에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설명을 들었다.

연기적인 갈증이 있었나보다
- 치고 빠지는 연기를 주로 해왔는데 요즘은 너무 관성적으로 연기하는 게 아닐까?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처음부터 끝까지 흐름을 탈 수 있는 것도 좋았고 이 작품을 통해 상업영화와는 다른 호흡이 생길 거라 믿었다. 또 무엇보다 신선하니까! 작품 출연 후에도 ‘나 이거 하길 너무 잘한 거 같아’라는 이야기도 했었다.

갈증 해소는 된 것 같나?
-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만족이 된다. ‘이건 정말 내가 선택을 잘한 것 같아!’ 싶기도 하고. 일단 하면서 즐거우면 되는 것 같다. 작은 역할이든 큰 역할이든…. 그런 작품 중 하나였다.

옴니버스들이 하나로 묶인 모습은 처음 보았다고 하던데. 소감은 어떤가?
- ‘신선하고 너무 좋다!’ 보다는…. 솔직히 ‘이게 뭐지?’라는 마음이 들었다. 이상하다고. 하하하. 영화를 본 당일에는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더 여운이 남더라. 외계인이 정말 쇼킹한 선물을 주었고 무섭고 섬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더 씁쓸하기도 하고. 그런 감정들이 섞이면서 괴기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에 출연한 배우 장영남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본인의 출연분 외, 각각의 에피소드를 평하자면?
- 각각의 에피소드를 보면서 느낀 것은 결국 각자의 욕망과 욕심, 욕구가 결국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느냐다. 등장인물들이 모두 자기 욕망을 실현하는데 그게 나의 행복을 다 채울 수는 없더라. 그렇기에 희망도 엿보이는 것 같다. 예컨대 어떤 사람을 보면서 때리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우리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으니까. 내가 상상한 대로 이룰 수 없고 현명한 생각과 선택도 필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괴물을 쫓고 그들을 향해 총구를 겨누는 장면이 인상 깊었는데
- 그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 신이다. 굉장히 힘들었다. 공간을 넘나들고 감정이 치닫다가 정신이 드는 순간 마룻바닥에 쓰러진 괴물이 나의 남편과 아들인 것이다. 시나리오를 보고 연기할 때 남편, 아들을 마주한 것이 대학생 시절의 나여야 하는지, 주부로서의 나여야 하는지 모르겠더라. 감정적으로는 내 아들인데 차마 쏘지 못할 것 같아서 감독님께 ‘너 동현(아들)이 아니지?’라는 대사를 넣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아니라고 믿고 싶은 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외계인들이 소원을 들어주는 것인데, 그렇다면 주부의 소원은 정확히 무엇이었나?
- 이 사람들(남편과 아들)이 없어졌으면 좋겠어,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마음 아닐까? 이들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게 아니라 그 순간 자유롭고 싶은 혼자가 되고 싶은 마음일 것 같다. ‘혼자 일주일만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지. 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들이라면 한 번쯤 그런 생각하지 않나. 또 나는 가장 주부답다고 여겼던 장면이 대마초를 피우고 자유롭게 춤을 주는 게 아니라 독박육아의 현실에서 빠져나와 주차장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신이었다. 내 것을 다 잃었지만 그 와중에서 마지막 끈을 잡고 있는 것. ‘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완전히 정체성을 잃지 않은 모습.

[사진=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 스틸컷]


주부 역에 공감을 많이 했다고 하던데. 실제 장영남에겐 촬영장이라는 도피처가 있지 않나?
- 예전에는 촬영장은 촬영장, 집은 집이었는데 지금은 같은 선상이다. 집도 촬영장도 다 저의 손을 거쳐야 한다. 집안 살림을 제가 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집에 있다가 대본을 잠깐 보고 일하고 이런 식이다. 예전에는 양치질하다가도 역할에 대한 아이디어가 막 떠올랐는데 이제는 아이가 있으니까 그런 시간이 요만큼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게 조금 힘들더라. 그러다 보니 일할 때도 예전만큼 집중력을 가지지 못하는 느낌이다. 나에게 주어진 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 중이다. 촬영장이 쉼터가 되려면 아마 몇 년 더 걸릴 것 같다. 아직은 불안함이 있다.

함께 호흡을 맞춘 이주영은 어땠나? 선배로서 조언해준다거나
- 저는 원래 조언하지 않는다. 다들 자기 느낌대로 가는 거지. 힘들다고 하면 들어줄 수는 있는데 이렇게 해, 저렇게 해 하고 시키는 건 옳지 않다. 주영 씨는 딱 요즘 시대를 대변하는 사람 같았다. 연기도 요즘 가장 인기 있는 트렌디한 연기지 않나. 나도 저렇게 연기하고 싶다는 마음이라서 함께 호흡 맞출 때 흥미롭고 좋았다. 힘줘서 연기하지 않는 게 너무 좋더라. 닮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감독님은 어땠나?
-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어린아이, 소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성희 감독님과 절친한 사이라는데 비슷한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친한가? 하하하. 좋은 느낌의 ‘이상하다’는 느낌이었다. 엉뚱하고 자기만의 방향이 정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기할 때도 더 편했던 것 같다. 정말 단편영화처럼 3~4일 만에 찍은 거라서.

극 중 주부는 나의 본질을 찾아가지 않나. 과거 나의 정체성을 놓지 않으려고 하고 또 후배를 자처하는 외계인을 만났을 때 ‘본질’이 튀어나오기도 하는데. 실제 장영남은 어떤가?
- 나는 늘 나다. 환경이 달라질 뿐 나의 본질은 흐려지지 않는다. 내가 어디를 가지는 않는 것 같다. 방황하고 갈등하더라도 지금 이 모습이 결국 저다. 이걸 균형 있게 바꿔 가는 것, 균형감 있게 조절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인 거다.

영화 '나와 봄날의 약속'에 출연한 배우 장영남이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진행한 아주경제와의 인터뷰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이야기하면서 연기적인 갈증, 욕심이 강하게 느껴진다
- 이전에는 내가 가진 것만 활용했는데 이제는 새로운 것들, 다른 것에서 영감을 얻고 시야를 넓히고자 한다. 늘 그런 갈증이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고. 배우로 살면서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인 것 같다. 내가 고여 있는 순간, 거기에서 끝이다. 무언가를 돌리는 마음이어야지 멈춰있으면 안 된다. 요즘에는 마음을 많이 내려놨다. 새롭게 잘하고 싶고 욕심도 생긴다. 마음먹고 하다 보면 사람이 그렇게 되는 거다. 달라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출연료도 매우 적게 받았다고 들었다. 독립영화에 대한 애정 덕인가?
- 사실은 안 받고 싶었다. 그런데 소속사와도 관계되어있으니 그 부분은 제 맘대로 하기 어렵다. 다만 상업영화도 아니고 독립영화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은 없다. 선뜻 달라고 하기도 어렵고. 듣기로 (김)성균 씨는 같은 이유로 출연료를 받아 스태프들의 점퍼를 사줬다고 하더라.

이 작품이 관객에게 어떤 의미를 남길 것 같나?
- 내게 의미가 있다. 고민이 있을 때, 갈증을 느낄 때 짧지만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캐릭터를 한 것이 기뻤다. 보는 분들도 영화가 쉽지 않더라도 다양성이라는 부분을 통해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 예컨대 음식을 잘 차릴 때 새로운 건 잘 안 먹으려고 하지 않나. 이 새로운 것을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터전이 마련되면 좋겠다. 작은 터전이라고 생각해주시고 다양성이 존중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굉장히 흥미롭지 않더라도 ‘아, 이런 것도 있구나’ 얘기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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